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노키 켄의 [좋을 대로 하라! 단 하나의 일의 원칙1] 책 리뷰
1. 반드시 고민해 봐야 할 선택의 문제
일본 저자들이 쓴 책을 읽다 보면 '어떻게 이런 책을 출간할 수가 있지?'라며 감탄하게 됩니다. 제목부터 형식과 내용까지 모두 상당히 독특해 흥미를 끄는 이 책은 일종의 문답집입니다. '문답집'이라고 하면 뭔가 고전적인 느낌이 많이 듭니다만, 고전 문답집을 온라인상으로 옮겨놓은 것을 다시 오프라인으로 데려와 인쇄물로 마무리한 독특한 책입니다. 성격만 놓고 보면 온라인 상담 코너 모음집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온라인 상담 코너는 그 특성상 어떤 온라인 사이트에서 벌어진 일인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온라인 서식지는 대체로 그 사이트마다 특유의 정서와 유저 그룹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이 책을 잉태한 온라인 사이트 '뉴스픽스(https://newspicks.com)'는 다양한 테마로 구분해 뉴스를 제공하는 사이트로 보입니다. SNS 계정을 연계해 유저와 활발히 소통하는 곳이라는 정도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독자의 고민 글과 이에 대한 저자의 답을 담은 형식의 이 책은 총 5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30장까지가 1권에 담겨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20~30대까지의 고민 글이 많고, 진학이 아니면 직장, 진로 등의 문제를 상담하고 있습니다. 30개에 이르는 상담글을 읽다 보면 일본인들의 고민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독자들도 삶의 여정에서 반드시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어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제가 유달리 관심이 갔던 부분은 주로 선택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본 내의 학교를 갈 건인가? 해외 유학을 갈 것인가?"라던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 계속 다녀야 할까요? 아니면 스타팅 회사로 옮겨야 할까요?" 등의 거취 선택에 대한 문제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저런 문제를 타인에게 묻는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고민은 될지언정 어차피 선택은 본인이 할 것인데, 듣고 싶은 의견을 들어 보고픈 욕구의 발로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양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그럴 때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적당한 명분을 얻고 싶기 마련입니다. 그래야 마음도 편하고 후회도 덜하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니까요. 이걸 또 답해주는 저자도 신기한 사람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의 상담글이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 문화에서 쉽지 않을 것만 같은데도 불구하고 저자는 듣기 좋은 이야기를 골라서 해주는 행위를 하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신랄하게 비판도 하고, 질문 자체의 모순을 꼬집어 상담자의 마음을 헤집어 놓을 듯한 글을 쓰기도 합니다.
이런 책을 읽는 독자에게 오는 효용감이란 무릇 '나는 어떠한가?'에 대한 자문과 자답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라면 저런 질문을 했을까?'라는 근본적인 고민에서부터 '나였다면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어떤 선택을 할까?'하는 모의 시뮬레이션 상황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질문자에 공감하기도 하고, 상담자인 저자의 답변에 공감하기도 하며 이견을 피력해보기도 합니다. 아무도 듣지 않지만 미지의 공간에서 다자간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그런 책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반응이 좋을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2. 어떻게 할까요? (정말) 좋을 대로 하세요.
형식만 놓고 보면 이 책의 상담은 선문답에 가깝습니다. 모든 상담글의 질문과 답변이 한결같습니다. 질문자가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자는 "좋을 대로 하세요"라고 답합니다. 역할을 정해놓은 롤 플레잉 같습니다. 이게 온라인상의 놀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막상 상담의 내용을 보다 보면 또 웃고 넘길 문제들은 아닌 진지한 내용입니다. 다소 설익은 고민과 본질에 벗어난 엉뚱한 고민도 있지만 그것 역시 고민의 본질을 찾아가게 돕는 저자의 답변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좋을 대로 하세요. 정말 당신이 좋을 대로 하세요."라는 용기를 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저자는 자신이 경영의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공격도 많이 받고 비난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만, 고민에 대한 답변을 읽다 보면 저자가 문제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녀를 일본 대학에 보내야 할지, 해외 대학에 보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부모의 질문에 대해 보다 본질적인 부분부터 점검하도록 종용합니다.
좋을 대로 하세요. 솔직히 말해서 상당히 피상적인 고민입니다. 아이의 교육이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좋은 대학'과 '평범한 대학'을 구분하는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아들을 일본의 명문 대학으로 보낼지, 해외 대학으로 보낼지 고민합니다. 제 생각에는 일본과 해외를 놓고 고민하기 이전에 당신의 '좋은 대학, 좋은 교육'의 기준을 먼저 점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신의 기준이 너무 느슨하기 때문에 지금 같은 고민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9장. 좋을대로 하세요. p97
그러니까 '좋을 대로 하세요'라는 답변의 의미가 '나는 모르겠고 당신이 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시라'가 아니라 '문제의 본질은 이러하고 당신은 이런 관점에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차피 결정은 당신이 해야만 하는 것이니 좋을 대로 하세요.'라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 상담 과정이 너무 무겁지 않고 위트가 담겨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계속 반복되는 말이지만, 쉽게 다가가고 편히 읽는 과정에서 독자가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니 이보다 더 효과적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상담글에서는 질문자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을 잘 풀어주며 고민의 방향을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 자기 분야의 깊은 내공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태도는 쿨하지만 핵심은 단호박인 조언들은 젊은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가 스스로 밝히는 바 이미 50대에 접어들어 인생이 서너 번 이상 꺾였기 때문에 더 이상 방향을 틀기는 쉽지 않다고 하는데, 저 역시 돌고 돌아 크게 변화의 여지는 많지 않은 것이 공감이 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100세, 150세 인생을 넘어 200세 인생까지 언급되는 시대에 아직은 더 돌고 돌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3. 저자의 전문성을 강조하는 칼럼이 백미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구성함에 있어서 한 권의 완성된 책으로 볼 때 자신만의 전문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으면 설득력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점을 인지한 것 같습니다. 상담글만 보면 좀 엉뚱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중간에 저자의 칼럼을 삽입해 두었습니다. 첫 번째 칼럼에서는 경영학자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하고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는지 자신을 향한 이런저런 공격성 글에 대한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칼럼을 통해 저자의 입장과 생각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어 상당히 좋았습니다.
두 번째 칼럼에서는 자신의 연구를 통해 나름대로 정리한 '일이 원칙'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일의 원칙에 대한 칼럼임에도 불구하고 전반부에는 역시나 '연구'라는 일의 특성에 대해 항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여러 가지 오해에 대해 쿨하게 반응하고는 있지만 마음 한구석에 무척이나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저자가 상담 질문 글을 통해 질문자의 의중을 파악하고 행간 하나하나 파악해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저자의 칼럼을 통해 독자들도 저자의 상황이나 심리상태를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퀴즈를 남기는 듯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경험과 우여곡절을 겪으며 저자가 세운 일의 원칙 10개조는 참으로 새겨들을 만합니다. 특히 첫 번째 원칙 "일과 취미는 다르다"라는 개인적으로 크게 공감했던 부분입니다. '내가 재미있는 일을 하다가 그 일이 직업이 되는 상황'을 베스트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 저자는 그런 접근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은 "취미", 남을 위해 하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읽다 보니 우리가 '일'에 대해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체적인 일의 원칙 10개조를 설명 없이 읊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일과 취미는 다르다.
2. 자기 평가는 무의미하다.
3. 고객은 내가 고른다.
4. 아무도 부탁하지 않았다.
5. 적합과 부적합
6. 다음 순서로(단, 근처에서)
7. 자신에게는 과정이 남는다.
8. 일의 양과 질
9. 유인과 동인
10. 무 노력 주의
개인적으로 전체를 다 동의하기는 어려웠습니다만,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생각해 볼 만한 좋은 문제 제기이자 조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과 진로, 직장과 커리어 등 전반적인 부분에서 여러 가지 고민과 해결 방향성에 대해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신 분이나, 너무 심각하지 않게 쉽고 재미있게 고민해 보고 싶은 동기가 있으신 독자들이라면 정말 즐겁게 읽을 수 있을 책입니다. 위의 일의 10가지 원칙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들도 꼭 일독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