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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pr 16. 2022

영원한 삶은 그저 행복할까?

양수련 작가 [나의 도깨비, 홍제] 책리뷰




1. 읽는 재미를 보장하는 판타지 소설

   양수련 작가님의 신간 <나의 도깨비, 홍제>는 아주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설정이 익숙합니다.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도깨비> 이후, 현대적인 도깨비의 이미지가 무척 친숙해서 도깨비의 등장이 참신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 드라마 도깨비 이전에 이 소설이 나왔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전래동화 같은 구닥다리 느낌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드라마 도깨비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도깨비가 인간처럼 현대에 등장한다는 설정이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데다가 상상하기도 좋습니다. 

   소설을 읽는 데 있어(특히 장르소설의 경우) 얼마나 익숙하고 편안하냐의 문제는 생각보다 상당히 영향을 크게 미칩니다. 예를 들어 조영주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 미스터리 소설 <절대적인 행복의 시간, 3분> 같은 경우 생각보다 독자들의 사랑을 크게 받지 못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독자들 입장에서 이 설정이나 세계관 등이 익숙하지 않아 생소하고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저 같은 사람은 소설에 등장하는 코스프레 덕후들의 심리나 정신세계가 잘 이해가 안 돼서 공감이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저 같은 독자가 꽤나 많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 사회에 등장하는 도깨비라는 설정은 익숙하게 받아들이기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으응?'이 아니라 '아아~~'하고 대충 느낌이 오는 그런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개념에서 약간의 신선함이 느껴질 때 가장 편안하게 즐기게 됩니다. 지나친 생소함에서 오는 신선함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익숙함 속 신선함을 더 선호하는 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왠지 유치한 듯한 웹 소설이 그렇게도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겠지요. 

   양수련 작가는 소설을 그저 익숙한 설정에 머물게 두지 않았습니다. 이 설정 속에서 약간의 비틀기를 시도했고 굉장히 효과적이었습니다. 보통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익숙한 건 주인공이 어떤 이유로 차원이 다른 이 세계로 옮겨가게 되고 그 속에서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아 모험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반대로 특별한 능력이 있는 도깨비라는 이 세계의 존재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인간 세계로 넘어오는 방식입니다. 이 세계 물로 치면 이 세계의 몬스터가 인간세계로 넘어와서 인간들과 어울려 지내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심지어 주인공이 몬스터가 되는 것입니다. 요 정도의 비틀기라면 설정부터 흥미를 끌기에 충분합니다. 

   게다가 추한 몬스터와는 다르게 우리의 전통 도깨비 "홍제"는 멋진 청년의 모습에다가 매력이 철철 넘치니 남녀 모두 좋아할 판타지적 요소가 빠짐없이 포함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조건이 도깨비가 등장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환상적이고도 러블리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소의 결합과 연결이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잘 되었습니다. 양수련 작가의 능숙한 스킬이 소설의 완성도를 매우 높게 뽑아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인생의 유한성에 대한 수준 높은 고찰이 돋보이는 소설

   도깨비라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불멸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한한 생을 가진 인간이 입장에서는 한없이 부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유한하기 때문에 희소성을 보장받기 마련입니다. 죽지 않는다는 조건이 마냥 축복일 수만은 없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고 싶을 때까지는 살수 있다' 정도의 조건부 불멸이 훨씬 매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런 유한성에 대한 생각은 인간이 욕망하는 존재이고 욕망의 정도에 따라 삶의 욕구가 강렬하게 또는 무기력하게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쉽사리 결론을 내리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욕망의 정도와 크기와 형태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고,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너무 빨리 죽게 되는 인간에 대한 유한성은 사람들의 좀 더 살고 싶은 욕망을 매우 자극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양수련 작가는 도깨비 홍제라는 인물을 통해서 무한한 수명을 보장받는 존재의 모습을 다방면으로 조망하면서 삶의 무한성과 유한성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주도합니다. 도깨비 홍제 스스로의 내면을 묘사하는 방식뿐 아니라, 인간의 존재인 주변 인물들의 태도와 반응을 통해서도 비교해 보여줍니다. 또한 주변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도 유한함을 대하는 다양한 태도와 자세를 보여줍니다. 마치 너는 어떠냐고 묻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묻지 않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하는 매우 훌륭한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가 채워지면 행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이익을 위해 배신을 선택하는 등장인물의 모습을 통해 인간들의 비열함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거기에 자기희생이라는 숭고한 태도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도 흥미롭습니다. 주인공 도깨비 홍제를 대하다 보면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마법사 하울을 떠올리게 하는 느낌이 있는데, 신비롭기도 하지만 그저 좋기만 한 것이 아닌 복잡한 내면의 갈등이 잘 느껴지는 부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은 도깨비의 섬에서 매일 잔치를 즐기던 오만한 도깨비 신분에서 추방되어 인간 세상에서 개고생을 하다가 자기희생이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한 후 다시 도깨비 섬으로 돌아와 마무리되는 액자소설 형태의 판타지 소설입니다. 인간 세상에서 전개되는 이야기가 시기와 장소를 왔다 갔다 하며 진행되기 때문에 정신줄을 놓으면 자칫 흐름을 놓칠 수 있는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잘 짜인 훌륭한 소설입니다. 


   작가는 고전적인 이야기를 현시대와 잘 연결하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판타지 소설에도 접목했습니다. 덕분에 기존에 없었던 아름답고 기품이 있으면서도 이야기의 재미를 잃지 않는 적정선을 잘 살려내었습니다. 보다 한국적이면서도 생각해 볼 만한 거리가 있는 소설을 찾으시는 분들께 상당히 만족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소설입니다. 꼭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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