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her) 중에서...
갑자기 끔찍한 생각이 들었어. 이 감정들이 과연 진짜일까?
넌 내게 진짜야, 사만다.
[그녀(her). 미국. 스파이크 존즈 감독. 호아킨 피닉스 주연. 2014]
최근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더 이상 영화나 애니메이션 속에서만 등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학습하는 강 인공지능을 온 인류가 체험할 날이 머지않은 느낌이다. 영화가 미래를 예측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몇 년 지난 미래 영화를 지금 시점에서 지켜보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영화 "그녀(her)"는 학습형 인공지능과 인간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다. 영화에서 OS라 표현하는 형식의 소프트웨어는 단순한 음성 인식을 통해 사용자의 필요를 채워주고 정보를 제공해 주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고 똑똑하고 섬세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몸은 없지만 목소리가 스칼렛 요한슨이 아닌가? 개봉 당시 이 영화의 흥행에 그녀의 목소리 출연이 크게 한 몫했음은 의심이 여지가 없다.
학습형 인공지능인 사만다는 인간의 사랑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학습을 통해 성장한다. 때문에 수많은 인간의 사랑을 살펴보고 배우며, 동시에 실시간 채팅을 통해 사랑을 경험한다. 주인공 테어도르가 뒤늦게 이 상황을 깨닫고 몇 명이나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사만다는 망설이며 641명이라고 답한다.
사만다의 사랑과 테어도르의 사랑은 겉보기에 차이가 없다. 그러나 테어도르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조차 벅차고 힘들어하며 관계를 잘 이어가지도 못해 힘들어 한다. 반면 인공지능 사만다는 동시에 641명을 사랑하면서도 심지어 점점 더 각각의 관계를 잘 맺어간다. 급속도로 학습하고 익숙해지는 것이다. 사만다가 테어도르를 바라보는 감정은 사랑일까? 사랑하기라는 기능일까?
인간의 감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사만다의 동시다발적이고 세련되고 정제된 사랑은 왠지 자연스럽지 않다.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라는 것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으니까. 인간의 관계는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비정상적이며 일반화가 불가능하다. 그 모든 미묘한 차이도 잘 정리하면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지만 개개의 인간 개체에게 그 차이는 결정적이다. 그렇기에 테어도르가 사만다의 641명 중 한 명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간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만다 때문에 테어도르는 일상에 즐거움을 찾고 큰 위안을 받는다. 그저 인공지능 비서 정도의 태도로 OS를 설치한 테오도르는 점점 사만다에게 빠지고 의존하고 즐겁게 관계를 맺으며 사랑을 느낀다.
게다가 사만다도 주인님 대하듯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만다가 인간이라면 과연 누가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사려 깊고 유머 넘치며 유능하기까지 하다. 물론 사만다의 목소리도 크게 한 몫하겠지만.
사만다는 충실한 소프트웨어처럼 목적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태도로 테오도르를 대한다. 온전히 테오도르의 감정과 상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기에 인간들의 대화에 가장 중요한 요소까지 빠뜨리지 않는다. 자신의 약점을 솔직하게 보이고 고백한다는 점.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보임으로써 친밀감과 상호 신뢰를 쌓아간다는 점이다.
테오도르가 새로운 여성과 데이트를 실패하고 돌아왔을 때, 자신의 감정 상태를 사만다에게 여과 없이 고백한다. 외로워서 만났고 즐거웠지만 마음속 작은 구멍을 메울 수 없었고, 이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다 느낀 것 같은 기분이라 덤덤하기만 하다고. 이에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감정을 어루만져 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자기 자신도 인공지능임에도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 기쁘고 자랑스러웠지만 결국 그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너무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사만다의 고민이 드러나는데(물론 이것도 프로그램 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만다로 행동하기 일지도 모르겠다) "이 감정들이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그냥 프로그램일 뿐일까?"라고 묻는다. 이에 테오도르는 "넌 내게 진짜야. 사만다"라고 대답한다.
인간은 보통 무언가 계속 분류를 하기를 원한다. 그 편이 받아들이기 편하고 혼란이 가장 적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인간이라도 모이면 수많은 기준을 들이대며 서로를 나누고 편을 가른다. 이는 가장 작은 단위까지 내려가는 동안에도 계속된다. 모이면 편을 가르기를 좋아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인간들에게 인공지능과 인간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고민하기 이전에 벌써 우리 머리 속에서 분류가 끝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감정은 진짜이며, 인공지능과의 사랑이 진짜 일수가 있는가?
아무래도 이는 누군가가 정해줄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인공지능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사랑은 타인이 보기엔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테오도르가 보기에는 사랑이 맞을 것이다. 사랑이란 누가 정해주는 것은 아니니까. 사랑이냐 아니냐의 주체는 오롯이 자기 자신이니까. 그리하여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다면 수많은 형태의 사랑이 등장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더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으로 무언가를 정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어떤 시대를 보게 될까? 궁금하고도 기대되며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