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광, 사라진 후 내게 남은 것들>
2부 무음모드 | 남은 나를 지키는 기술
2부 1편 | 〈무음모드〉
잔광이 ‘남은 빛’이었다면, 무음모드는 ‘남은 나’를 지키는 방식이었다.
빛으로 넘기던 날들이 있었어요.
어둠이 곧장 오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
하루를 몇 번이고 다시 붙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빛만으로는 부족한 날이 오더라고요.
친절한 질문이 쌓일수록
내 안이 얇아지고, 빨라지고, 쉽게 닳았어요.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차가워지지 않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늘은 그 선택을 ‘무음모드’라고 부르려 합니다.
<무음모드>
무음모드.
세상은 계속 울리는데
나는
울림을 내 안으로 들이지 않는다.
유리막 위로
알림이 스친다.
유리컵의 물결처럼
잠깐 흔들리고
이내 가라앉는다.
나는 본다.
보되
즉시 건너지 않는다.
대답이 늦어졌다는 건
마음이 줄어든 게 아니라
마음을 지키는 법이 생겼다는 뜻.
무음모드.
말이 먼저 나오면
내가 거칠어지고,
내가 먼저 나오면
하루가 흐려진다.
그래서 나는
여백을 둔다.
질문과 대답 사이,
인사와 표정 사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찰나,
열쇠가 손바닥에서 한 번 식는 시간.
그 짧은 틈에서
나는 숨을 고른다.
유리막은
벽이 아니라
테두리다.
나는 오늘의 테두리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크기로만 잡는다.
넘치지 않게,
흐르지 않게.
무음모드.
내 안은 완전히 고요하지 않다.
가끔, 진동한다.
그래도 나는
그 진동을
소리로 번역하지 않는다.
오늘은
여백으로 남겨
내일로 건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