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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Dec 02. 2020

장르적 결합과 캐릭터의 힘이 빛나는 하이브리드 소설

문목하 SF소설 "돌이킬 수 있는" 책 리뷰




1. 장르소설의 재미에 신선함을 조합한 훌륭한 대중소설

   문목하 작가의 "돌이킬 수 있는"은 처녀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는 장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기가 어려운 것이 장르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접합 시킬 수 있는 다양한 하위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조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SF 소설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일종의 초능력 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밑도 끝도 없는 초능력의 향연이 아니라 나름 인과관계가 있고, 초능력의 사용에 한계와 법칙이 뚜렷합니다. 초반에 등장한 SF 적 설정이 무색하게 곧바로 경찰 첩보물 같은 장면이 이어집니다. 이건 또 뭔가 하는 사이에 어느덧 두 하위 장르의 랑데부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스토리가 이어지면서 판타지 같기도 하고 로맨스 같은 특징도 나타납니다. 이는 작가가 단순히 다양한 장르를 결합하려고 노력했다기보다는 본인이 기대하는 결과물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장르적 특성들을 적정 비율로 결합하고 녹아내려 했던 결과물로 보입니다. 이런 방향성이 다수의 독자들이 SF라는 기본적 외피를 쓴 장르소설에 기대하는 평균적인 기대치를 한참 뛰어넘게 하는 주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된 것 같습니다. 


   SF 소설이 매우 매력적인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독자들에게 폭넓게 사랑받기 어려운 한계, 혹은 선입관이 있다면 '과학적'이라는 틀 때문일진대, 이 소설은 '과학적'으로 보이면서도 과학적 설명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는 장르소설이라는 큰 틀에서도 확장성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며, 이 소설이 보여주는 흥미로운 요소들과 더불어 독자들에게 발견만 된다면 대중적 인정을 받기 충분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이런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적어도 "SF는 역시 어려워"라는 반응을 보일 확률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리하여 출간된 지 2년이 지난 신인작가의 SF 소설이 아직도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으며 해당 장르 추천 소설에 빠짐없이 등장하게 것입니다. 



2. 소설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캐릭터의 힘, 대사의 맛

       이 소설에는 선과 악을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서로의 입장 차이와 이에 대응하는 다양한 태도가 있을 뿐입니다. 애초에 소설 속 세계에서도 현실과 동일한 부조리의 세계가 펼쳐지기 마련이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겠습니다. 


   통상 장르소설은 독자가 쉽게 몰입하고 공감하도록 하기 위해 한쪽 입장을 지지하게 마련입니다. 그런 방식이 쉽고 깔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소설을 단순하게 만들어 가볍게 읽기 좋지만 한 편으로는 깊이 없는 소설로 보이게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 큰 부담 없이 흥미 위주로 읽기에 좋기에 큰 장점이기도 합니다. 비슷한 설정과 패턴을 반복하며 확연한 선악 구조를 만드는 웹 소설이나 웹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상입니다. 


   "돌이킬 수 있는"은 손쉬운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하나하나의 개성을 충분히 살리고 각자의 입장과 행동과 태도에 명분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대사와 행동을 통해 각 캐릭터의 진의를 있는 그대로 밝히지 않습니다. 점층적으로 왜 그런지 하나씩 드러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렇기에 초반 캐릭터들의 태도와 대사에서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마치 현실 속 인간들의 모습처럼 속내를 숨긴 채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서서히 각자의 입장과 비밀이 밝혀지면서 독자들에게 점층적인 충격과 쾌감을 선사합니다. 


   이런 방식은 캐릭터들의 대사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매우 영화적인 찰진 대사와 독백 속에서 독자는 큰 즐거움을 누리게 됩니다. 좋은 대사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되는 소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내뱉는 대사의 연결이 묘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면이 무척 많습니다. 마치 랩 배틀에서 서로를 디스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의 공연을 개성을 살려서 하는 듯하기도 해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토리 진행에 따라 각 캐릭터의 무게감과 비중을 조절해 가면서 캐릭터의 입체감을 최대화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장거리 레이스에서 팀원들이 서로 돌아가며 선두 위치를 맡아서 페이스를 조절하는 방식을 연상시킵니다. 이런 형태의 장점 때문에 독자도 지나치게 지치거나 흥미를 잃지 않고 페이지를 계속 넘길 수 있는 것입니다.                                                 




3.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반전의 향연

   어쩌면 장르 소설에서 반전이라는 장치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장춘몽처럼 허무함을 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들은 반전이 등장할 때 '아, 이거구나!'하는 짜릿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 그동안 한 건 다 뭐였단 말이야?'라는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반전을 사용할 때는 매우 유의해야 합니다. 모든 독자가 작가의 의도대로 반응하지는 않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독자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는 제각각의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소설에 있어서는 더욱 다양한 취향의 차이가 도드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소설에는 반전이라 부를 만한 장면이 다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주요 캐릭터들이 애초에 각자의 입장과 의도를 숨기고 있다가 나중에 하나씩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단순히 진의만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 등장하지 않았던 캐릭터의 히든 능력이 등장하면서 독자를 경악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느낌을 몇 번 받았습니다. 최근에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기 힘들었던 놀라움이었습니다. 


   이런 반전이 단순히 그동안 진행된 스토리를 뒤집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그리고 묘사된  이유 역시 복합적인 인간의 근원적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깊이가 느껴져 좋았습니다. 자극적이지만 MSG를 많이 친 음식이 아니라 재료 본연의 깊은 맛을 잘 살린 음식 같은 느낌이 좋았습니다. 더 자세히는 결국 종국에는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The power of love" 였다는 다소 닭살 돋지만 거부할 수 없는 당연 명제로 이어져 완전 '납득납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그게 아니면 설명이 안되는 바보짓이지. 암. 그렇고말고...'라는 느낌으로다가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 끝 맛까지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장르적 결합을 현명하게 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잘 살리고 이들 간의 대립에서 오는 긴장감을 통한 서스펜스의 즐거움도 선사하는 능력을 보여줌과 동시에 서로 따로 노는 듯하지만 맛깔나는 대사의 향연과 끊임없이 독자를 쥐락펴락하는 반전의 매력까지 완벽한 토털 패키지 같은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 훌륭한 소설입니다. 애초에 온라인 연재를 먼저 한 탓에 중간중간 설정이나 설명이 반복되는 듯한 느낌이 있지만 자칫 긴장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를 훌륭하게 극복한 장점들이 빛나는 소설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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