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자가격리 당하는 직장인의 불편한 마음
결혼 이후 처음으로 동남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2월 초에 베트남 다낭과 호이안에 다녀왔다. 여러가지 불안한 부분이 있었지만, 떠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몇가지 있었다.
첫째, 안전에 대한 불안이 높은 아내가 취소할 만도 한데 이번만은 꼭 다녀오고 싶어 했다. 여기에는 깊은 사연이 있지만 주제와 너무 벗어나므로 그렇다고 치자.
둘째, 고민만 길었지 예약 자체는 늦었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숙소가 없어 취소불가 상품을 예약했다
셋째, 떠날 당시만 해도 베트남에는 특별히 확진자가 없었다
넷째, 친구들이 자랑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며 우리도 꼭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였다.
이런 이유들로 여행을 강행해서 잘 다녀왔다. 베트남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감염 가능자 취급을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호이안 같은 경우는 한국인이나 중국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서양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녀와 하루쉬고 회사에 출근하려는 찰나, 코로나 관련 복무지침이라는 무시무시한 공문이 내려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내용인즉슨, 중국인근 나라에 여행 다녀온 직원은 14일간 공가처리하고 자택에 자가격리하라는 것이었다.
떠날 때만해도 마스크를 쓰고 손을 잘 씻자 정도의 분위기에서 갑자기 심각하게 바뀐 것은 아마도 회사 내부적으로 어디보다 코로나 관련 대응을 잘 하고 있다는 인상 내지는 실적을 내야 하는 관련부서의 입장이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속한 관제센터라는 곳이 한시도 비울 수 없는 곳이라는 업무적 특성 등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일부러 쉬려고 해도 어려운 2주간의 추가 공가가 결정되고 같은 부서원들은 근무까지 조정해 나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이 되어 가시방석같은 2주를 보내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소식을 들은 장모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장모님은 대뜸 "답답하겠지만 절대 밖에 나가면 안된다. 회사에서 알면 목아지 짤린다. 절대 나가면 안돼. 집에서 푹 쉰다고 생각하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얘기하고, 내가 해서 갔다줄테니까." 라고 폭풍 랩핑을 선보이셨다.
회사에서 스스로 퇴사하는 장면은 상상해본 적이 있지만, "목아지 짤린다"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생생하게 듣고보니 그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은은한 데미지가 증폭파처럼 마음속에 파장을 일으켰다.
'아, 그렇구나. 회사에서 목아지를 짜르면 짤리는구나. 그렇게 나가라면 나가야되는구나. 허어..'
정작 장모님과의 통화 소식을 들은 아내는 웃으면서 얘기한다. "회사 짤리면 나랑 같이 아이들 가르치면 되지뭐. 수학, 과학 하면 되겠네. 별 걱정 없는데?"
사실 아내가 아이들 가르쳐서 나만큼은 버니까 딱히 아니라고는 못하겠지만 내심 속으로 회사라는 존재에 매우 종속적인 사고를 하고 있었다는 걸 틀긴 것 같아 마음이 복잡 미묘하다.
자르면 짤리는 목이 갑자기 서늘하다. 어차피 모를텐데 집앞 마트 정도는 다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몸이 움츠러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월급쟁이라는 신분은 늘 불안정하다.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인식하지 않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있기 때문에 잘 못 느낄 뿐이다. 몸은 편할지 몰라도 마음이 불편하다. 솔직히 드럽게 씁쓸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