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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pr 04. 2022

가성비 좋은 합리적인 선택에 대한 이야기

앤솔로지 소설집 [코스트 베니핏] 책 리뷰




1. 가성비가 삶에도 적용될까?

   떡볶이와 책방 이야기에 이어 "가성비"라는 생소한 단어를 테마로 엮은 앤솔로지가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앤솔로지가 워낙 많이 쏟아지는 추세다 보니 그 속에서도 남다른 개성이 있느냐가 무척 중요한 상황입니다. 이런 시기에 "가성비"라는 의미의 <코스트 베니핏>이란 제목을 달고 출간된 앤솔로지는 일단 눈길을 끌기에 좋습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일지 호기심을 자극하는데 제격인 테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성비라는 말은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무척 잔인한 단어기도 합니다. 성능이 우수하면서도 저렴해야 가성비를 만족시키는 조건이 되는데 상품뿐 아니라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가성비가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가성비를 따지는 분들은 대체로 상충되는 두 가지 조건 모두를 얻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죠.


   개인적으론 가성비라는 표현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가격이 싸면서도 품질이 좋은 제품이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편입니다. 오히려 가격은 비싼데 품질이 그만큼 좋지 않은 제품은 허다하죠. 다양하게 받아들이고 해석할 수 있는 "가성비"라는 단어는 소설적으로 어떻게 변주될지 예상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도대체 어떤 소설로 "가성비"라는 내용을 소화해낼지 무척 궁금한 상태로 소설을 읽었습니다.


   소설을 한편, 한편 읽으면서 평소 "가성비"라는 단어를 사고파는 제품의 가격과 성능에 대해서만 적용하고 있었다는 것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소설에서는 "가성비"의 문제를 제품을 만들어 파는 영역에서 훌쩍 벗어나 삶의 여러 영역으로 확장해 놓았습니다. 작가들의 소설적 상상력에 놀라고 이야기를 만들어 엮어내는 능력에 또 한 번 놀란 작품입니다. 가성비라는 말을 삶의 영역으로 확장해 보면 생각보다 더 다양하게 적용되고 해석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 가성비를 고민하는 문제들...

   조영주, 김의경, 이진, 주원규, 정명섭 작가들의 소설 속에는 다양한 관점의 가성비가 등장합니다. 모두 읽으며 한번, 읽고 나서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글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르소설이 대체로 일관된 법칙과 관성이 발견되는 것에 비해 이 소설집에 소개되는 소설들은 상당히 색다른 내용들입니다. 저로서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좀 드는 작품도 있었을 만큼 특이하고 강렬하기도 했습니다.


   조영주 작가의 "절친 대행"이 강렬함 면에서는 최고였습니다. 돈을 받고 친구가 되어주는 서비스라는 설정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소재나 설정 자체가 충격적이고 특이한 것도 재미있을 수 있겠지만, 설정은 충분히 있을 법하면서 내용이 충격적인 것이 임팩트는 더 큽니다. 작가의 장점대로 소설 속 등장인물의 내면 묘사가 상세하고 디테일합니다. 단편이라 그런지 캐릭터들이 좀 극단적이긴 합니다만, 그렇기에 소설을 읽고 난 후 드는 감정적 충격은 꽤나 매섭습니다. 특히 마지막 "가성비"를 따지는 주체가 더 충격이랄까... 매우 흥미롭고 기억에 남는 작품입니다.


   김의경 작가의 "두리안의 맛"은 블로그, 인스타 체험단을 소재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SNS를 하는 분들이라면 많은 분들이 겪었을 체험단의 문제를 가져와 이야기를 풀고 있는데 상당히 납득할 만한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대가를 받고 개인의 체험기를 쓴다는 행위가 자연스러울 리가 없습니다. 이를 잘 활용하는 개인도 있고, 금전적 이득을 취하며 대행을 해주는 회사도 있습니다. 이런 개인의 소감이나 추천으로 가장한 세미 광고는 이미 모르는 사람을 없겠습니다만,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을 만큼 주요한 홍보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작가의 특장점을 잘 살려, 체험을 하며 겪는 주인공의 심리적 괴리를 산재 문제로 고통받는 SNS 친구와 대비해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소설입니다.


   이진 작가의 "빈집 채우기"는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짧은 기간 동안 가장 전자제품을 많이 사는 시기가 결혼 혼수 준비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혼수를 장만할 때는 한 번뿐이라는 생각에 다소 비싼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오히려 지나치게 간소하게 준비하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혼수는 당연히 부부가 함께 사용할 물품 들이니 두 사람의 합의로(때로는 양가 어른들까지 관여해) 선택해야 마땅하지만 의견 충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결혼 전에 불필요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빈집 채우기"는 이런 감정의 가성비가 떨어지는 결혼 전 준비 상황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작품입니다. 물품 구매는 물론 인간의 감정에도 가성비를 생각해 보게 되는 그런 소설이었습니다.


   주원규 작가의 "2005년 생이 온다"는 한 사람의 인생 전체에 있어 가성비의 문제에 대해 고찰한 작품입니다. 특히 유행하는 파이어족에 대한 묘사가 특징적입니다. 짧은 시간 동안 고생해서 빠른 시간 내에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인생을 즐기는 것이 모토인 파이어족은 젊은 시절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론 이렇다 할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던 소설이었습니다.


   정명섭 작가의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오마주 소설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미래 SF 소설판이라고 하면 딱 맞을 듯합니다. 전체적인 틀이나 진행은 원작을 그대로 따랐지만 시대와 공간, 죽음의 방식 등이 달라 읽어가면서 비교해 보는 재미가 무척 좋았습니다. 스토리 진행이 어느 정도 예상되고 익숙하다 보니 가독성이 좋고 흥미를 끄는 소설이었네요. 식상하다는 느낌이 들까 읽기 시작할 때 걱정이 들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고 끝까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렇게 다섯 명의 작가가 동일한 단어를 가지고도 전혀 다른 환경과 설정과 스토리로 풀어낸 소설들을 비교하며 읽는 방식이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이 책의 주제어인 "가성비"에 대해서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유익했습니다. 수많은 앤솔로지의 홍수 속에서 독특하고 흥미로운 책을 찾으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을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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