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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Sep 02. 2020

경찰 소설의 고전 87분서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

에드 맥베인의 "레이디 킬러" 책 리뷰




1. 언제나 즐거운 87분서 시리즈의 신간

   피니스아프리카에 출판사의 87분서 시리즈를 만난 지도 오래되었습니다. 2013년도 초에 처음 살의의 쐐기가 출간되었으니 벌써 7년은 훌쩍 지났습니다. 처음 만난 책이 조각 맞추기였는데, 그때만 해도 뭔가 심심한 내용에 큰 매력을 못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시리즈의 다음 작품을 읽게 되었습니다. 장르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더해지는 법입니다. 즉, 87분서 시리즈의 집단 주인공 로테이션 체제에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갈수록 친근하고 반가움에 즐겨 찾게 되는 그런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는 집단 주인공 체제기 때문에 아이솔라라는 가상도시의 87분서 경찰서 자체가 주 무대이자 주인공들입니다. 이를테면 아이돌 그룹 애프터스쿨 같은 체제입니다. 때마다 멤버가 바뀌면서 탈퇴.. 아니 졸업도 하고 입학도 하는 그런 시스템이랄까요? 그렇기에 사건이 진행되면서 때로는 순직하기도 하고, 전근을 가거나 오기도 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허용하는 소설입니다.


   워낙 오래된 고전이다 보니 지금의 환경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지문 검색 하나만 하려고 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고 CCTV는 꿈도 못 꿀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면 쉽게 해결될 일을 무척 힘들게 찾아다니며 몸으로 때우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차이에서 오는 투박한 맛이 넘칩니다. 어쩌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2. 크랭크, 하루 사이에 일어난 긴박한 사건

   87분서 시리즈는 다양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최 근간인 "레이디 킬러"는 크랭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아예 소설의 첫 문장부터 크랭크에 대해 설명하면서 시작합니다.


크랭크는 프레더릭 7-8024로 전화해 "아래층 중국인이 운영하는 세탁소에 대해 또 얘기하고 싶지 않소. 주인공의 스팀다리미 때문에 잠을 못 자겠단 말이요. 자, 이제 그를 체포해 주겠소?"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크랭크는 경찰서로 장난 전화를 걸거나 거짓 투서를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어원을 찾아보면 "괴짜, 화를 잘 내는 사람" 같은 뜻이 있습니다. 현대로 치면 악성 민원인 정도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걸려오는 장난 전화 때문에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 되는 경찰서의 고질적인 문제를 한 번쯤 소재로 사용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문제는 이런 크랭크 전화나 투서가 모두 장난은 아닐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중 단 한 건이라도 실제 위협이라면, 그리고 그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경찰 입장에서는 미리 예정된 사건을 손 놓고 있다가 막지 못한 셈이 됩니다. 그러니 조직 차원에서 크랭크에 대응하는 문제는 매우 난감한 사안입니다.


   이 작품에 다루고 있는 크랭크는 한 편의 편지입니다. 그리고 편지에는 저녁 8시에 레이디를 죽이겠다는 협박이 쓰여있습니다. 시간은 단 12시간뿐입니다. 이 짧은 시간 안에 사건의 진의를 파악해야 하고, 피해자와 범인을 가려야 하며 살인을 막아야 합니다. 이렇다 할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87분서 경찰들은 고분분투하며 사건을 파헤쳐 나갑니다. 찌는 듯한 더운 날씨에 이런 막연하고 답답한 상황을 풀어나가는 장면을 따라가며 가슴 졸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조금씩 사건의 내막에 다가갈 때의 기쁨도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활약하는 주인공을 보는 재미도, 잠시 등장하는 형사를 반가워하는 재미도 있습니다.




3. 87분서 시리즈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는 방법

   87분서 시리즈는 정말 독특합니다. 하나하나 읽어보면 제법 재미가 있기도 하지만 현대 경찰 소설과 비교하면 심심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리즈는 한 번 읽으면 계속해서 읽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어떤 형사가 메인 주인공으로 나서서 활약을 할까?', '이 번엔 어떤 특별한 사건이 발생할까?'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순직하거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어 조마조마하기도 합니다. 아마도 87분서 형사들에게 생긴 애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이 시리즈는 읽으면 읽을수록 재미가 배가됩니다. 사람마다 어느 작품이 가장 좋았다고 뽑을 수는 있겠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다 고만고만하고 좋게 보면 대체로 균질한 재미를 보장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 취향에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움이 계속 유지된다고 해야 할 듯합니다. 어쩌면 처음에 읽었던 "조각 모으기" 같은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87분서 시리즈는 평론가들에게 가장 좋은 한 편을 꼽으라고 해도 각자 다른 작품을 꼽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각자 매력이 있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 어떤 작품을 더 선호하고 좋아할지는 개인마다 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는 이번 작품 "레이디 킬러"도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7분서 시리즈는 원서 순서대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한 편의 길이가 그다지 길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많이들 읽어보시고 이 시리즈의 매력을 알아가셨으면 하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야 제가 이 시리즈를 앞으로 더 읽어볼 수 있도록 출판사에서 다음 책을 출간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많이들 좀 도와주십시오. 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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