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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쩨리 Aug 07. 2017

광주를 기억하는 방법, <택시운전사>

 때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 그런 일을 영화 속에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한국의 역사 안에 일제강점기나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비극적 역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나치의 유대인학살을 다루었던 <쇼아(Shoah)>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에 참여했던 군인의 악몽을 다뤘던 <바시르와 왈츠를>만큼은 아니지만 <택시운전사>는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광주를 다루고 있다. 



"광주? 돈 워리, 돈 워리! 아이 베스트 드라이버"

  위르켄 힌츠펜터(토마스 크레취만)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떠나는 김만섭(송강호)은 비록 안타까운 가족사를 가졌을지언정 초반부터 정의로운 캐릭터는 아니다. 그가 광주를 떠난 이유도 단지 밀린 사글세를 내기 위해서이며, 시위대를 마주쳤을 때는 배가 불러 시위한다느니 하는 발언도 한다. 검문소를 속이고 광주에 기를 쓰고 들어간 이유도 위르켄 기자의 '노 광주, 노 머니' 때문이었다. 그래서 최대한 안전하게 다시 서울로 가고 싶어하면서 위르켄 기자와 부딪히고 광주의 택시기사들과도 부딪힌다.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정의롭다고 말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정의로운 일을 해내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의미를 더한다. 



우린 광주시민 전체에게 빚을 진 셈이다.


  이제 우리는 이 영화 덕분에 광주의 소식을 전한 위르켄 기자와 그렇게 소식을 전할 수 있게 해준 택시운전사를 기억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 기억해야할 사람은 이 두 사람만이 아니라 광주 시민 전체이다. 김만섭과 위르켄 기자가 광주를 들어가고, 그리고 광주에서 빠져나오는 과정 내내 김만섭은 광주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공짜로 기름을 얻고, 밥을 얻어먹고, 번호판을 빌려 바꿔 달고, '웬만한 광주 기사도 모르는' 길을 전수받는다. 하필 도망칠 때 떨어진 필름통때문에 잡힐 뻔하지만 대학가요제 나갈려고 대학간 재식이 덕분에 그들은 겨우 도망친다. 그렇게 영화는 내내 광주시민에게 빚을 지면서 우리가 광주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김만섭> 혹은 <위르켄 힌즈페터>라는 고유명사가 아닌 <택시운전사>라는 일반 명사의 영화 제목 처럼 우리는 어떤 특정한 영웅이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 빚을 졌다.  


  <택시운전사>라는 제목은 마치 김만섭과 위르켄 기자만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우리는 김만섭의 택시를 타고 위르켄 기자와 함께 광주의 이야기 전체를 보는 셈이다. 총 앞에 맞선 시위대, 위험을 감수하고 옥상에서 내려가 시위 상황을 촬영하고 신문에 내보내려는 광주의 지역 기자들, 다친 학생들을 병원으로 데려오고 차로 바리케이드를 쳐서 시위대를 보호하고자 한 택시기사들 등 5.18 광주 시민의 모든 서사를 조금씩 엿보게 된다. 그래서 시위대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를 기록하고 알리려고 노력했던 사람들, 시위대를 도왔던 사람들 등 다양한형태로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을 수 있다. 김만섭 기사 덕분에 위르켄 기자가 광주로 들어가 광주의 이야기를 담고 광주에서 나오는 구조를 통해 우리도 <택시운전사> 덕분에 당시의 광주로 들어가 광주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영화가 끝나면서 다시 당시의 광주에서 빠져나온다. 



  

관객은 영화의 프레임 뿐만 아니라 영화내 또다른 프레임으로 광주를 바라보게 된다. 바로 위르켄 기자의 카메라와 김만섭 택시의 백미러이다. 우리는 종종 위르켄 기자의 카메라를 통해 보면서 마치 진짜 광주를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백미러에 택시의 뒷자석 손님만 담던 김만섭은 어느새 광주의 거리를 담고 있다. 김만섭이 백미러에 최루탄 연기가 가득찬 광주 거리를 담았을 때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안위를 일부 포기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여러차례 반복되는 대사가 있다.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것이다. 옥상 위에서 김만섭은 내려가봤자가 뭐가 달라지냐고 반문하고 신문사의 사장은 시위대의 사진과 상황을 내보내려던 기자에게 그래봤자 뭐가 달라질 것 같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달라져있다. 아직 이만큼 뿐이지만 이만큼이나 달라져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는 영화를 보는 게 혹은, 영화를 만드는 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언급하는 게 무슨 소용고 뭐가 달라질 것 같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를 보고, 이렇게 기억하고, 언급하는 것 자체로도 충분한 의의를 가진다.  우리는 아직까지 누가 광주시민을 향해 발포명령을 내렸는지 모른다. 금남로 빌딩에 총알자국이 선명한데도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고 언급하는 것이 발포명령을 내린 진범을 찾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못한다 하더라도 기억한다는 행위만으로도 '소용'이 있다. 그리고 이렇게 역사를 '같이' 기억하고 공유할 때 변화는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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