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R의 본질과 재구매 주율

우리 서비스에 맞는 '진짜 체력' 측정법

by 이건승

MRR(Monthly Recurring Revenue, 월별 반복 매출)은 구독 서비스의 건강 상태를 한눈에 보여주는 핵심 지표입니다. 매달 얼마나 안정적인 매출이 쌓이고 있는지, 고객이 이탈하지 않고 잘 붙어 있는지를 숫자 하나로 포착해 낸다는 점에서, 구독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들여다보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좋은 지표는 도메인을 가리지 않고 통용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지표에는 그것이 설계된 비즈니스 모델의 메커니즘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지표를 새로운 도메인에 적용할 때, 그 지표가 전제하는 구조와 해당 도메인의 작동 방식이 맞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MRR도 마찬가지입니다. 커머스에 이 지표를 그대로 적용하면, 숫자는 나오지만 그 숫자가 비즈니스의 진짜 체력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 이유를 짚고, 커머스에 더 맞는 대안 지표를 소개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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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R이란 무엇인가: 구독 비즈니스의 '기초 체력 측정계'


MRR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면, "이번 달 구독 계약 상태만으로 만들어지는 월별 매출의 합계"입니다.


넷플릭스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이번 달 구독을 해지하지 않는 한, 다음 달에도 요금은 자동으로 빠져나갑니다. 나의 '별다른 행동 없음'이 곧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이처럼 구독 모델은 고객이 능동적으로 해지(Churn)를 선택하기 전까지 매출이 자동으로 흐릅니다.


MRR은 이 '흐름'을 정밀하게 포착하기 위한 지표입니다. 단순히 이번 달 총매출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매출이 얼마나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이며, 성장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MRR은 네 가지 요소로 분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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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1월에 기준 MRR이 1,000만 원이었다면, 2월에는 신규 구독자가 늘어난 만큼 더해지고, 해지한 고객만큼 빠지며, 요금제를 올리거나 내린 고객의 영향도 반영됩니다. 이렇게 매달 누적되는 구조 덕분에, 건강하게 성장하는 구독 서비스의 MRR은 우상향 곡선을 그립니다.


이것이 MRR이 투자자와 경영진에게 사랑받는 이유입니다. 숫자 하나로 비즈니스의 현재 속도와 방향, 그리고 '다음 달 매출이 얼마일지'를 상당한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커머스에 MRR을 쓰면 안 되는 4가지 이유


그렇다면 왜 커머스에는 적합하지 않은 걸까요. 핵심은 비즈니스 모델의 '기본값'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첫째, 커머스의 매출은 흐름(Flow)이 아닌 사건(Event)의 집합입니다.

구독 서비스에서는 고객이 해지하지 않는 한 매달 매출이 자동으로 발생합니다. 기본값이 '유지'입니다. 반면 커머스는 정반대입니다. 지난달 10만 원을 결제한 고객이 이달에도 10만 원을 쓸 거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다시 구매하려면 고객이 앱을 열고, 상품을 찾고, 결제까지 마치는 '새로운 구매 결정'을 매번 내려야 합니다. 기본값이 '이탈'인 셈입니다. 이런 구조에서 매출을 'Recurring(반복)'으로 부르는 건 개념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둘째, 커머스 매출은 계절과 이벤트에 따라 출렁입니다.

명절, 블랙프라이데이, 여름 세일, 연말 특수. 커머스 매출은 이런 이벤트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블프와 같은 행사가 있는 11월은 한 달 매출이 평소의 3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수치를 MRR로 환산하면, 마치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음 달이 되면 현실이 드러납니다. MRR은 '정규화된 예측 가능한 수익'을 보여주기 위한 지표인데, 커머스에 적용하면 오히려 미래를 오판하게 만드는 착시를 만들어냅니다.


셋째, 구독형과 커머스는 비용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구독 서비스는 한 명의 구독자가 늘어날수록 추가 비용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MRR이 늘어나면 그 자체로 수익성이 좋아지는 신호입니다. 반면 커머스는 고객 한 명이 한 번 더 살 때마다 원가, 물류비, 광고비가 함께 발생합니다. MRR만 보면 "매출이 늘었다"는 신호만 잡히고, 실제로 돈을 벌고 있는지(LTV > CAC인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넷째, 커머스에서는 '리텐션 관리'의 언어 자체가 달라야 합니다.

구독 서비스의 리텐션 관리는 해지를 막는 것(방어)입니다. 커머스의 리텐션 관리는 다시 오게 만드는 것(공격)입니다. 방어와 공격은 전혀 다른 전략을 요구합니다. MRR이라는 방어 중심의 언어로 커머스의 공격적 리텐션 전략을 설계하면, 결국 도구와 목적이 맞지 않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커머스에 필요한 지표: '재구매주율'로 MRR을 대신하다


그렇다면 커머스에서는 어떤 지표가 MRR의 역할을 해야 할까요?


제가 주목하는 것은 재구매주율(Interval-based Repurchase Rate)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가 정의한 건강한 구매 주기(N일) 안에 고객이 다시 구매할 확률"입니다.


이 개념의 핵심은 골든 타임(Golden Time)입니다. 모든 커머스 서비스에는 구매 후 고객이 가장 활발하게 재구매를 고려하는 황금 시간대가 존재합니다. 이 골든 타임을 찾고, 그 안에 다시 돌아오도록 경험을 설계하는 것이 커머스 리텐션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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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어떤 서비스를 분석했더니 첫 구매 후 32일 이내가 재구매 확률이 가장 크게 올라가는 골든 타임이었고, 그 시점에서 누적 재구매율이 26.1%였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30일에 이미 26.0%에 달하고, 60일까지 가면 42.3%로 올라가는 패턴을 보인다면, 이 서비스의 전략은 명확해집니다. 30일 이내에 두 번째 구매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 최우선 과제입니다.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가: '프레시박스' 가상 사례


개념을 숫자로 연결해 보겠습니다. 가상의 건강 도시락 브랜드 '프레시박스'를 예로 들겠습니다.


골든 타임(평균 구매 주기): 30일

30일 이내 재구매주율: 26.1%

평균 결제 금액(AOV): 50,000원

1월 신규 구매자: 10,000명


이 데이터를 조합하면 2월의 '기대 반복 매출(Expected Recurring Revenue)'을 이렇게 산출할 수 있습니다.

10,000명 × 26.1% = 2,610명 (기대 재구매자)
2,610명 × 50,000원 = 1억 3,050만 원

즉, 2월에 별도의 신규 마케팅을 하지 않아도, 약 1.3억 원의 매출은 기대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이 숫자가 MRR과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MRR은 계약으로 보장된 숫자지만, 재구매 기대 매출은 행동 데이터로 검증된 확률입니다. 구독 계약서가 아니라 고객의 실제 행동 패턴에서 나온 예측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전략이 훨씬 구체적입니다.


만약 재구매주율을 26.1%에서 30%로 약 4%p 높이는 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10,000명 × 30% = 3,000명
3,000명 × 50,000원 = 1억 5,000만 원

리텐션이 개선된다면 월 매출이 약 1,950만 원(약 15%) 상승합니다. 이것이 재구매주율을 핵심 지표로 관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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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지표는 전략을 담는 그릇이다


좋은 지표란 비즈니스의 현재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다음 행동을 명확하게 안내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MRR은 구독 서비스에서 탁월한 지표입니다. 하지만 커머스에 무비판적으로 가져오면, 숫자는 나오지만 방향을 잃습니다. 틀린 지표로 만든 목표는, 아무리 달성해도 비즈니스를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주지 않습니다.


어쩌면 커머스 업종의 마케터, 데이터 분석가에게는 MRR보다 재구매주율이 더 정직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고객이 '자동으로' 돌아오는 구조가 아니라면, 고객이 '기꺼이' 돌아오게 만드는 골든 타임을 찾고 그 안에서 성공 경험을 설계하는 것. 그것이 커머스 도메인에서 리텐션과 수익화를 연결하는 본질적인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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