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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Feb 24. 2022

인체 냉동 기술을 둘러싼
가슴 서늘한 이야기

소설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책 리뷰




1. SF적 소재를 잘 활용한 휴머니즘 소설의 탄생

   최근 국내 SF 소설의 약진이 돋보입니다. 국내 SF 소설이 각광받는 데는 아무래도 SF적 설정과 기술적 정합성에 매달리던 기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는데 성공한 것이 주요한 것으로 보입니다. 김초엽, 천선란 작가 등으로 대표되는 트렌드를 주도하는 SF 작가들의 작품은 SF적 설정과 소재를 활용해 지극히 인간적인 것에 주목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단편적인 일반화는 매우 위험하고 부적절하지만 중요한 것은 독자들이 이런 트렌드를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있을 법한 이야기, 나도 겪을 법한 이야기에 공감하고 관심을 더 기울입니다. SF 적인 소재와 설정이 얼마나 정교하고 실현 가능한가에 주목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겠으나 결국은 그 기술 속에 표류하는 인간의 삶과 죽음, 고민과 갈등, 사랑과 우정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소설적 흐름은 SF적 소재나 설정을 잘 활용하면서 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상"을 잘 그려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지혜 작가의 신작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는 이런 조건에 매우 잘 부합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냉동인간"이라는 테마는 SF의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소재입니다. 냉동과 해동이라는 기술은 결국 인간을 미래로 보내는 타임머신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아쉽게도 과거로 회귀는 불가능한 단방향적인 설정이지만 덕분에 설정이 매우 심플해지는 이점이 있습니다. 사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스토리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저자가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큰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 냉동기술"을 매우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 어떤 방식으로 사람을 냉동하고, 어떤 절차나 기술을 통해 해동하는가에 대한 기술적인 이슈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 기술이 일반화된 사회 속에 기업, 거대 자본 등이 정치세력까지 결합한 세상에 모든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속에 나뒹굴며 고통받고 자의적, 타의적 선택을 강요받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 냉동기술을 다루었다기보다는 활용했다고 표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지혜 작가는 오래전에 과학 액션 융합 스토리 단편선 "14일의 여인"이라는 책 속 "웨딩마치"라는 작품으로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정확히 어떤 이야기였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좋은 작품이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습니다. 당시 책 리뷰에서 "웨딩마치"에 대해 아래와 같이 썼었습니다.



"웨딩마치"는 SF 디스토피아 소설에 가까운 작품인데 역시나 설정의 특이함이 끌리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들 스스로 안드로이드로 개조되면서 인간성마저 말살되는데 수술을 거부한 주인공의 소수적 입장과 상징적으로 허무한 결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 14일의 여인 중 "웨딩마치"



   돌이켜보면 그때도 정지혜 작가는 SF적 설정 속에 놓인 인간들의 입장과 내면에 관심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더욱 복잡한 스토리를 통해 "냉동인간"기술에 얽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감 넘치는 방식으로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작가의 주제의식이 작품들을 통해 연결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무척 바람직하며 독자에게 일정한 신뢰를 준다는 점에서도 좋은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2. 휴머니즘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회파 소설의 장점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가 좋았던 점은 각 등장인물의 삶의 모습을 조망한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들이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적 문제까지 잘 엮어서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워낙 사회파 소설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소설에서의 사회상은 특정 인간의 행동을 강제하기도 하고 현실을 도피하게도 만드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기에 더욱 설득력을 가집니다.


   단순히 냉동인간 기술을 활용하는 개인의 사연에만 이야기가 그쳤다면 소설이 제시하는 주제의식이 무척 제한적이었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냉동기술을 선택하는 인간들의 심리와 제약회사로 대표되는 관련 기업들의 명분과 실리에 얽힌 함수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고, 정치, 언론 세력까지도 복잡하게 얽혀 있는 이해관계로 단순하게 풀 수 없는 현실은 꼼꼼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선택을 강요하기도, 선택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기도 하는 사회의 모습을 접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한없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이 등장하고 저마다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으며 그들 역시 인연 또는 악연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 복잡하게 얽힌 인간 군상을 그리며 일말의 희망도 허락하지 않는 타이트한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그렇기에 독자들로 하여금 서늘하고 차가운 현실을 간접 경험하며 편치 않은 마음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소설 속에 드러나는 사회가 정확히 어느 시점인지 모르겠지만 가까운 근 미래라고 봤을 때, 적어도 지금과 생활 상에서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50년 전에 냉동된 주인공인 등장하니 적어도 안전하게 냉동할 수 있는 기술이 일반화된 시점으로부터 50년은 지난 미래라는 것인데 자동차가 날아다니거나 새로운 디바이스가 상용화되거나 통신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거나 하는 식의 설정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냥 현대 사회와 동일합니다. 이런 특징 때문에 분명 SF 지만 SF 같지 않고 마치 사회파 논픽션 같은 느낌을 자아냅니다.

 

  각 등장인물 간의 관계 설정이 다분히 소설적이기에 그나마 소설 같은 냄새를 풍깁니다. 너무 많은 등장인물이 이렇게까지? 싶을 정도로 인연으로 엮여 있습니다. 이런 우연 같은 설정이 소설적입니다. 또한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범죄적 현실이 빠짐없이 너무나 고르게 등장하는 것이 오히려 극적이고 소설적입니다. 이런 소설적 특징 때문에 큰 틀에서는 결국 돈이라는 문제에 수렴하게 되는 인간의 욕망과 회피 본능을 끊임없이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3. 소설에 담긴 철학적 고찰, 기술은 인간을 행복으로 이끄는가?

   이 소설이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소설은 이야기 전체를 통해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행복을 견인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냉동기술 자체만 생각하면 인간을 냉동하는 목적에 대해 지금의 의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질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미래로 유보하는 것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냉동과 해동, 보관 등에는 비용이 수반되고 돈을 가진 사람만 냉동이라는 설루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 기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아픈 사람의 죽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래로 보내는 것뿐 아니라, 의외의 다양한 이유로 냉동기술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 여실히 드러나는 문제입니다만, 단순히 현실을 피하고 싶은 사람이 미래를 막연하게 낙관하고 냉동을 선택하기도 하고, 감출 것이 많은 범죄자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 냉동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냉동 기술이 건강 문제보다는 현실 회피 수단으로 더 많이 활용된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합의를 통해 냉동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환자들이라고 공표하지만, 실무를 담당하는 등장인물 '규선'의 목소리를 통해 대다수는 질병과 상관없는 이유로 기술을 활용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또한, 다양한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을 통해 현실을 피해 냉동이 된다고 해서 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회피한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더 심각한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기가 바뀌고 지구가 멸망한대도 냉동시설만 파괴되지 않는다면 냉동된 채로 계속 머물 수 있다. (중략) 오늘 냉동되고 해동되고 사망한 열한 명의 인간 중 질병과 연계된 이는 알츠하이머 환자 한 명뿐이다. 나머지는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생을 잠시 유보하기 위함이었다. 세상이 바뀌길 바라며, 어찌해도 나 자신은 바꿀 수 없으니까.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다음 생의 나에게 희망을 건다. 뭐 이런 이유들."



   저자는 소설 전반을 통해 냉동 기술을 선택하건 안 하건 인간 내면의 문제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시간적 회피만으로 나아지는 경우는 보기 힘들며, 오히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사회적 편견을 견뎌내야 하는 등의 문제까지 가중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 속 등장인물 중 누구도 냉동 기술의 덕에 행복을 찾은 인물은 없습니다. 단지 그런 희망을 품는 사람들만 등장할 뿐입니다. 분명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냉동 기술을 활용해 시간의 제약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있을 터인데, 소설 속에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자는 소설 속 냉동인간 기술로 대변되는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그 어떤 희망도 발견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희망과는 달리, 이 소설 어디에도 따뜻하고 희망적인 느낌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읽고 나면 가슴이 서늘해지고 등장인물들의 선택과 인생을 애도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해지는 것입니다.


   냉동인간 기술이 상용화되는 근미래 사회에서 미래의 내가 당면할지도 모를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지게 되는 좋은 소설입니다. SF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시거나 지나친 기술적인 묘사는 싫지만 SF적 설정에서 펼쳐지는 디스토피아적 세계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상당히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등장인물로 얽히고설킨 관계 때문에 읽는 과정에 혼란스러울 소지가 다분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케이스를 통해 여러 가지 생각과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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