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명료함> 리뷰
SNS를 스크롤하다 우연히 서평 하나가 눈에 걸렸다.
《명료함》. 제목만 봐도 직감적으로 알았다. 지금 내가 어려워하는 지점을 이 책이 긁어줄 수 있겠다.
2월, 조직개편과 함께 나는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다. 설레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무언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 감각을 이 책이 정리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펼치자마자 그 느낌이 왔다. 저자는 독자에게 직접 질문을 건네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미션을 끊임없이 주었다. 그 질문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생각하는 탁월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의 모습이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내가 정의한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었다.
1. 구조를 보는 사람 — 눈앞의 현상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읽는 사람
2. 문제의 설계자가 되는 사람 —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다시 정의하는 사람
3. 기준을 스스로 세우는 사람 — 남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
4. 감정보다 구조를 우선하는 사람 — 순간의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구조로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
5. 단기 효율이 아니라 체질을 개선하는 사람 — 당장의 성과보다 조직과 나 자신의 근본적인 작동 방식을 바꾸려는 사람
구조를 읽고, 문제를 재정의하고, 기준을 세우고, 설계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사람.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탁월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이렇게 일해왔나?
그렇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로 인해 인정도 받았고, 성과도 만들어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리더가 되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그 구조 자체를 만들 수 있는 자리에 가면 더 잘 될 거라고.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내가 잘해왔다고 믿었던 것들이 갑자기 잘 안 되기 시작했다.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지만, 나는 기존의 능력으로 이 게임을 시작하였고, 그것이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었다. 팀장일 때는 내 기준을 팀에 직접 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러 팀을 이끄는 자리는 달랐다. 내 기준은 누군가를 거쳐 전달되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희석됐다.
구조를 설계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막상 리더가 되고 보니 나 역시 누군가가 설계한 구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생각이, 내가 겪고 있는 혼란의 꽤 많은 부분을 설명해줬다.
이 책에서 가장 강하게 공명한 개념은 조직적 엔트로피였다.
엔트로피는 원래 물리학 용어다. 시스템은 내버려두면 점점 무질서해진다는 법칙. 책은 조직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리더가 명료한 기준을 만들어내지 않으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기준으로 움직이기 시작하고, 그 결과 복잡성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모든 것이 다 중요하고, 모든 것을 다 놓칠 수 없는 환경. 그 안에서 엔트로피는 더 빠르게 가속된다는 것을 나는 요즘 피부로 느끼고 있다.
책은 명료함의 결여를 네 가지 상태로 정리한다.
→ 각자의 기준으로 움직이는 높은 조직적 엔트로피
→ 리더가 '올바름'을 정의하지 않은 기준의 부재
→ 리더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그럴듯한 말을 빌려오는 사고의 아웃소싱
→ 철학은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없는 시스템 없는 철학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느 순간 멈췄다.
이것의 반대를 나는 지금 만들어내고 있는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솔직히 홀가분하지 않았다.
보통 책을 읽고 나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는 감각이 오기도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오히려 내가 지금 얼마나 명료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지가 더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선명함이, 편안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남았다.
그 걱정 속에 나는 오래 머물지 않기로 했다.
명료함은 단번에 오지 않는다. 리더로서의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고,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느리고 더디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아는 것,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
엔트로피를 줄이는 일은 극적인 선언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행동하고, 말과 행동의 괴리를 줄여가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나는 믿는다.
깊은 수렁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겠지만, 명료해지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