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할 것인가? 지배당할 것인가?

이지성 작가 "에이트" 중에서

by 돈다돌아
"미래 인류 사회는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계급'과
'인공지능의 지시를 받는 계급'으로 나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에이트, 이지성, 차이정원, 2019]



초등학교 시절에 대백과 사전은 지식의 보고였다. 인터넷 검색이 불가능한 아날로그 시대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대백과는 어린이들에게 지금의 인공지능 이상의 지위를 누렸다. 그 백과사전의 미래 과학 부분에서 본 내용 중에 상당히 흥미롭고 놀라워서 뇌리에 기억된 장면이 있었다. 2000년 초반이면 자동차들이 모두 하늘을 날아다닐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만화스러운 삽화와 함께 소개된 그 전망에는 도로가 이동해 사람이 걸을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하인라인의 소설에 등장하는 설정까지 과감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가까운 미래에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저절로 굴러다니는 도로 등을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공상과학"의 영역에 자리하던 미래의 기술이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우리의 생활 속으로 바짝 다가왔다. 미래 사회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서 건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자율 주행 자동차' 등의 이슈를 접하게 되는 세상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에 대한 전망은 너도나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다. 모두가 이야기를 하지만 상이하거나 유사한 내용을 서로 복제해가며 확대 재생산하는 형국이다.


많은 관련 서적들은 4차 산업혁명이 어떤 것인지, 그 범주에 들어가는 기술들이 무엇이고 동향이 어떤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몰아치는 혁명의 파도 속에서 개개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히 지적해주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것을 넘어 내가 무얼 해야 하는가가 아닌가?


당신이 바닷가에서 일광욕을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갑자기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부터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주변 사람들도 함께 보며 너도나도 쓰나미라고 소리친다. 그런데 모두 쓰나미가 뭘 말하는 것이며, 어떤 과학적 원리로 형성되는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지나면 해변에 들이닥칠 것인지에 대한 학술적인 설명을 늘어놓고 있다. 그 와중에 당신은 처음 보는 쓰나미가 신기하다며 해변에 누워 계속 다가오는 구경만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 자리를 피하거나 대비하지 않는다.


이건 뭔가 이상한 상황이지 않은가? 쓰나미가 뭐고 어떻게 생기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쓰나미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쓰나미를 쓰나미로 인식을 할 테니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쓰나미가 다가올 때 피해가 예상되는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와 평소에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예상을 바탕으로 실제로 행동해 재해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지성 작가의 에이트는 적어도 방향은 제대로 잡고 있다. 고도의 인공지능 사회가 도래할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면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는 존재로 남을 것인가? 그리하여 인공지능의 쓰나미에 휩쓸려 사라질 것인가, 아니면 미리미리 철저히 준비해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 결정하는 것이다.


평범한 생활인이 '인공지능을 지배한다'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은 사실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변화할 세상의 작동원리가 어떠하며, 인공지능 개발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확인해 본다면 세상의 거대한 변화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지성 작가는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계급이 되려면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잘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더 이상 고전적인 "지식" 위주의 교육은 가망이 없다고 진단한다. 좋은 학교에 가기 위해 교과서만 열심히 파며 익힌 지식은 인공지능의 주 종목이라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충분히 납득 가능한 합리적인 지적이다.


그럼 무얼 해야 하는가? 인공지능이 못하는 걸 찾아서 인간만의 특장점을 길러야 한다. 그것은 바로 인문학과 철학에 기반을 둔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이다. 이 또한 매우 당연한 지적이자 주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아무리 다양한 나라의 예를 들어 설명한다 해도 솔직히 뭘 어떻게 해야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인공지능에게 지시를 내리는 수준"으로 키울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는다.


어제는 아직 초등학생인 첫째가 학교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앞으로 지식 위주의 공부는 무용한 세상이 올 거야. 그러니 학교 시험 준비는 그만두고 인문학적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을 기르렴"이라고 설명해 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머릿속을 지배해온 과거의 관습의 틀을 벗어날 용기와 실행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K702636286_f.jpg

《리딩으로 리드하라》와 《생각하는 인문학》으로 인문학 돌풍을 일으켰던 이지성 저자는 새로운 주제 ‘인공지능’ 문제를 화두로 던지며 에이트를 발표했다. 스티브 잡스가 죽기 직전까지 붙잡고 있었던 ‘주제’가 바로 인공지능이었다는 점에 주목했고, 레이 커즈와일, 피터 디아만디스 같은 실리콘밸리의 천재들과 NASA, 구글 같은 조직들이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인류에게 닥친 새로운 문명인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저자는 선진국들의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며,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에 대체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아니 오히려 인공지능을 지배할 수 있는 대응법 ‘에이트’를 제안한다.


그 핵심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바로 '공감능력'과 '창조적 상상력'이다. 지배당한 것인가? 지배할 것인가?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