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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Mar 19. 2021

매력적인 캐릭터의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 소설의 서막

김재희 작가 [서점 탐정 유동인] 책 리뷰



1.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의 매력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를 완결한 김재희 작가의 새로운 시리즈는 의외로 코지 미스터리였습니다. 작가의 이력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특정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점은 작가의 확장성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영입니다. 개인적으로 코지 미스터리보다는 사회 파나 경찰 소설 같은 비교적 무거운 작풍을 좋아하기는 합니다만, 거의 읽어보지 않았기에 취향을 확인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가독성 만큼은 담보되어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에 부담이 없었습니다. 기대했던 만큼 확실한 페이지 터너였음은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코지 미스터리를 잘 모르기는 하지만 김재희 작가 특유의 털털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춘 특성을 감안하면 그의 코지 미스터리는 분명 뭔가 색다른 요소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상대적인 차이일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흥미롭고 매력적인 소설임은 분명했습니다. 일본 코지 미스터리는 뭔가 친해지기 어려운 묘한 장벽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정서나 문화 차이일 수도 있고 저의 선입관일 수도 있겠지요. 몇 번의 시도 끝에 극 초반부 몇 장을 읽다가 포기하는 경험을 반복하다가 더 이상 일부러 찾아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서점 탐정 유동인>은 일단 시작부터 거부감이 없어서 좋았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자연히 서점을 사랑하게 되고 서점에서 일하는 직원에 대한 묘한 동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책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군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이 늘 서점에 상주하고 관련해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한다면 상대적으로 무척 친근하게 느끼기에 유리합니다. 이런 면에서 서점에서 근무하는 탐정이라는 기본 뼈대를 세운 것은 무척 현명한 선택입니다. 소위 먹고 들어가는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의 기본 뼈대 자체가 탐정과 경찰 콤비, 그들을 둘러싼 특별하지만 일상에서 만나 볼 법한 미스터리한 사건 그리고 끈질긴 노력과 약간의 운으로 해결해 내는 결말로 이어집니다. 이런 사건이 연이어 네 건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사건도 재미있지만 역시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주인공 콤비의 티키타카와 환상적인 호흡, 그리고 둘 사이의 감정선 등이 관전 포인트입니다.


   각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은 정통 미스터리 추리소설과 유사한데 해결하는 과정과 결말이 다소 느슨하고 가볍다는 점에서 코지함을 드러냅니다. 느슨하다는 표현은 게으르게 처리했다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과격하거나 디테일에 집착하느라 전체적인 경쾌함을 잃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소설에 "더 비기닝"이라는 부제가 붙은 만큼 이들 콤비를 활용한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앞으로 쏟아질 것 같습니다.





2. 끌리는 요소를 완벽히 구비한 캐릭터의 매력

   서점 MD와 탐정이라는 직업은 이미지상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서점 MD가 책과 가장 가까이 있고 많은 책들을 관리하다 보니 지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똑똑할 것만 같습니다. 책을 많이 다루는 것과 책을 읽는 행위는 사실 직접 관련이 없기는 합니다만, 저자는 주인공을 추리소설을 쓰고 있는 예비 작가로 설정함으로써 범죄 이론이나 케이스에 이론적 탄탄함이 있는 능력 있는 탐정이라는 특징을 부여합니다. 서점 탐정이라는 시리즈를 길게 가져가기 위한 초석으로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키 크고 날씬하며 잘 생기고 똑똑하기까지 한 판타지스러운 설정으로 주인공의 매력을 만렙으로 끌어올려 놓았습니다. 머리숱이 부족한 중년은 무척 못마땅합니다만 그런 사람이 없다고는 할 수만은 없는 찜찜함을 느끼면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거 뭐... 그럴 수 있지... 키 크고 잘 생기고 성격 좋고 똑똑한 서점 직원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 그렇게 말입니다. 짜증스럽게 완벽하기만 하던 이미지는 중, 후반부로 가면서 의외의 인간적인 면모까지 선보입니다. 하아.. 이런 캐릭터는 현실 남자를 좌절하게 합니다.


   한편 경찰을 여성 캐릭터로 설정하면서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다채로움을 선사합니다. 성격 좋고 털털한 여자 경찰 캐릭터가 매력이 있습니다. 일반적이라면 여성 서점 MD와 남성 경찰의 조합을 선택했을 텐데, 반대의 조합이 극적인 재미를 끌어올려 주는 결과를 이끌어 냈습니다. 두 주인공 간의 접점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면에서도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여경 아람이 동인의 서점으로 와서 사건 관련 조언을 구하는 모습도 마찬가지 이유로 어색하지 않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자주 만나는 동인을 제공하기 위해 아람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이만 줄입니다.)


   두 사람이 오랜 친구라는 설정 때문에 코지코지 한 장면을 자주 연출할 수 있었고, 독자가 흥미롭게 독서 텐션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배경이 되는 서점을 중심으로 같은 건물 상점과 운영자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들도 약간 과한 캐릭터 설정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소설의 성격을 생각하면 그 역시 적절한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3. 강력 사건과 달콤한 애정행각의 절묘한 매력

   탐정과 경찰이 공조하는 추리소설이라는 기본적인 설정이 전체 네 건의 사건을 풀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네 개의 사건을 연결하는 연결점이 딱히 없습니다. 함께 소개되는 사건 간의 인과관계나 인물 간의 인연 같은 것은 전혀 없다는 점이죠. 이런 관점에서 단순히 연작소설로 네 건의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각각 즐겨도 큰 무리가 없기는 하지만, 하나의 완성된 장편 소설의 관점에서는 아쉬움이 남게 되겠죠. 그냥 사건과 풀이의 과정만 반복되는 건 조금 나이브 한 설정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여기에 두 사람의 애정 전선을 차차 구축해 나갑니다. 소설의 초반에는 오로지 사건 해결에만 집중합니다. 두 사람은 알 거 다 아는 오래된 남사친, 여사친일 뿐입니다. 사건이 하나 둘 소개되고 두 주인공 간의 캐미 넘치는 커뮤니케이션이 오가는 사이 친구 이상의 감정이 조금씩 싹트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게 또 두 사람이 너무 자연스럽게 애정이 넘치고 확인이 되는 상황이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애간장을 녹이는 방식으로 애정 전선에 먹구름도 끼고 비도 오고 천둥번개도 칩니다. 이렇게 버라이어티 한 전개를 통해 사건 해결과 별개의 일관성 있는 흐름이 이어집니다.


   결국 이 소설은 두 주인공 간의 애정행각이 빌드업 되는 과정을 통해 별개의 네 사건을 하나의 패키지 안에 담아내는 형식으로 완성됩니다. 네 가지 범죄사건은 두 주인공의 사랑을 꽃피우는 촉매 역할이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르겠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런 청춘 남녀의 캐주얼한 사랑의 감정을 두근거리며 읽기에 제가 너무 나이가... (더 이상 설명은 생략합니다... 크흙...)


   이 소설의 정체성이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라고 한다면 코지한 연애소설의 카트에 담긴 4개의 작은 코지 미스터리 바구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에 카트 크기만 충분하다면 바구니를 여러 개 더 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거라 쉽게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바구니 4개는 기본 메뉴로 얼마든지 더 추가 주문이 가능하겠지요. 작가가 이 소설에 "더 비기닝"이라는 부재를 붙이면서 동인과 아람 커플을 통해 막대한 스토리를 뽑아 보겠으며, 괜찮기만 하면 빨대를 꽂아서 쪽쪽 빨아... (흐음..) 여하튼 이 작품을 통해 거대한 욕망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코지 미스터리가 낯설기도 하고, 사건이 생각보다 너무 쉽게 풀려나가는 점에서도 익숙하지 않기도 했습니다만, 과연 코지라는 표현을 붙이기에 적합하고 그만큼 가볍고 경쾌한 느낌을 잘 살린 소설이라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읽는 동안 편안하고 무겁지 않은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가끔은 이런 스타일의 소설도 읽는 것이 독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소설이었습니다. 시리즈 다음 편도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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