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돈다돌아 Aug 25. 2020

촘촘하게 짜인 스토리와 구조가 흥미로운 추리소설

김재희 작가 [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 책 리뷰



1. 다양한 주체와 설정으로 다채로움을 더하는 전개 방식


   국내 추리소설계에서 오랫동안 활동을 하셨고,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 등으로 유명하신 김재희 작가님의 작품을 하나도 안 읽었다는 점에 대해 스스로 의아합니다. 지금이라도 이 분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군요.


   최근작 하나만으로 작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적잖이 머쓱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 소설 "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를 읽고 나니 작가의 필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정 지역에서 벌어진 미제 사건에 대해 추적한다는 기본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단순히 탐정이 사건을 의뢰받아 풀어나가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사건을 입체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전개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이런 형식이 가능했던 이유는 프로파일러 '감건호'라는 캐릭터의 존재 때문입니다. 한때 잘나가던 프로파일러지만 시대에 뒤처지고 방송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하자 있는 주인공 '감건호'. 그의 존재는 대척점에 있는 젊고 똑똑하고 패기 넘치는 "왓슨 추리 카페" 주요 멤버들의 도전으로 이어지는 구조에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이런 구조로 인해 "감건호의 미제 추적"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대결의 형식으로 사건을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캐릭터와 구조를 짜는 작가의 센스가 돋보이는 부분입니다.


   김재희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탐정 그룹까지 투입해 더욱 다양한 주체가 입체적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도록 배치합니다. 탐정 그룹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단순히 명탐정이 일을 진행하도록 하지 않고 베테랑 탐정과 청년 탐정의 조합을 배치해 협동하도록 함으로써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하모니를 보여주도록 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는 2년 전 미제 사건을 풀어나가는 스토리지만,  한 쪽 사이드에서는 기성세대인 꼰대 프로파일러 "감건호"와 젊은 세대인 "왓슨 추리 카페 멤버들"의 대립을 통해 각자 교훈을 얻는 설정을, 다른 한쪽 사이드에서는 신, 구 탐정 간의 협력의 하모니를 보여줌으로써 비교와 대조 기법을 통해 조화로운 다층 구조를 완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프로파일은 물론, 해부학적 지식과 실제 수사기법에 기초한 전문 지식 등에 대해 꼼꼼하게 취재하고 조사한 흔적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를 완성하고 있어,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주고도 남을 소설을 완성한 것 같습니다.




2. 작품에 드러나는 작가의 성품...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은 작가의 성품이 소설 속에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통상 추리소설의 경우 작품성도 뛰어나야 하지만 가독성이 정말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시작부터 결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가는 전개가 큰 미덕 중 하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불필요한 설명은 최대한 생략하고 사건의 전말을 풀어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흔히 표현하는 순문학 작품에 비해 문장도 단순하고 쉽게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김재희 작가님의 "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를 읽다 보니 전형적인 추리소설보다는 순문학적 요소가 많이 섞여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흐름이 지나치게 빠르지 않고, 문장도 캐릭터 묘사도 탄탄하고 충실합니다. 특히 제법 복잡한 구조의 스토리에서 한 캐릭터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캐릭터가 등장할 때마다 친절하게 인물의 과거와 배경, 사건 사고를 하나하나 설명하다 보니 때로는 '아니 이 양반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으니까 얼른 이야기를 진행해 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특징이 나타나는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가님이 너무 착하기 때문이라는 추정입니다. 넘치는 애정과 배려심이 캐릭터 한 명 한 명 섭섭지 않게 챙기느라 스피디한 전개를 조금 양보한 것 같습니다. 저로서는 작가님의 작품 스타일이 익숙지 않아서 그런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어서 이런 부분은 다른 작품을 좀 더 읽어본 후에야 정확하게 평할 수 있을 듯합니다. 


   꼼꼼하고 성실하고 배려 깊은 성품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품 자체에 성실과 정성과 배려가 넘쳐납니다. 여기에 청년층에 대한 측은지심까지 발동하고 있어 다양한 메시지가 넘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의 연령 때문인지 감건호 프로파일러에게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되었고, 짠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은 이런 전형적인 기성세대를 등장시킴으로써 청년층의 고달픔과 불안을 대비해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성세대 감건호도 피디도 청년들도 모두 불안하고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어쩌면 아쉬움이 될 수도 있는 전개 방식

   제법 분량이 긴 장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다층적인 구조와 전개 방식은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각 인물의 과거와 특징들까지 일일이 설명하고 넘어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낄 여지마저 있습니다. 이는 작가의 특징일 수도 있고, 한 편으로는 순문학적 요소와 장르소설의 장점을 잘 결합한 방식에서 나타나는 특징일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이런 작가의 특징이 강점으로 작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장르소설의 독자 중에는 좀 더 빠르고 단순한 전개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교차합니다. 작금의 시대적 변화나 트렌드를 굳이 끌어오지 않더라도 대중적인 요소를 감안하면 독자 입장에서도 고민을 더하게 합니다. 


   아마도 이미 많은 작품을 소화하신 작가님 입장에서는 현대물을 쓰면서 우리 사회에 가장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세대 갈등과 청년 세대의 아픔을 꼭 다루고 싶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적으로 잘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순전히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번 책에서 담고자 했던 문제들은 다른 책이나 소설, 영상물 등 다양한 대체재가 있습니다. 특정 독자가 대표성을 띠기는 어렵지만, 독자들이 김재희 작가님의 추리소설을 통해 얻고자 하는 즐거움, 즉, 독자의 니드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청년들의 불안함에 굳이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부분일 수도 있겠습니다. 좋은 작품을 쓰고자 하는 노력과 고민이 깊어짐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훨씬 더 손쉽고 단순하게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그냥 읽으면서 흥미진진하면 "최고예요!!"라고 반응하고, 작가의 주제의식에 마냥 "어려워요!!"라고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더 많이 사랑받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조금은 더덜어내고 단순하게 갔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해 봅니다. 


   김재희 작가님의 근작 "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는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잡은 좋은 작품입니다. 작가의 고민과 노력이 많이 느껴지는 작품입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읽으면서 느꼈던 부분이 어떻게 다가오시는지 적잖이 궁금합니다. "청년은 탐정도 불안하다"의 일독을 권장해드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누가 더 떡볶이스러운 소설을 썼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