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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an 02. 2021

소경이 소경을 인도해야 하는 그 난감함에 관하여...

김설 에세이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 책 리뷰




1. 소경이 소경을 인도해야 하는 그 난감함에 관하여...


딸이 우울증을 진단받은 지 어느덧 1년이다.(중략) 그동안 딸에게 행복해지라는 말을 너무 쉽게 했었다. 그게 아이에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요구인지 몰랐었다. 삶에 균형이 잘 잡힌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 행복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p27


한국인에게 가족과 자식의 의미는 정말 남다른 것 같습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교육에 열을 내고 내가 못한 것들을 누리게 해주려고 애를 씁니다. 덕분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통제하고, 강제하며 엄격하게 키우게 됩니다. 내 아이가 더 뛰어나고 더 나아야 한다는 생각은 점점 경쟁적으로 아이를 다그치게 만듭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아이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을 찾도록 돕는 것, 부모와 독립적인 인격체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최대한 자유와 선택권을 부여하려 하다가도 세상이 얼마나 험악한지 떠올려보면 다시 보호 심리가 샘솟아 오릅니다. 이렇듯 육아에서 여러 가지 복병을 다 피해하기란 사실상 매우 어렵습니다. 지나고 보면 '아, 저렇게 키웠어야 했는데...'라며 결과론을 펼칠 수 있을 뿐입니다.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라는 김설 작가님의 자기 고백적 에세이입니다. 남들보다 재능 있고 똑똑한 아이를 더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결과는 안타깝게도 아이의 깊은 우울증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과정 중에 저자의 건강과 정서도 피폐해졌습니다. 사업에 실패해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남편에 대한 원망도 깊어졌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을 인식하고 되돌리려 했으나 너무 멀리 가버렸습니다.


에세이의 초, 중반부를 읽는 것이 무척 힘겨웠습니다. 저자를 둘러싼 삶의 환경이 너무 심각해 보였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고 괴로웠습니다. 어떻게 하루하루를 버텨냈을까 마음이 저렸습니다. 가장 힘겹게 느껴졌던 부분은 저자 스스로도 건강이 안 좋고, 우울증 증상으로 힘들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가 깊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정말 성경에서 읽었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모습"이 상상되었습니다. '이러다 구덩이에 빠지는데...'라며 염려하는 마음 가득 담아 읽었습니다.


솔직히 저와 성격도 성향도 너무 달랐고, 상황도 많이 달라서 공감을 이룰 만한 부분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남의 일처럼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기본적으로 필력이 좋았던 부분도 있겠으나, 정말 있는 그대로 솔직한 글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만큼 글에 담긴 진정성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상처를 안아내고 극복하는 아름다운 성장기


우리는 함께 아팠고, 아팠던 만큼 성장했다. 이제는 고통을 말하는 것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직은 꿈꿀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p238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조금씩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러나 싶었던 힘들고 어두웠던 상황들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일부분 이상 공감하고 내 문제처럼 여길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지다가 이를 극복해나가며 나아지는 장면이 등장하기 시작하자 정말 다행스러웠습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아이와 우울증으로 씨름하고 있으면 어쩌지?'라는 무거운 마음에서 해방될 수 있어 너무나 기뻤습니다. 마치 내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습니다.


아프고 힘든 상황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버텨 이겨내는 반전시키는 드라마를 목도하게 되어 무척 기뻤습니다. "존버"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저자와 딸의 "존버" 스토리를 읽으면서 저에게도 어려운 순간이 있고 지금도 힘든 부분이 있지만 저자처럼 버티면 좋은 날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출구가 없어 보이는 길고 어두운 터널의 한 가운데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다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경직된 태도를 버리고 현실을 허용하고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비결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문제를 풀어내는 첫걸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다.'라는 자기 명제를 계속 고집했더라면 문제는 계속 악화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원인을 잘 찾았고 아픔을 성장의 원동력 삼아 반등의 지점을 잘 찾았습니다.


또 하나의 비결은 포기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책 곳곳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질문과 시도들이 그 증거입니다. 우울증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인생이 이론처럼 딱딱 맞아들어가면 누군들 어렵게 살겠습니까? 저자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그 누구의 우울증도 아닌 저자와 딸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한 맞춤 솔루션들을 찾아나갑니다. 상담과 약물치료를 마다하지 않고 나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사족이지만 개인적으로 정신과 상담은 꼭 좋은 방법이라고 하기 어려운 필요악 같은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그 어떤 사람도 문제를 지적받아서 나아지는 경우는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앞으로 나아가는 경우는 누군가 이해해 주고 인정해 주고 칭찬과 격려를 해줄 때 말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상담 내용은 저자의 과거를 돌아보고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고 하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피드백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자존감을 저해하는 이런 상황을 견뎌낸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의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3. 행복의 본질을 생각하다...


행복을 쌓아두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행복이 넘치면 불행할지도 모르는 내일을 대비해 저축도 하면 좋으련만. 행복은 당일 생산 당일 소비가 원칙이다. 다음날이면 행복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p251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정말 인간에게 행복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됩니다. 때로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정말 행복한 미래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행위가 현실의 행복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저자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한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번이 아웃되는 경험을 하면서 비싼 대가를 치릅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통해 행복을 서서히 되찾습니다. 경직된 태도에서 힘이 빠지고 현실을 받아들이며 유연해지는 경험을 하면서 행복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순간까지 살아가게끔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뜬구름 잡기 같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완벽함’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려 애쓰지 마세요. 현재에 만족하며 유연하게 삶의 흐름을 탈 때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호오포노포노" p46


저자는 일상을 통해 점점 행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해나갑니다. 시간의 흐름으로 에세이가 정리되어 있다고 봤을 때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나아지고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행복이 불행을 조금씩 밀어내는 일이 많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상황이 좋아졌다기보다는 저자의 생각과 태도가 변했던 것이 큰 요인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책을 통해 느슨한 연대로 연결된 저에게도 그 일상의 행복이 전해져서 책을 읽는 중에 점점 행복한 감정이 커졌습니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많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 과녁을 제대로 못 맞추는 이유가 쾌락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행복의 기원" p76 


김설 저자의 책 "오늘도 나는 너의 눈치를 살핀다"는 행복에 관한 책입니다. 저자의 극적인 경험을 통해 행복이 무엇인지 묻는 책입니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저자의 암울한 현실에서 인간의 불행에 대해 생각합니다. 때때로 책 속 저자의 상황과 비교하며 이기적인 본성으로 상대적인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차츰 행복한 일상을 회복하는 저자의 모습을 만납니다. 이를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도대체 행복은 무엇일까? 나에게 행복한 삶은 무엇일까? 무엇이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그럼에도 행복으로 나아가게 할까?


행복의 핵심을 한 장의 사진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죄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행복의 기원" p192


저자는 고양이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찾고, 에서 답을 찾습니다. 딸아이와의 대화맛있는 음식을 통해 일상을 불행보다 행복으로 점점 채워나갑니다. 서인국 박사님이 "행복의 기원" 결론 부분에서 주장한 바처럼 인간은 좋은 음식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행복에 가까워지는 존재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를 더 하자면 하나는 고양이일 테고, 나머지 하나는 좋은 책이 될 테지요.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가르릉 소리를 듣습니다. 저자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저의 감정을 요동하게 했던 이 책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책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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