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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n 12. 2022

대표적 진보인사와 성소수자 감독의 강력한 대담집

홍세화, 이송희일 [새로운 세사의 문 앞에서] 책리뷰



1. 기이한 세상에 기묘한 조합의 대담집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는 대담집입니다. 대담집이라 하면 특정 대상의 대화를 녹취해 기록한 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만큼 구어적인 성격이 강하고 이는 가독성이 좋다는 장점이 됩니다. 대담하는 사람들의 수준과 말솜씨에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는 분명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대담집을 읽을 때는 우선 대담자가 어떤 사람들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대담집의 주인공은 홍세화 선생과 이송희일 감독입니다. 상당히 의아하고 궁금한 조합입니다. 개인적으로 홍세화 선생은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어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예상이 되었는데 이송희일 감독은 전혀 모르는 분이라 생소했습니다. 홍세화 선생은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로 워낙 유명하셨고, 다양한 이력 끝에 지금은 장발장은행의 은행장으로 계신다고 합니다. 장발장은행은 작은 경범죄를 저지르고 벌금형을 받은 분들 중에 벌금을 내지 못하는 경우 무이자로 벌금을 빌려주는 업무를 한다고 합니다. 홍세화 선생 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송희일 감독은 꽤 오랫동안 독립영화감독을 해오셨고, 2006년 <후회하지 않아>라는 작품의 흥행으로 관심을 끌었다고 하는데 저는 금시초문입니다. 이후로 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유명 감독이시고, SNS에 세상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 글을 써오셨다고 합니다. 이 정도만 보면 그냥 의식 있는 감독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커밍아웃을 하시고 게이인권단체 활동도 해오셨던 성소수자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이런 두 분의 대담이라 하면 어떤 대화가 오갈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예상 가능한 범주 내의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고 예상을 넘어서는 내용이 담기기도 해서 딱 잘라 정의하기 힘든 묘한 책이었습니다. 확실한 것은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2. 소외된 비주류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이 두 분의 대담이 자본주의 긍정이라든가, 경제성장, 돈 벌기 뭐 이런 쪽으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비주류와 소외된 계층을 옹호하거나 위로하는 형태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무척 강인한 인상을 주는 대화가 오고 갑니다.


   대담의 첫 번째 주제는 이 책의 전반적인 기조를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기후 위기를 위시한 자본주의 성장 주의에 대한 비판이 등장합니다. 성장 주의에 대한 비판은 필연적으로 탈 형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성장주의의 그늘에서 소외되고 위협받는 분들에 대한 대안이 되기도 합니다. 최근 인간의 모든 활동이 원인이라고 결론짓고 있는 기후 위기의 문제에서 개개인의 행동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문제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고 돕는 일을 끊임없이 해온 홍세화 선생과 기본적으로 성소수자인 이송희일 감독의 대담 주제로 차별과 혐오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봅니다. 특히 이송희일 감독의 경우 이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매우 강하고 신랄하게 비판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의 경험적 성찰이 담긴 글을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저로서는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점점 극단화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 노동자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 역시 외면할 수 없는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대한민국 정치지형에서 두 대담자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하면 보수든 진보든 모두 까기의 형태로 갈 수밖에 없는 것도 쉬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거대 두 당을 기본적으로 모두 보수당으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의 진정한 진보에 대한 걱정과 견해를 피력합니다. 저 역시 이분들의 정치적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데 수구보수인 국민의힘과 자유 보수인 민주당이 교대로 정권을 주고받으며 큰 변화 없이 대한민국을 이어가고 있다는 지적은 피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당이 정권을 잡아도 세상이 크게 변한다는 정치적 효능감이 없다는 부분은 어쩌면 뼈아프게 받아들일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이후로 전근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교육의 문제와 정말 답이 없어 보이는 언론의 문제까지 깨알같이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교육에서의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은 불평등을 대대로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지적이 날카롭습니다. 소명을 망각한 언론에 대한 지적과 유튜브와 SNS를 통한 미디어들의 대범람으로 양극화와 확증편향이 심각해지고 있는 부분을 놓치지 않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3. 더 의미 있는 비판과 담론이 되기 위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대담자들의 진정성에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의 최전선에서 살아온 당사자들의 만남으로 인한 시너지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무엇보다 삶의 현장에서 몸소 겪은 현실과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다양한 문제들을 생생히 증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회 전반에 대한 이들의 날선 비판이 따갑지만 외면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어쩔 수 없이 가진 자와 힘 있는 자 위주로 돌아가고 그들을 추종하고 동경하는 다수에 의해 구축되어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누가 봐도 소외계층이고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임에도 그들이 권력과 자본을 넘치도록 가진 기득권을 "걱정" 하며 지지한다는 점입니다. 저자는 대한민국에 제대로 된 진보가 거의 없는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런 계층적 진보 세력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데 납득할 만합니다.


   또한 평소 일상을 살면서 깊이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는 물론 주류 언론과 정치 세력이 애써 외면하고 덮어두던 문제를 들추고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사실 다수지만 소수처럼 행동해온 대다수의 소시민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부여할 수 있고 자신의 처지에 맞는 스탠스를 취할 수 있도록 돕는 점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읽어 사회문제를 공론화하는 데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전반적인 톤이 너무 비판적입니다. 심정은 이해하나 사람들이 의외로 확실한 대안 없는 비판을 힘들어하고 불편해합니다. 이는 이 책을 짚어들지 않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너무 옳은 말이고 지적해 볼 법한 문제임에도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입바른 소리라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습니다.


   또한 저자들의 지적처럼 대한민국은 극 보수와 자유주의 보수가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정치지형을 가지고 있는데 여전히 그들이 이해하기 좋고 생각과 행동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다는 방향으로는 관심도 없고 고려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태도가 이런 문제를 야기한 것 같습니다. 만약 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고 문제 제기에 동의하며 공론화가 일어나 실질적인 변화의 기류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의도였다면 전략적인 실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당사자들을 모두 까기 하는 상황에서 이 책의 주장을 수렴하고 받아들일 주체가 사라지는 상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난과 혐오를 지적하면서 비난과 혐오를 조장하는 자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의 정서를 버리지 못한 듯한 대담 내용 또한 심각한 한계로 보입니다.


   너무도 선명한 스탠스를 가진 두 분의 대담은 다소 이상적이고 지나치게 비판적이며 신랄한 느낌입니다. 보수 또는 개인주의의 함정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현실에 비추어 이 책이 더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하기에 어려워 보입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도 많았으면 좋겠습니다만, 그마저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세상은 이미 가볍고 트렌디한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고, 흥미를 끄는 제목과 예쁘고 아기자기한 표지를 중심으로 책을 선택하는 케이스가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트렌드를 정면으로 역행하는 듯한 제목과 표지를 감안하면 입소문이나 추천이 아니고서는 자발적으로 서점에서 이 책을 골라 읽을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여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두 대담자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대담의 성격이나 내용을 바꿀 수는 없다 하더라도 출판사 차원에서 다수의 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전략적 고민이 좀 더 있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누구든 한 번쯤 진지하게 고민하고 정리해 봐야 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의미 있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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