<잔광, 사라진 후 내게 남은 것들>
2부 무음모드 | 〈읽고 남긴 점〉
무음모드로 하루를 지키기 시작하고 나서야,
나는 ‘읽음’이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읽었다는 건,
바로 대답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 문장을 내 안에서 한 번 살아냈다는 뜻이더라고요.
알람은 04:30에 울리고,
커튼 틈의 빛은 늘 같은 자리로 들어오는데
사람들의 말은 자꾸 내 속도를 앞질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응답’보다 먼저
흔적을 남기는 쪽을 택하기로 했어요.
대답하지 않음이 무례가 되지 않도록,
나를 잃지 않음이 차가움으로 보이지 않도록.
오늘은 그 작은 흔적을,
점 하나로 적어둡니다.
<읽고 남긴 점>
읽고 남긴 점.
문장은 지나가고
내 안엔
점 하나가 남는다.
대답이 아니라
흔적.
읽고 남긴 점.
나는 본다.
보되
즉시 건너지 않는다.
유리컵의 물결처럼
마음이 먼저 흔들리고
나중에야
가라앉는다.
그 사이,
점 하나를 남긴다.
읽고 남긴 점.
빠른 말은
나를 대신 말하고
늦은 말은
나를 지킨다.
그래서 나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숨을 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찰나,
열쇠가 손바닥에서 한 번 식는 시간,
물결이 잦아드는 속도만큼.
읽고 남긴 점.
점은 작다.
작아서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읽고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내가 오늘을 내 쪽으로 붙들었다는 것.
그 정도만 남긴다.
읽고 남긴 점.
누군가는
답이 없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안다.
이 점이
침묵이 아니라
테두리라는 걸.
읽고 남긴 점.
대답은 내일로 미뤄도
오늘의 나는
흐려지지 않는다.
점 하나,
문을 닫는 소리 하나.
바깥은 여전히 울리지만
내 안은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