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련 작가 [바리스타 탐정 마환] 책 리뷰
1. 한국적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가 훌륭한 소설
양수련 작가님의 장편소설 "바리스타 탐정 마환"은 한국의 전통 민화, 그 중에서도 "평생도'에 얽힌 미스터리한 이야기를 엮어 낸 탐정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한국적 디자인의 표지부터 제목과 부제, 책 표면의 촉감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는 이 소설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적당한 텐션을 유지하며 독자를 만족시키는 훌륭한 작품입니다.
양수련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인데, 무척 흡족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작가님을 왜 여태껏 모르고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이 소설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쏙 들었지만 굳이 가장 좋은 점을 뽑아보자면 작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도대체 작풍이 뭔데?라고 물으신다면 딱 꼬집어 뭐라고 대답하기가 힘들지만 전반적으로다가 좋았다. 뭐 이래 이해해 주시면 되시겠습니다. 그래도 굳이 좀 자세히 말해보라고 하신다면 작가가 작품을 대하는 태도랄까? 작품을 다루는 방식이 무척 좋습니다. 그러니까 그 방식이 뭐냐고 재차 물으신다면 니가 읽어보면 아실 거라고 해둡시다.
아무래도 이 작품을 읽고 "평생도'라는 소재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평생도는 민화의 일종으로 원래는 양반이나 고관대작들이 자신의 일평생 업적,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평생의 일대기를 여러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 미술작품을 말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성공한 분들이 그냥 가시기 아쉬워 쓰시는 자서전 같은 느낌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사실 민화의 평생도라는 소재는 대부분 독자들에게 생소하기 때문에 흥미를 끌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평생도라면 그렇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원래 정상적이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소재로 끌어들여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성공한 양반이 아닌 최하층 "노비가 그린 평생도"라는 설정입니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노비의 평생도라는 소재는 의외로 흥미를 마구 자극하게 되는 것입니다.
통상 작가들은 소설을 구상하면서 독자의 관심을 끄는 독특한 소재 선택에 고심하기 마련인데, 결과적으로 의외로 식상하거나 억지스럽거나 노관심인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소설은 애초에 몰라서 무관심했던 것에서 출발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면서 긴장감을 끝까지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매우 잘 쓰인 소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작가의 역량과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사실 탐정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뛰어난 탐정이 관심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고 현실성도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 속 주인공 마환은 탐정들의 클리셰를 따르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어쩌다 보니 다양한 사건에 휘말려 본의 아니게 탐정처럼 되어버린 그런 인물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도 마환은 결코 본인이 잘난 탐정이라는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사건을 의뢰하러 온 사람이 마환의 관심을 끄는 일을 맡겼기에 점점 휘말리는 구조로 짜여있습니다. 그렇기에 전혀 불편한 감정 없이 주인공에 감정이입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독특한 혼령인 "할"의 존재까지 더해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할"이 그냥 미스터리한 존재로 그치지 않고 이 작품 속에서 중요한 사연까지 밝혀지기 때문에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양한 주변 인물들이 서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상호 관계가 조화롭습니다. 인물 한 명 한 명이 나름의 매력이 있고 개성이 살아있어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2.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촘촘한 구성이 돋보이는 소설
"바리스타 탐정 마환"은 일반적인 장르 소설과 결이 조금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장르소설의 특징을 잘 가지고 있으면서도 의외로 차분한 느낌이 특징적입니다. 사건을 중심으로 휘몰아 내달리는 장르소설이 아닙니다. 작품 속 각 인물의 상황과 사연과 관계를 따박따박 꼼꼼하게 풀어나가면서 점진적으로 진행해나갑니다. 이 과정이 직선적이지 않고 입체적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인물 간의 사건과 각 인물의 감정, 욕망, 행동과 결과들이 산발적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각각 흘러 다니던 선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훌륭하고 정교한 회화 같은 작품을 이룹니다.
추리소설이건 탐정소설이건 읽으면서 미리 범인을 예측한다거나 하는 법이 없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읽는 편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후반부로 가면 갈수록 드러나는 인물들의 과거와 관계가 재미있어 여러 번 감탄을 했습니다. '아~~ 이 양반이 그 양반이로군. 이 사람이 저 사람이랑 이런 관계로군' 뭐 이런 느낌으로 말입니다. 그런 재미가 풍성한 소설입니다.
100년 전이라는 과거 상황에 맞게 공간적으로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한창 계급 제도가 무너지고 혼란스럽던 시기의 한국과 일본, 그리고 현재의 한국과 일본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며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어쩌면 복잡해서 독자가 흥미를 잃을 위험도 있지만 이야기를 잘 풀어가며 강약 조절을 하고 있어 불편함 없이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구조에서 평생도라는 소재와 이를 둘러싼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사연, 과거와 현재, 한국과 일본이라는 여러 가지 요소를 균형감 좋게 잘 짜내고 있습니다. 작가의 타고난 센스가 좋은 건지, 그만큼 고민을 많이 하고 퇴고를 열심히 한 건지 알길은 없지만 결과물이 무척 훌륭합니다.
3. 아쉬운 부분을 딱히 찾기 어려운 소설
사실 통상 저의 책 리뷰에서 세 번째 파트는 어지간하면 읽으면서 조금이라도 아쉬웠던 부분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러 계획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의식의 흐름상 장점을 최대한 언급하고 그래도 그냥 마무리하기는 껄쩍지근한 부분이 있으면 에둘러 표현하는 방식으로 언급합니다. 다 좋았으나 표지 그림이 좀 아쉬웠다거나 주제가 작가의 의도대로 표현되었는지 의문이라든지 하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한때는 까칠하게 리뷰를 쓰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좀 했었는데 갈수록 작가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쓴 작품에 대해 너무 함부로 쉽게 악평을 쏟아내는 무성의한 말과 글의 시대에 나까지 일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나름의 자기반성이 있었습니다. 악의가 너무 넘치는 시대입니다. 심지어 돈을 받고 진의가 확인 안된 말과 글을 쏟아내는 시대가 아닙니까?
이 소설은 아쉬운 부분을 언급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저로서는 단점을 찾기 어렵습니다. 제 취향에 잘 맞을지 매우 걱정스러운 소설이었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역사를 다룬 소설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데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과거 이야기는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참, 이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애끓는 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르소설에서 이런 방식으로 부모의 사랑을 주제의식으로 잡으면 상당히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독자 입장에서 지나친 감정 과잉을 받아내기 불편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엄청 애정 하는 혼다 테쓰야의 "소울 케이지"에 등장하는 부성은 이해는 하나 공감은 어려운 지나친 감정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묘사되는 노비 말복의 부성은 충분히 공감이 갔습니다. 부성 뿐 아니라 아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주인공 마환과 마환이 아버지 사이의 관계에서 오는 갈등과 감정도 매우 충분히 지나치게 잘 공감되었습니다. 안타까움도 느끼면서 이야기에 끼어들게 되었습니다.
더 좋았던 부분은 어느 캐릭터도 갑작스럽게 교훈을 얻어 입장이나 태도, 마음가짐을 바꾸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주 나쁜 태도를 보이던 인물이 소설 속 사건을 겪으면서 슬슬 교화되는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드럽게 안 바뀐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짧은 이야기 속에서 사람이 바뀌면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각자 관계 속에서 어설프게 개선이 되거나 대화합의 장을 이루는 판타지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전체 이야기 속에 이어온 주제의식이 빛을 발합니다.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MSG 느낌이 전혀 없는 본연의 맛이 매우 잘 살아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MSG 특유의 텁텁함이 입안에 없습니다. 상쾌하고 더 읽고 싶은 끝 맛을 유지하게 되고 이 소설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게 남은 채 마무리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뒷이야기를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거의 찬양에 가까운 리뷰를 쓰게 됩니다. 그만큼 저에게 만족도가 높았던 작품입니다. 독특하고 개성 있는 한국적 탐정소설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혹시라도 읽으셨는데 생각보다 별로라면 제가 너무 설레발을 쳤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감안하고 읽으시고 혹, 완전 별로였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다면 그건 뭐... 취향 차라고 해둡시다.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