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책 리뷰
1. 떡볶이로 엮어내는 소설이라니?
사실 이 책의 출간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듣고 있었습니다. 떡볶이 관련 책이라고 해서 당연히 "에세이집"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떡볶이를 주제로 여러 작가가 쓰는 책이라는 건 각자 떡볶이에 대한 자신의 경험담이나 해프닝 같은 걸 담는 것이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버린 것이지요. 게으른 선입관이랄까. 여튼 이 책을 받아들 때까지도 에세이집이라고 철떡 같이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떡볶이에 대한 에세이집은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가 나왔었기 때문에 과연 얼마나 차별화 지점이 있을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는데, 아니 웬걸 이 책이 소설집이란 겁니다. 속으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떡볶이를 가지고 자그마치 10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소설을 쓴다?', '과연 그게 재미가 있을까?' 이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기우와 함께 읽은 첫 작품부터 이외로 신선하고 흥미로웠습니다. 짧았던 걱정은 기대와 기쁨으로 대전환을 이루며 수록된 소설들을 하나하나 읽어나갔습니다. 똑같은 떡볶이지만 재료나 조리법, 누가 만들었는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소설들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신선하고 독특해서 감탄이 나오는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다양한 떡볶이처럼, 또 언제나 질리지 않는 맵고 달짝지근한 그 맛처럼 밸런스도 잘 맞고 끝까지 즐거움을 주는 소설집이었습니다.
2. 누가누가 떡볶이를 가지고 어떤 맛을 내었나?
만약 열 사람이 모여서 우리나라에서 어느 떡볶이집이 가장 맛있는 집인가를 토론한다면 어떨까요? 아마 모르긴 해도 열 개의 떡볶이집을 추천하고 서로 싸우다 결론이 안 날 것 같습니다. 사람의 취향이라는 것은 그만큼 일반화가 어렵습니다. 옳고 그름이 아닌 좋고 나쁨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은 모두에게 통용되는 기준이란 것이 없습니다. 누구나 나만의 기준으로 "좋음"을 정합니다. 이 와중에 적어도 맛이 없는 떡볶이에 대한 의견은 대체로 일치할 확률이 높습니다.
다행히도 "당신의 떡볶이로부터"에 수록된 작품 중 재미가 없는 작품, 대체로 모두에게 '맛이 없다'라는 평가를 받을만한 작품은 없었습니다. 10개의 작품 중에 모든 작품이 괜찮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을 텐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재료에 개성 있는 조리법으로 각자 장점이 가득한 요리를 잘 해냈다는 느낌입니다.
김동식 작가의 <컵떡볶이의 비밀>은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르게 하는 레트로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는 하굣길에 뭘 사 먹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 오히려 부럽다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마지막 반전이 가장 좋았던 작품입니다. 소설집의 포문을 잘 열어준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김서령 작가의 <어느 떡볶이 청년의 순정에 대하여>는 떡볶이에 얽힌 추억으로 행복한 여행을 하다가 암초를 만나는 듯한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소재도 주제의식도 표현도 좋았던 작품이었습니다. 끝 맛이 씁쓸했던 독특한 소설입니다.
김민섭 작가의 <당신과 김말이를 중심으로>는 나의 윤리와 도덕관과는 무관하게 조직의 논리에 맞춰야만 하는 인간의 서글픔을 극단적으로 잘 표현한 소설입니다. 목이 콱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김설아 작가의 <쫄깃쫄깃 탱탱의 모험>은 다소 실험적이고 모험적인 소설이었습니다. 떡볶이의 시점으로 쓴 관점의 변화가 신선했습니다. 스토리 자체가 흥미진진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시도 자체로 새롭고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김의경 작가의 <유라TV>는 작가의 특장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설이었습니다. 먹방 유튜버라는 소재를 끌어들여 보여지는 것 이면의 안타까운 속 사정을 사회파 소설로 잘 풀어낸 데다가 누구나 좋아하는 떡볶이를 원 없이 먹는 장면을 통해 과한 것의 부작용이랄까, 구역질 나게 만드는 아이러니를 너무나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정명섭 작가의 <좀비와 떡볶이>는 이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누구나 "좀비와 떡볶이"라는 제목을 대할 때 상상하게 되는 일반적인 스토리가 있는데, 이를 완전히 때려 부수는 전혀 새로운 발상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에 감탄한 소설이었고,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게 되는 흥미로운 소설이었습니다.
노희준 작가의 <떡볶이 초끈이론>은 역시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떡볶이와 SF의 어색하지만 새로운 만남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노희준 작가님의 이력을 생각하면 당연한 시도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 소설 자체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이 소설로 인해 노희준 작가의 SF 소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차무진 작가의 <서모라의 밤>은 그 자체로 매우 재미있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취향을 저격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마치 새로운 무협소설 같은 느낌에다 시간 여행을 차용한 SF 적인 요소도 들어있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떡볶이로 치면 전통적인 레시피가 아니라 평소 다른 사람들은 잘 쓰지 않는 재료를 막 섞은 데다가 조리법도 '으응?'하게 만드는? 그런데 먹어보니 너무 맛있어서 따질 수가 없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조영주 작가의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떡볶이>는 역시나 작가 특유의 캐릭터를 다루는 법이 잘 살아있는 소설이었습니다.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주인공 내면의 감정 변화가 섬세하게 묘사됩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독자라면 그 절제된 뉘앙스를 통해 인생사 다양한 감정의 흐름 속에 빠져들게 되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떡볶이를 연습하는 장면에서 가서는 주인공을 응원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 훌륭한 작품이었습니다.
이리나 작가의 <송 구리 당당>은 떡볶이라는 음식의 본질에 가장 정통한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그전에도 역자 후기 등을 통해 이리나 작가님이 필력은 이미 확인해온 바 있습니다만, 이 작품을 통해서 기존 작가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좋은 글을 쓰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 소설이라 소설집에서 요구하는 기본 테마에 가장 충실하게 써주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앞으로 더 많은 소설을 써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작가님의 매력을 더 발산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3. 당신의 김밥으로부터?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인 "떡볶이"를 테마로 10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써낸 10개의 개성 넘치는 소설집인 이 책은 읽고 나면 여러 가지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상념에 빠지게도 하는 아주 좋은 기획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10명의 작가들이 쓴 소설들이 내용이나 소재나 캐릭터나 기술방식 등이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점이 떡볶이라는 음식의 속성을 너무나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개성 강한 작가들에게 더 많은 조건을 제시했더라면 소설집의 경쟁력을 해칠 뻔했습니다. 오히려 이 기획의 가장 중요한 점은 어떤 소설을 쓰도록 할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를 합류시킬 것인가의 선택에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결과적으로 매우 훌륭한 선택이었고, 안정과 파격을 오가는 좋은 시도였다고 봅니다. 뭐든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았을 거라 미루어 짐작하기 마련이기는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읽는 내내 즐겁고 행복했던 소설집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좋은 기획은 명맥을 이어가는 것도 좋지 않나 싶습니다. "당신의 김밥으로부터"도 좋고, "당신의 짜장면으로부터"도 좋습니다, 호불호 없는 국민 음식이라면 시리즈로 이어가는 것도 신중하게 고려해 주면 좋겠습니다. "당신이 과메기로부터"나 "당신의 홍어로부터" 이런 건 원치 않지만 모두가 사랑하는 음식은 얼마든 많고, 수많은 독자들이 그 음식에 추억과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으니 공감과 애정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치킨도 좋을 것 같네요. 아.. 이런저런 음식이 계속 생각이 납니다. 책 한 권으로 인해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책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떡볶이에 대한 추억이 있으시다면 재미있는 해프닝이 기억나신다면 한 번쯤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를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