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 생 로랑, 그리고샤를드 빌모랭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는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을 위한 가장 완벽한 말이다. 그래, 어차피 완성은 얼굴이 하는 거라면, 대충 입어도 되잖아.(여러 가지 의미로)
패션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이겠지만, 완전히 부정할 순 없다. 아무리 못나 보이는 패션이라도 주인을 잘 만나면 살아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니까.
무수한 패션 브랜드 속에서도 그 말을 몸소 보여준 이들이 있다. 물론 그들의 철학은 훨씬 더 고차원적이지만, 그 철학과 더불어 특출 난 외모로 주목받았던, 그리고 주목받고 있는 디자이너 2명을 소개한다.
이브 생 로랑은 얼굴도, 패션도, 철학도 프랑스 국보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많고 많은 패션 브랜드 중 브랜드 자체보다 그 디자이너 자체가 더 매력적인 브랜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 그중 하나가 생 로랑(Saint Laurent)이다. 생 로랑의 카산드라 로고를 포인트로 활용한 카드 지갑과 클러치, 가방이 워낙 예쁘긴 하지만 그 브랜드의 아버지,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자체를 이길 순 없다.
날렵한 라인에 모델 같은 몸과 외모를 지닌 이브 생 로랑은 영화로만 만나기 아쉬울 정도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디자이너라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그냥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이 넘치니까. 그러나 그를 오로지 그의 외모로만 설명한다면 그것은 이브 생 로랑에게 큰 모욕이다.
이브 생 로랑은 어린 나이부터 여성 패션에 재능을 보여 1955년 18세의 나이에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과 일하게 될 정도였다. 당시 프랑스 패션 매출의 절반을 담당했던 디올이었으니 이브 생 로랑의 감각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는 알 수 있다. 1957년 디올이 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서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되어 본격적으로 패션계에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국보급 패션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 정도이지만, 마냥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디올에서 나와(무단해고를 당했지만) 그의 연인 피에르 베르체의 후원에 힘입어 그는 드디어 그의 이름을 단 패션 하우스를 1961년 내놓게 된다.
그가 지금까지도 매력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것은 비단 출중한 외모 때문만이 아니다. 그의 뛰어난 패션 감각과 더불어 피코트, 사파리 재킷, 점프 슈트 등 그가 세계 최초로 선보여 대중화한 여성복을 들여다보면 왜 그가 프랑스 국보라 불리는지 알 수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이고 위대한 업적은 1966년 선보인 여성 턱시도 '르 스모킹 룩(Le Smoking)'. 당시에 여성이 공식적인 석상에서 바지를 입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것으로 보았으나, 영화 <모로코(Morocco), 1930)>에 여주인공 마를레네 디트리히(Marlene Dietrich)가 남성용 턱시도를 입고 나와 많은 주목을 받은 데에 영감을 얻어 이브 생 로랑은 턱시도를 여성을 위한 새로운 이브닝 룩으로 제안하게 된다. “나는 여성이 내 옷 안에서 좀 더 당당해지시길 원한다”라고 말한 그의 철학을 실현시킨 셈.
그 외에도 몬드리안 룩이라고 하여 예술작품을 처음으로 패션으로 끌고 오기도 한 장본인이다. 그러니 그는 얼굴도, 패션 철학도, 디자인도 프랑스 국보급이라고 불리는 게 아닐까.
이브 생 로랑은 당시 패션 천재라고 불리었는데, 그의 이름을 이어 '21세기 버전 생 로랑', '프랑스 패션 천재'라는 별명을 단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샤를 드 빌모랭(Charles de Vilmorin)'이다.
그는 특히 올해 로샤스(ROCHA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취임하게 되면서 '패션 천재'의 위치를 다시 한번 공고히 했다. 샤를 드 빌모랭은 2019년 패션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첫 컬렉션을 발표했고 단숨에 인기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다. 거기에 장 폴 고티에의 도움을 받아 바로 쿠튀르 연합에 들어가게 되어 누군가는 이런 그의 행보를 보고 엘리베이터를 단숨에 100층을 이동했다고도 표현할 정도.
그의 컬렉션을 보기 전이라면 그의 어린 나이와 비교해 의심을 품을 수 있지만(like 낙하산, 금수저 등), 첫 컬렉션을 보고 나면 그가 어떻게 100층을 단숨에 이동했는지 바로 납득할 수 있다. 그의 첫 컬렉션 퍼프 시리즈는 특히 씨엘이 입어 입소문이 나기도 했는데 퍼프 시리즈가 보여주는 파격적인 디자인과 감각적인 라인은 그의 디자인이 '아름답다'라고는 못해도 그의 감각이 '뛰어나다'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디자인은 아티스트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작품을 오마주 하면서 더 생기를 얻게 된다. 빌모랭은 자신의 첫 컬렉션이 가졌던 즐거운 색과 느낌을 고수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니키의 작품이 가진 모던함과 강렬함이 그의 디자인과 맞아떨어진 것.
어린 나이에 패션계에 발을 들인 것, 예술 작품을 패션으로 끌어들인 것 등 생 로랑과 닮은 점이 매우 많은데, 사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공통점은 빌모랭도 생 로랑처럼 특출한 외모를 가졌다는 점이다.
빌모랭은 실제로 발렌티노, 구찌, 사카이, 언더커버, 아크네 스튜디오 등의 런웨이에 섰던 바 있다. 그가 찍힌 사진을 보면 그의 눈빛과 포즈에서 모델 짬바가 느껴진다. 새우 대가리를 손에 끼우고 사진을 찍는 건 솔직히 웬만한 예술 감각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그러나 이브 생 로랑과 또 비슷한 점은 외모만으로 그를 논하는 것은 그의 패션에 모욕이라는 점이다! 그는 얼마 전 발표된 2021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게다가 COVID-19로 패션계 전체적으로 침체되었을 때 첫 컬렉션과 오트 쿠틔르 쇼를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주목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지금까지의 위치에 오른 것은 오로지 그의 감각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사실 모든 패션은 결국 '패완얼'이라고 생각한다. 잘생기거나 예쁘면 다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이브 생 로랑과 샤를 드 빌모랭이 '천재'라 불린 건 그들이 결코 잘생겨서가 아니다. 그들만 만들 수 있는 무드를 완벽히 찾았기 때문이다.
글 / 사진 1103호 다락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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