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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an 18. 2021

각성제 부작용으로 좀비 아포칼립스세상이 온다면?

정명섭 청소년 소설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 책 리뷰




1. 청소년 좀비 소설을 하나의 장르로 만들어가고 있는 정명섭 작가

   정명섭 작가는 대한민국에서 좀비 소설하면 빼놓을 수 없을 업계 최고의 전문작가입니다. 물론 좀비 소설뿐 아니라 역사, SF, 인문, 추리 등 "시"만 빼고 전 영역에서 뛰어난 작품들을 양산해 내고 있어 특정 장르에 국한된 작가라 할 수는 없습니다. 사실 양산이라는 표현은 품질이 우수하다는 느낌을 주는 단어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워낙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명섭 작가의 행보에서 최근 들어 유독 눈에 띄는 분야가 바로 청소년 소설입니다. 청소년 추리, 청소년 SF의 경우는 그럭저럭 납득이 갈만한 결합입니다만 청소년과 좀비의 결합은 상당히 이색적입니다. 그러나 막상 소설을 들여다보면 좀비와 청소년 소설의 장르적 교배가 상당히 궁합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좀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는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으로 인해 열악하고 급박한 환경 속에 던져진 인간을 다룹니다. 이때 인간을 성인이 아닌 청소년으로 설정하면 이야기의 긴장감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정서를 더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겠습니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의 반응을 상상해 묘사하는 것이 좀비 소설을 감상하는 주요 포인트라고 보면 좀비 아포칼립스에 청소년들이 살아남는다는 설정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성인이 되는 날 멀쩡하던 아이들조차 좀비로 변한다는 설정을 추가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고 갑니다. 이런 간단하지만 흥미로운 설정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소설적 재미를 배가시키는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정명섭 작가에게 사실 청소년 좀비 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은 아닙니다. 제가 읽어본 것 중에는 "당신의 떡볶이로부터"라는 앤솔로지에 "떡볶이와 좀비"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이 단편에도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에 고립된 아이들이 잊힌 떡볶이 맛을 재현하려 애쓰는 독특하고 신선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번 작품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도 좀비들의 창궐 상황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고군분투를 생동감 있게 잘 표현해내고 있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2. 각성제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사회파 소설

   소설 속에서 멀쩡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좀비로 변하는 이유로 각성제 "코타놀"의 복용을 들고 있습니다. 코타놀이라는 각성제가 실제로 존재하나 싶어 검색을 해봤는데 작가님이 작명하신 각성제인 모양입니다. "코타놀"의 복용 양상이나 효능 등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암페타민계 유명한 약물 "애더럴"이 떠올랐습니다.


   저의 팟캐스트에서도 한 번 다룬 적이 있었지만 미국 사회에서 약물의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애더럴은 분명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향정신성 약품으로 분류되는데 미국에서는 일상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복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의력 결핍장애 판정을 받으면 복용할 수 있는데, 주의력 결핍장애라는 것이 정확하게 판정이 되는 증상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고 이에 따라 약을 구하기도 매우 쉬운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 직장인은 물론 대학생들까지 경쟁적으로 복용하는 각성제의 문제는 매우 신중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으로 널리 복용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만큼 미리미리 잘 준비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아직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 청소년들은 더욱 조심해야 하고, 정확한 정보를 알려줄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이런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청소년 좀비 소설 속에 주요한 핵심 소재이자 원인으로 설정해 작품 속에 녹여 낸 점은 의미가 큽니다. 선입관이겠습니다만, 청소년 소설이라 하면 이런 문제적 사회현상에 대한 교훈을 적절하게 담기를 기대합니다. 소설이 그저 재미있기만 해도 역할을 다하는 것인데도, 청소년 소설은 의미와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미+의미+교훈의 3종 세트,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소설은 여러 교육 관련 기관과 학교, 도서관 등에 추천도서로 등록되어 길이길이 회자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영민한 정명섭 작가가 이 부분을 놓칠 리가 없겠지요. 우리 청소년들도 성인이 되기 전에 이런 각성제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심각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는 이런 문제의식에 대한 고민을 해보기에 충분한 소설이라 할 수 있어, 사회파 장르소설로 볼 수 있습니다.




3.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는 감시자들, 그리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

   이 소설 말미에는 미지의 존재가 등장합니다. "감시자들"로 불리는 존재들입니다. 이들은 좀비 아포칼립스를 유발한 각성제를 만들고 이 모든 사단을 조장한 세력입니다. 이들은 음모론에 등장하는 일루미나티나 그림자 정부를 꼭 닮았고, 특히 일루미나티가 주장하는 전 세계 인구 5억 감소설 같은 인구 줄이기 프로젝트와 싱크로율이 매우 높습니다. 영화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에도 다국적 기업 "엄브렐라"사가 좀비 바이러스인 T 바이러스를 살포하고 거의 모든 인류가 좀비로 변하는 가운데 엄브렐라사의 주요 간부들만 살아남고 세상이 망가집니다. 그들은 치료제를 가지 있으면서도 고의로 감추고 있습니다.


   좀비 바이러스를 퍼트려 정상적인 인구를 극소수만 남긴 채로 세상을 깨끗이 청소한다는 설정은 이 외에도 다수의 소설과 영화 속에서 단골 소재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자주 등장하는 만큼 독자에게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클리셰로 보일 수 있는 이런 설정은 코로나 시국에 자연스레 국제적인 초대형 제약사들을 떠올리게 해서 시의성도 있고 흥미를 끌기에 좋습니다. 음모론을 사랑하는 저로서는 상당히 즐겁고 흡족한 설정이었습니다.


   소수의 어긋난 욕심이 전체 조직을 망치는 사례는 너무나 허다해 이런 설정에 자연스레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그러나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면 '그리하여 모두가 좀비가 되어 죽었더라'식의 결말은 너무 허망하겠지요. 작가는 이 소설의 말미에 희망적 요소를 심었습니다. 소설 전체를 통해 답답한 교육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학교와 가정을 떠나는 아이들이 좀비처럼 죽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그리고 있다면, 결말부에서는 그럼에도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준비하는 그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새벽이 되면 일어나라"는 장르적으로는 청소년 좀비 소설이지만 사회 풍자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현실과 문제,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소설적 효용이 잘 담긴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어른은 물론 청소년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장르소설의 즐거움을 누림은 물론이고 자신의 삶과 사회를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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