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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Sep 11. 2020

생활 공간에서 벌어지는
"괴담"의 무서움

전건우 괴담집 "괴담수집가" 책 리뷰




1. 약은 약사에게 호러는 전건우 작가에게...


전건우 작가는 국내 최고의 호러 전문 작가입니다. 건강 문제로 활동에 다소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독자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런 전건우 작가의 최근 출간작들을 보면 호러 전문 작가가 맞나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북오션에서 출간한 "나는 공포소설가"는 에세이, 몽실 북스에서 출간한 "살롱 드 홈스"는 정통 탐정 추리소설, 시공사에서 출간된 앤솔로지"좀비썰록"은 좀비 소설, 또 다른 앤솔로지 "어위크" 역시 다양한 장르를 혼합한 앤솔로지(여기서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맡았음), 그리고 꾸준히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 과학스토리 단편 시리즈는 SF 혹은 그 비스무리한 소설...


출간되고 있는 책들만 보면 장르소설이라면 뭐든 쓴다는 인상을 줍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무슨 장르던 많이 쓰고 발표해주면 나쁠 것은 전혀 없습니다만, 제 입장에서는 호러 전문 작가라고 소개하기에 머슥한 느낌이 살짝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출간되고 사랑받은 주요 작품들을 돌아보면 참여한 단편집들을 제외하고서도 "밤의 이야기꾼들", "유령들", "소용돌이", "고시원 기담", "한밤중에 나 홀로" 등 단독으로 발표한 작품들은 대부분 호러소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살롱 드 홈즈" 같은 추리소설은 하드코어 스릴러 스타일이 녹아있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추리소설인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수작이라 호러만 잘 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건우 작가의 뿌리이자 기반은 분명 호러 계열임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북오션에서 출간된 "괴담 수집가"는 특별히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는 분들이 기대할만한 작품입니다. 호러도 세분화하면 여러 가지 형식이 있겠지만 이번에는 아예 "괴담"을 들고 나왔습니다. "나는 공포소설가"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면서 오랜 기간 수집된 "괴담"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괴담 수집가"는 그 수많은 괴담 중 몇 가지를 뽑아 수록한 작품입니다.






2. 좋은 호러 괴담은 과연 어떤 맛일까?

   나무 위키에 따르면 [괴담(怪 談)이란, 괴이하거나 무서운 이야기를 의미한다.]라고 합니다. 참 대충 무미건조한 설명이로군요. 이 정도 정의로는 괴담에 대해 와닿지 않습니다. 다행히 작가는 서문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괴담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괴담이란 섬뜩하고 기분 나쁘며 설명할 수 없는 이야기를 말한다. 자칫 자극적이고 유치한 잡설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긴 생명력을 가진 괴담은 종종 그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다. (중략) 그 시대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이며 예민한 주제가 모여서 하나의 이야기로 탄생하는 것이 바로 괴담이다. 괴담이 현실성을 가질수록, 시대의 공포를 건드릴수록 그 생명력이 길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전건우 작가는 괴담이 마냥 무섭기만 하면 생명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섭게 여겨질만한 주제가 모여 이야기가 되었을 때 생명력이 있는 괴담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설명과 취지에 딱 맞는 이야기들을 선별했습니다. 이 소설집에 등장하는 괴담들은 모두 우리가 현시대에 실생활 중에 겪는 주요 공간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뜬구름 잡는 옛날이야기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비록 초현실적인 설정이 있을지라도 꽤나 현실감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괴담"이 그저 재미있고 흥미만 끄는 경우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여겨질 때입니다. 그런데 괴담이 발생하는 배경이 지하철 안, 자취 방안, 평범한 도심, 으스스 한 골목길, 자동차 안 등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죠. 바로 나의 실생활에서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괴담쯤이야'라며 피식 웃으며 읽다가도 한 편 한 편 읽어나갈수록 점점 더 뒤통수에 대미지가 뭉툭하게 쌓여가는 것입니다.


   저도 이 소설집을 처음 읽을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무서운 이야기 읽는 걸 드럽게 싫어해서 독한 호러소설은 모조리 피하기는 하지만 전건우 작가의 호러는 마냥 무섭기만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매력에 읽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괴담'은 어릴 때부터 어디선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였습니다. 초반에는 정말 '음.. 좀 싱거운걸?'이라고 호기로운 생각도 했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진짜 그냥 괴담에 불과한데 읽다 보니 점점 웃으면서 읽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었고, 각종 상상 때문에 제법 무서웠습니다. 아우 니미럴...


   이 소설집에서 또 하나 놓치면 안 되는 점은 바로 소리에 대한 묘사입니다. 우리가 극장에서 공포영화를 볼 때 정말 무서운 것은 음향 효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음으로 공포영화를 보면 하나도 안 무섭죠. 이런 공포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 저자는 글로만 되어 있는 소설에 입체 서라운드 시스템을 장착하듯 소리에 대한 묘사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 무서운 소리는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되면서 공포심을 극대화해주겠지요. 이 부분이 별것 아닌 전해오는 이야기에 무서움을 입히는 주요한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염두에 두고 읽어보시면 재미있을 소설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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