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무음모드<악의 없는 문장>

<잔광, 사라진 후 내게 남은 것들>

2부 무음모드 | 〈악의 없는 문장〉


점 하나를 남기고 문을 닫는 법을 배웠는데도,

세상은 자꾸 문틈으로 말을 흘려보내더라고요-


그 말들은 대개 악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안부 같고, 상식 같고, “다 괜찮아질 거야” 같은 종류의 말이죠.

그래서 더 어렵습니다.

상처를 내지 않으면서도, 내 호흡의 결을 바꾸는 말들이니까.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을 탓하고 싶지도 않아요.

다만 그 순간의 기압차를 알아차리고,

내 안의 질서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악의가 없는 이 문장들 앞에서 내가 선택하는 방식

상처를 흉터로 만들지 않는 방법을 적어둡니다.


<악의 없는 문장>

어떤 말은

안부처럼 가볍게 와서

가슴 한가운데에

작게 내려앉는다.


찌르지 않는데

따끔하다.


악의는 없는데

숨이 얇아진다.


같은 복도, 같은 조명, 같은 커피 냄새.

그런데 공기만 다르다.


말은 매끈하고

나는 잠깐

거친 쪽이 된다.


“이제 괜찮죠.”

“그럴 수도 있죠.”

“좋은 일만 생각해요.”


문장들이

정답의 얼굴로 서 있을 때

나는 즉시 건너지 않는다.


대답을 고르기 전에

호흡을 고른다.


그 사이

내 안의 유리가 한 번 울린다.

피지 않았다.

대신 결이 생겼다.

반짝임의 방향이 바뀐다.


빈 의자 하나가 떠오른다.

그리움이 아니라

자리의 무게가

갑자기 현실이 되는 순간.


나는 그 무게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유리 한 겹을 세운다.

보이되 닿지 않게.


내 안의 알림을

잠깐 무음으로 둔다.


상처를 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거칠게 만들지 않기 위해서.


가벼운 말이

가볍게 지나가지 못한 날엔

속으로 번역한다.


“너는 약하다”가 아니라

“너는 오늘도 지키고 있다.”

“왜 아직 그래”가 아니라

“오늘은 공기가 달랐다.”


그리고

점 하나를 남긴다.


점 하나,

문을 닫는 소리 하나.


바깥의 친절이 흔들어도

내 안은 조용히 제자리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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