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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쩨리 Aug 03. 2017

내부와 외부에 대한 질문,<컨택트(Arrival>

내부와 외부를 정의하는 기준은 상대적이다.

 <사카리오:암살자들의 도시>, <그을린 사랑>으로 유명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최신작 <컨택트(Arrival)>는 장르가 드라마, SF영화로 되어 있다. 외계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SF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SF장르에만 속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영화는 외계인이라는 존재를 통해 우리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내리는 내부와 외부의 기준에 대해 질문을 하고 있다. 


<컨택트(Arrival)> 속 외계인의 존재

  대부분의 외계인 영화는, 특히 인간과 외계인의 대립을 다루는 영화는 외계인이 아주 압도적인 크기나 무기를 가지고 있거나 아주 괴기스러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공포를 심어준다. 처음에는 그들이 드러나지 않더라도 대개 초반에 대체적으로 외계인의 전체적인 모습이 드러나면서 외계인이 가진 외향적 모습 자체나 무기로 인해 사람들은 외계인을 드려워한다. 

헵타포드는 영화 내내 안개 속에서 오로지 '미지'의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공포를 심어준다.

 그러나 <컨택트>에서는 영화 내내 외계인이 미지의 존재로 남아있음으로써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있다. 그들은 결코 인간을 해치겠다는 의사를 드러낸 적도 없고, 그들의 우주선 밖으로 나온 적도 없으며, 우주선 안에서 조차 벽 뒤의 안개 속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감추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미지의 존재’라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일반 대중에게도, 그리고 그들과 접촉하는 군인들에게도 공포를 심어준다. 


누가 침입자인가? - 내부와 외부의 상대성

  앞서 말했듯, 이안 박사와 루이스 박사 외의 사람들은 우주선 밖으로도 나오지 않은 외계인을 두려워 한다. 그리고 그들은 '침입자'라고 간주한다. 보통의 다른 외계인 영화를 보다보면 그들이 침입자라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의문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외계인만 '침입자'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외계인만 침입자인가?

   외계인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그들 또한 ‘침입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한 시점부터 인간들은 외계인을 ‘침입자’로 간주한다. 그래서 왜 왔는지 알고 싶어하는 것이고(이안 박사와 루이스 박사가 참가한 프로젝트의 목적), 공격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생 장군처럼).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어떤가? 앞서 말했듯 이 영화에서 외계인은 절대로, 절대로 그들의 우주선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큰 특징 중 하나이다. 다시말해, 인간이 외계인을 만나려면 그들의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인간 또한 침입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외계인만 '침입자'라고 할 수 있을까? 외계인 우주선의 이름을 생각해보자. 외계인의 우주선 이름은 shell 이다. shell에는 포탄이라는 뜻도 있지만(영화에서 우주선의 이름이 shell이 된 이유도 우주선이 포탄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조개껍데기로도 해석될 수 있다. 우리가 억지로 조개의 입을 벌리지 않는 이상 조개 안으로 들어가려면 조개가 문을 열어주는 수밖에 없는 그 껍데기와 같은 것이다. 인간이 shell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외계인이 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인간도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Shell이라는 외계인의 공간에 침입했기 때문에, 그리고 나중에는 공격까지 했던 것은 인간이기에, 인간 또한 침입자가 된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같은 인간 중심주의는 헵타포드(외계인)와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인간들은 비록 의사소통의 편의를 위해서이긴 하나 오로지 그들의 언어로 외계인에게 '헵타포드'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외계인의 것인 우주선도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기준을 바탕으로 이름을 붙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외계인이 던지는 언어를 오로지 인간의 언어 맥락에서만 생각한다. 


무기?


 헵타포드가 '무기'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인간 사회는 패닉에 빠진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 단어를 인간의 언어로만 해석했기 때문이다. 사실 외계인에게는 ‘weapon’이라는 것은 ‘gift’의 의미였다. 쇠쉬르는 언어는 해당 사회의 전통과 코드를 바탕으로하고 있기 때문에 단어와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 사이의 관계는 임의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지의 존재라는 패닉과 공포에 사로잡힌 인간은 그 사실을 잠시, 간과하고 헵타포드의 사회의 전통과 코드가 아닌 인간사회의 전통과 코드로만 헵타포드의 언어를 해석한 것이다. 


  영화는 인간사회가 헵타포드를 대하는 방식과 헵타포드가 인간을 대하는 방식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인간사회가 앞의 말한 것과 같이 그들의 기준으로만 헵타포드를 대한 것과 달리 헵타포드는 최대한 인간의 기준을 받아드리려고 한다. 그들의 이름을 인간이 부여한 대로 부른다는 점, 그들의 언어에는 시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인간이 가진 시제라는 개념을 이용해서 의사소통하려 한다는 점("죽음의 과정에 있어."), 인간이 그들을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스 박사를 구하려고 한다는 점등이 그러하다.


헵타포드의 언어와 영화의 구조 -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다.


"이제 나는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어."

  <컨택트>는 인간사회와 헵타포드의 방식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영화의 구조를 통해 헵타포드의 손을 들어준다. 헵타포드에게는 시제 개념이 없다. 인간은 시간을 평면적으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들은 전부 선형구조(선)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헵타포드는 시간을 입체적으로 인식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 현재라는 개념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마치 동그란 공의 한 부분을 관통하는 것처럼 통째로 시간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헵타포드의 시간 개념은 그들의 언어에서 비선형구조(원)로 나타난다. 원은 임의로 처음과 끝을 지정하지 않는 이상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원의 개념과 헵타포드의 시간 개념은 서로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컨택트>의 전체적인 영화 구조는 헵타포드의 시간 개념과 일치한다. 영화를 조금만 신경써서 봤다면 첫 장면과 끝 장면이 똑같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헵타포드가 과거, 미래, 현재를 동시에 느끼는 것처럼 영화도 마치 '현재'의 일을 따라나가는 것 같지만 중간중간 루이스 박사의 미래를 교차시켜 보여준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 처음에 헵타포드의 언어, 그리고 영화 구조를 관통하는 메세지가 나온다는점이다. 루이스 박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영화 초반에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이제 나는 처음과 끝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어.


  영화 전체를 아직 보지 않은 관객은 처음에 이 대사가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전부 이해를 하게 된다.  사실은 영화 첫 부분에 이 영화를 관통하는, 그래서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메세지가 이미  나온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이미 영화가 시작할 때 이 영화를 이해했다는 사실을 영화가 끝이 나고서야 알게된다. 그 순간 관객은 잠시 헵타포드의 언어를 체험하게 된다. 


  이처럼 <컨택트>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헵타포드의 편을 들면서 과연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임의적이고 상대적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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