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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Nov 24. 2020

변화와 비틀기를 시도하는 신박한 에세이집

유병재 삼행시집 [말장난] 책 리뷰



1. 개척자 정신으로 가득한 신박한 에세이집

   유병재 씨의 신간 에세이집 "말장난"을 처음 접했을 때, '이거 뭐 장난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N 행시로 시작한 이 에세이가 어디까지 가나 읽다 보니 끝까지 다 읽고 말았습니다. 읽으면서 복잡하게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습니다. 감탄하는 마음과 약간의 불편한 마음이 동시에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 감탄스러웠던 점은 이런 형식의 책을 실제로 출간하기까지 이르렀다는 점입니다. 이 책의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일반적인 경우라면 'N 행시 형태로 책을 써볼까? 재밌겠는데? 에이... 책 같지도 않은 거 냈다고 욕먹겠지?'하고 즐거운 상상에서 시작해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르고 실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자기검열 메커니즘을 이기고 실행까지 해냈다는 것입니다. 

   여태껏 N 행시로 에세이를 내겠다는 생각을 아무도 못했다면 유병재 씨가 천재거나 남다른 아이디어를 뿜어내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될 테고, 많이들 했는데 출간까지는 엄두를 못 낸 것이라면 유병재 씨가 용감한 것이겠지요. 아니 원고가 있었다 해도 유병재 씨만큼 신박한 N 행시를 기대 이상의 균질한 품질로 뽑아내지 못한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튼, 유병재 씨가 되었건 출판사가 되었건 용감한 것이겠지요. 

   재미도 있고 아이디어도 빛나는데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감정이 뭉근히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이 책이 가지는 충실함?(에 대한 편견)과 책값의 함수 관계가 기존의 법칙에 약간 위배되지 않는가 하는 의구심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런 방식을 떠올리고 손뼉 칠 만큼 잘 해낸 작가 자신에 대한 저의 작은 열등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N 행시가 신박하다 한들, 그냥 SNS에 올리거나 본인이 출연하는 방송 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발표하는 형식으로 충분하고 굳이 책을 낼 필요까지는 없는 것이 아닌가? 이런 글을 모아둔 책을 이 가격에 사야 하나? 소장 가치가 있을까?'뭐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저의 꼰대 정신을 자극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것들이 책으로 출간될 가치가 있나라는 기존의 선입관이 흔들릴 만큼 잘 써버린 작가에 대한 알 수 없는 열등감은 제 스스로 위트나 제치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병재 씨가 평소에 스스로 낮추는 방식으로 희극인에 가까운 스탠스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말과 글솜씨가 대체로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를 바라보는 대중적 편견에 입각해 이 책을 대하면 제대로 읽기도 전에 평가절하할 위험이 있지만, 내용이나 구성을 자세히 살펴보면 형식만으로 낮춰보기에는 아이디어와 글이 너무 좋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2. 그냥 재미있는 차원을 넘어선 완성도 있는 에세이

   태생 자체가 금방 후루룩 읽기 좋은 책이기는 하지만, 내용을 조금만 생각하면서 읽으면 결코 허투루 볼 수 없습니다. N 행시를 볼 때 우리가 감탄하는 지점은 첫 글자들을 가지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가 등장할 때입니다. 그저 신선해서만 은 안되고 여기에다 의미가 있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거나 반전이 있는 언어유희가 터지면 더욱 놀라게 됩니다. 그도 아니면 시의적절한 유머와 재치가 담기는 경우도 좋습니다. N 행시의 매력은 거기에 있죠. 

   N 행시로 이루어진 책이 좋은 평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첫째, N 행시들 자체가 감탄할만해야 합니다. 둘째, 책으로써 완성도가 있어야 합니다. 각각의 N 행시가 좋기만 해서는 책으로써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에 수많은 N 행시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짜임새와 메시지는 물론 느슨하더라도 주제 의식까지 있어야 좋습니다. 

   어디까지가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말장난"은 상당히 짜임새 있고 읽기 좋은 일정한 장단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완성된 하나의 책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상당히 훌륭합니다. 내용을 보면 단순히 '가벼운 장난'이라기 보다 '고품격 풍자'에 가깝습니다. 가벼워 보이는 외피에 독자들을 때리는 묵직한 메시지가 담겨 있어서 웃프기도 하고 가슴 아리기도 합니다. 감정 동화를 겪을 독자들도 많을 것으로 여겨지는 외침에 가까운 글들도 다수 담겨 있습니다. 

    제목은 물론 초반 작가의 말도 N 행시 형식을 고집하며 '순한 맛'에서 '매운맛'에 이르기까지 N 행시라는 갇힌 형태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 인터뷰에서 본인을 '감정 대리인'이라고 생각하고 썼다는 표현이 대단히 적확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입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입니다. 

   세상에 없던 새로움이란 약간의 차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유병재 씨가 쏘아 올린 이전에 없던 파격적인 형식의 에세이가 앞으로 에세이라는 형식을 얼마나 파괴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그 파괴가 창조적 파괴가 될지 그저 '책 장난'에 그칠지도 흥미롭게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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