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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pr 13. 2022

낭만적이지 않는 고독의 시간사

데이비드 빈센트 [낭만적 은둔의 역사] 책 리뷰




1. 낭만을 버려라.

   아마도 다수의 독자는 <낭만적 은둔의 역사>라는 책 제목을 접하면 거의 메타 인지 수준의 풀 오토매틱 프리 패스 시퀀스로 혼자서 멋진 시간을 보내는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릴 것입니다.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폼 나고 촉촉한 에세이가 펼쳐질 것을 상상하겠지요. 저나 제 주위 분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이 책에 대한 기대를 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낭만적 은둔의 역사>는 그런 말랑말랑한 에세이집이 아닙니다. 일단 이 책에서 "낭만적"이라는 단어는 떼버리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영어 원제목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A History of Solitude"가 원제입니다. 여기 어디에도 "낭만적"이라는 수식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고독의 역사"인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 책은 그냥, 그야말로 "고독의 역사!"에 대해 학문적 관점에서 고찰한 책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대체로 건조한 관찰자 입장에서 시대별, 문화별, 성별, 계급별로 달랐던 고독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역사 책인데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역사 교양서라고 보시고 접근하는 것이 자연스럽겠습니다. 나의 내면을 돌아보게 만드는 촉촉한 에세이를 기대하고 책을 펼치면 극 초반을 제외한 대부분의 파트에서 매우 지루하고 어려운 느낌을 받으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역사적, 문화적 고찰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흥미롭게 관찰 가능한 내용이 다수 담겨있습니다.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어 즐겁다는 감상도 가능합니다. 게다가 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고독의 모양새에 대한 지적 자극을 받게 되면서 고독은 물론 사회적 이슈를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도 있는 책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그 무언가를 기대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부분이 많은 책입니다.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낭만적"이라는 단어는 머릿속에서 지우고 접근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2.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대해왔나?

   이 책은 약 400여 년에 걸친 고독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고독을 중심으로 인간사가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다양한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합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인간이 낭만적으로 "고독"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 여유가 있는지, 남성인지 여성인지, 귀족인지 천민인지 등의 차이에 따라 격차가 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독의 기본 전제조건은 혼자 있기입니다. 군중 속 고독도 있겠습니다만, 대체로 조용한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한 이후에 고독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책 속 내용을 보면 개인의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웠던 과거는 보편적 고독을 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경제적 문제, 남녀 불평등의 문제, 사회 구조적 문제 등에 의해 고독을 즐기기 좋은 사람과 그럴 여유가 없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현실은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방법론적 관점에서도 조용히 걷기, 독서하기, 뜨개질 등의 취미 활동하기, 여행이나 탐험 같은 야외활동하기 등 다양한 방식이 있었다는 알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는 이런 서로 다른 방식의 고독 즐기기를 예시를 활용하며 소개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식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즐기다 보면 점점 어느 수준 이상에 이르고 비슷한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끼리 다시 동호회를 만들고, 협회를 만들어 고독에서 교류로 나아가게 된다는 점입니다. 결국 사람은 서로 교류하고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존재라는 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책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고독을 즐기려고 애써왔는지 살펴보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유용합니다.  비교 대상을 제공해 주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줍니다. 또한, 각 시기별 유행하는 방식의 경제, 문화, 기술적 배경을 제시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 부적절한 방법을 간접 판단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예를 들어 오랜 과거에는 홀로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동안 겪을 수 있는 극적인 상황을 통해 깊은 고독의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통신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서 바다 어디에 있건 육지의 통제 센터나 베이스캠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게 되기 때문에 찐한 외로움이나 고독을 느낄 겨를이 없게 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통신 수단을 통해 타인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요.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른 환경의 차이를 고려한 적절한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에게 꼭 필요한 고독의 시간을 즐기는 문제의 핵심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3. 디지털과 메타버스의 시대, 고독의 가치

   이 책에 따르면 고독의 본질이 드러나는 방식은 물리적으로 고립되기, 연결된 채 혼자 있기, 딴 곳에 정신 팔기 등의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인구증가에 따라 데이비드 핸리 소로처럼 물리적으로 고립되는 방식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터넷의 활용은 특히 연결된 고독과 정신 팔기에 대한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에 불을 지피고 기름을 끼얹은 것은 스마트폰의 발달입니다. 하루 24시간 온라인 상태로 연결된 사회가 펼쳐졌습니다. 이런 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연결되어 있지만 철저히 고립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겼습니다. 모두가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도피가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함께 식사하면서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닙니다. 


   책이 말미에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의 감시로 인해 최후의 사적 독립 영역이 위기가 처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또한 디지털을 통한 소통이 고독과 집단의 적절한 조화가 어려워 진정한 고독도, 충만한 인간관계도 없는 어정쩡한 영역에 가두어 버린다고 설명합니다. 연인이 마주 앉아 있지만 마치 '이거슨 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따로 노는 것도 아니여!'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모습입니다.


   뿐만 아니라 디지털 메타버스의 발전과 함께 코로나의 영향으로 급가속화된 온라인 교류의 양상은 다양한 부적응자를 양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건 변화의 시기에 적응이 느린 사람들이 있어왔고, 지금처럼 급급 가속화된 변화의 시대는 어지간히 적극적인 사람들도 온전히 변화를 선행하는 데 애를 먹게 하고 있습니다.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결국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온라인 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SNS를 즐기고 이를 통해 느슨한 연대의 기쁨과 든든함, 상냥함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또한 온라인으로 연결된 관계를 통해 취향이 맞는 동지를 얼마든지 사귀고 교제하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온라인 세계의 나는 다중화된 나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상대에 대해서도 인정하는 태도가 건강한 정신머리를 유지하게 도울 것입니다. 



   동시에 이어팟을 꽂은 채로 하는 일에 몰두하며 군중 속 고독을 즐기는 일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산책로를 걸으며 자기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는 것도 고독을 즐기는 좋은 방법입니다. 초연결 사회에서 방전되기 쉬운 개인의 정신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하는 데는 낭만적 은둔의 유익함을 활용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오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다양한 은둔의 스토리를 알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촉촉한 감성보다 머리에 때려 박는 지식을 더 선호하신다면 이 책 "낭만적 은둔의 역사"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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