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퀀시 증정품 받기가 제일 쉬웠어요~~
1. 스타벅스 그게 뭐라고...
멀지 않은 과거의 나는 꽤나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지만 대체로 사고 패턴이 낡고 구린 편이었다. 무슨 일을 만나든 '그까짓 거 그게 뭐라고...'라며 뭉개고 보는 방식이었다. 쿨한 척하기 병 환자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과 게으름이 적당한 배율로 믹스 앤 매치되면 나타나는 태도에 지나지 않았다.
돌아보면 딱히 발전할 생각도 없고, 발전해야 할 이유도 없으며 지금 삶의 모습이 더 나아져야 할 '꿈'이라는 것이 명확히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꿈'이라는 것은 가지면 너무나 멋진 것이지만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망상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구체적인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결정적 차이는 역시 세상과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커피를 마시지만 커피 맛도 문화도 잘 모를 시절부터 다른 사람들이 스타벅스를 흥미나는 일상으로 여기며 그 문화에 열광할 때, 나는 쿨한 사람처럼 '그 담뱃재 맛이 나는 독한 커피를 왜 좋아한단 말인가?'라며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비싸지도 않은 가격이었지만, 그때는 왜 저렇게 비싼 비용을 스스로 써가며 저기에 돈을 낭비하는가?라는 생각도 하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무언가에 기대고 중독되는 것처럼 스타벅스 굿즈들을 사들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멀지 않은 과거의 나, 그땐 그랬다...
2. 스타벅스 무슨 프리퀀시라고?
몇 년 전이었다.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어 종로 쪽에 갔는데, 식사 후 차를 마시는데 꼭 스타벅스에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뭐지? 예쁘고 개성 있는 카페가 이렇게나 많은데?' 전국에 널린 표준 매장 스타벅스를 꼭 가야 한다며 뭔가 들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이해가 어려웠다.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굳이 찾아간 스타벅스 매장에는 사람들이 빼곡하고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렵다. 그럼에도 나갈 마음을 없어 보였다.
스마트폰에서 뭔가 어플을 열더니 e-프리퀀시(그때도 이 명칭이었는지는 관심도 애정도 없어 기억이 나지 않지만 같은 내용이니까) 스티커를 모아야 한다고 서로 얼마나 모았는지 비교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었던 것 같은데 어플에서 어떤 화면을 열자 귀염귀염 백경에 크리스마스트리 선물 장식 형태의 스티커 현황 같은 화면이 보였다. '와... 뭔지 몰라도 이거슨 신세계, 뉴 월드, 이 사람들은 신인류다...' 스타벅스 어플조차 모르던 나에게 신기한 세상이 열렸다.
그때 당시 뭔가 스티커를 모으면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증정한다고 했던 것 같다.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 당시에도 '아니, 다이어리를 쓰지도 않는 사람들이겠지만, 쓴다 하더라도 다양한 디자인의 좋은 다이어리가 넘쳐나는 세상에 왜 이 난리 법석을 피우면서 저 다이어리를 받아야 한단 말인가?'라며 속으로 냉소했던 것이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어차피 스타벅스가 다이어리나 다른 용품 제조회사도 아니고, 증정품이니 저렴하게 업체에 맡겼을 것이 뻔하지 않은가?'라는 생각도 연이어 하면서 부정에 부정을 더하곤 했다.
그 이후로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사이렌 오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문명의 이기란 활용하는 사람에게만 편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서적 불평등을 안겨 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스타벅스 카드를 만들고, 어플을 깔고 돈도 충전해보았다. 이 과정이 그다지 순탄치는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사은품이니 뭐니 관심도 없고, 스타벅스에서 커피 마실 일도 흔치 않다 보니 가끔 "스벅 e-스티커 주실 분~~~"이라는 말이나 글을 접하면 내가 본의 아니게 모은 스티커를 잘 챙겨서 보내주곤 했다. 아이고 아까워라... ㅋㅋ
3. 지령 "띠링", 서머 레디 백을 사수하라!
나는 변화를 지지리도 싫어하는 현실 안주형 인간이다. 이런 나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원동력은 바로 아내다. 아내는 안 그런척하면서 변화를 너무 즐긴다. 집안 인테리어도 심심하면 바꿔 재끼며 그 과정에서 가구도 망가뜨리는데 그럼에도 멈출 줄 모른다. 말하자면 나는 "있으면 하자. 없으면 말자. 그런데 대체로 없으니 대체로 말자"라는 태도다. 반면 아내는 "하고 싶다. 해야 하니 하자." 식의 노빠꾸 스타일이다. 이런 노여사님의 인도하심 때문에 나는 계획에 없던 일들을 너무도 많이 겪게 되는데, 서머 레디 백 이벤트야 그중 정말 귀여운 수준에 속한다.
여튼 얼마 전 노여사가 카톡으로 아무런 설명도 없이 뭔가 링크를 보냈다. 이거슨 니가 눌러서 내용을 확인해보라는 지령이다. 보아하니 스타벅스 가방 같은 건데 '아, 이거슨 또 무엇인가?'라며 내용을 확인했다. 요는 스타벅스 여름 프리퀀시 행사를 하는데 그중에 레디 백이라고 도대체 어디다 써야 할지 용도를 알 수 없는 소형 캐리어 같은 것을 준다는 것이다. 단, 니놈들이 지정하는 음료 석 잔을 포함해 열일곱 잔을 마셔서 스티커를 채우면 말이다.
재미있었다. 17잔이면 내가 평균 1년 동안 마시는 스타벅스 커피의 총 량 정도 되려나? ㅋㅋ 가벼운 마음으로 "하, 이쁘네~~"라고 하고 말았다. 그러나 노여사의 의지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꼭 받았으면 좋겠다는 것! 이벤트 기간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엔 참 정신 나간 미친놈들이 많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미쳐가고 있었다. 후배를 만나 밥을 먹고 나서 "야, 커피는 스타벅스 가서 마셔도 되지?"라는 몇 년 전 선배들이 하던 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후배는 나보다 훨씬 스타벅스를 좋아하고 이미 미쳐있는 한참 윗길. 대환영이라고 한다. 그래서 단도리를 확실히 했다. "야, 밥값은 내가 냈지만 커피는 꼭 내가 산다..."라고.. 흐으..
모임에 갈 때도 굳이 스타벅스에 들러 캐리어 가득 사들고 가며 며칠 만에 스티커를 채웠다. 살면서 느낀 얼마 안 되는 성취의 기쁨을 한없이 느끼면서 마음을 다 잡는다. '아직은 성공이 아니야. 성공할 수 있는 여건만 갖췄을 뿐'이라며 노여사와 운동 겸 팔당 드라이브스루 매장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서머 백은 이미 소진,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매우 정중하고 공손하며 한없이 간절한 태도로 직원에게 물었다. 언제 레디 백이 들어오냐고. 그러면서 나 원래 이런 거 잘 하는 사람이 아니고 너희들의 문화에도 익숙하지는 않다는 모습을 온몸으로 연기했다. 아, 물론 진짜 익숙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처음이니까. ㅋㅋ 이 양반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측은지심이 발동했는지 둘이 서로 앞다퉈 정보를 전해준다. 언제 들어올지 자신들도 전혀 모르고 알려주지도 않지만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재고가 들어고 한 번 들어올 때 색상 랜덤으로 여섯 개에서 여덟 개 정도 입고가 된다고 말이다. 너무 감사하지만 결과적으로 큰 도움은 안 되는 정보였다. 받고 싶으면 매일 아침 일찍 오픈할 때 오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닌가...
노여사와 돌아가는 길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일부터 새벽 운동이다. 레디 백을 받을 때까지!'라며 실현 가능성이 매우 낮은 다짐을 했다. 결과적으로 허무해진 것이, 그날 야간 근무에 들어간 다음 날 아침 퇴근길, 별 기대 없이 들른 지하철역으로 가는 방향에 있던 사당역점에서 녹색만 재고가 하나 있다는 답을 들은 것이다. 세상에나 이렇게 사람들이 붐비고 늘 자리가 없는 핫한 매장에 재고가 있다니! 대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분명 언론에서 과열 현상으로 구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쉬운 거였나?' 하며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새벽에 일어나지 못해 약간의 자괴감에 빠져있는 노여사에게 이 소식을 전했더니 역시나 비슷한 반응이 돌아왔다. "뭐냐? 허얼.." 그러더니 금세 또 만세 만세를 외치며 좋아했다. 그걸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뭔가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몹시 민망하고 부끄러운 이중적인 감정을 느꼈다.
이렇게 나의 생애 첫 스타벅스 프리퀀시 증정품 사냥기는 싱겁게 끝이 났다. 염세주의자처럼 부정적인 태도에 현실에 안주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나는 인생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보고자 마음먹고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즐기고 환영하고 피하지 말고 경험해보며 일단 겪어보자고 마음먹고 난 이후는 하루하루가 매우 즐겁고 충만하다. 이 애매한 백에 도대체 뭘 담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두기만 해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긍정적인 인생 태도의 작은 상징이 될 테니까.
라고 쓰는 지금 나는 아내 손에 이끌려 생전 처음으로 눈썹 문신하는 곳에 다녀왔다... 크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