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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Nov 16. 2022

모호한 경계에서 찾은
정체성에 관하여

전후석 [당신의 수식어] 책 리뷰





1. N 개의 수식어로 살아가는 사람

   언제부터인가 노동 수입의 한계와 자본 수입의 장점에 대한 저변이 넓어지면서 파이프라인 수입이 강조되기도 하고 N잡러라는 말도 유행했습니다. 이처럼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람보다 다양한 관심사에 발을 대며 여러 개의 페르소나로 살아가는 삶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영화 <헤로니모>, <초선>의 감독이자 이 책 <당신의 수식어>의 저자 전후석 감독 역시 여러 개의 수식어를 나열해야 설명이 가능한 인물입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기본적인 언어와 문화를 채 배우기도 전에 한국으로 들어와 초중고 시절을 보내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간 저자는 재미 한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기를 겪었고, 미국 공공기관 KOTRA의 변호사로 살다가, 우연히 쿠바 여행 중 만난 특별한 인연으로 인해 다큐멘터리 감독이 되었습니다. 한국 밖 한인과 한인 2,3세 들의 디아스포라로 적 삶과 정체성에 대한 운동, 인터뷰 등으로 저변 확대에 힘쓰고 있는 그는 <당신의 수식어>를 쓴 작가이기도 합니다. 

   책 리뷰 시작부터 저자의 이야기만 주야장천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데, 이 책은 사실 전후석 감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이해하거나 관심을 가지기 쉽지 않습니다. 책의 내용 자체가 전후석이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인물의 인생 여정이자, 한국 외 지역에서 생활하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수많은 재외 한국인들의 디아스포라로 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후석이라는 사람의 삶과 고민, 성장을 살펴보면 전체 디아스포라 사회에 속한 사람들의 삶과 고뇌를 일면 이해할 수 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최근 개봉한 영화 <초선>의 마케팅에 조금 관여하면서 한국인들이 재외 한인들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다는 점을 새삼 느꼈습니다. 갈수록 먹고살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한국인들이 해외 거주 한인들의 삶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가지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2021년 재외 한국인은 외교부 공식 자료를 보면 730만 명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의미 있는 연대를 이루어야 할 과제를 앞두고 있지만 내국인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책은 재외 한인에 대한 관심의 시작이 되는 상황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책입니다. 


2. 정체성의 실체와 디아스포라

   이 책은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생각해 보면 저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 본 적이 없습니다. 고민할 이유도 계기도 없었습니다. 세계 유일 단일민족 국가로써 주변 누구를 봐도 거의 비슷한 처지다 보니 딱히 서로 정체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토론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에릭슨의 "정체성의 문제"에 따르면 정체성이란 자신 내부에서 일관된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른 사람과의 어떤 본질적인 특성을 지속적으로 공유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한국인들은 부모나 친척, 주변 친구들로부터 내재화 해온 자아 정체성을 그대로 가져가며 이렇다 할 갈등을 겪을 일이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한국인이면서 한국 밖으로 나가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자못 다른 양상이 펼쳐집니다. 타민족들 중 소수인으로써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한인 사이에서도 타국에서 태어난 한인과 한국에 있다가 타국으로 넘어간 한인 간에도 갈등을 겪습니다. 최근 시청한 모 프로그램에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미국으로 이민한 젊은이가 학창 시절 미국에서 태어난 한인들에게 받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정체성의 문제는 매우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비슷한 케이스로 미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에서 자라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저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리하기 힘들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저자가 정체성에 대해 어느 정도 힌트를 얻게 되는 계기가 인상적으로 묘사됩니다. 원로 기자인 이경원 기자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1992년 LA 한인타운 폭동 때 겪었던 일을 계기로 한인들끼리 뭉치게 되었던 일을 목놓아 설명합니다.   

   저자는 바로 이 일을 계기로 재외 한인들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합니다. 그 와중에  떠난 쿠바 여행, 드라마처럼 우연히 만난 쿠바의 전설적인 한인 헤로니모 임, 운명처럼 이 인물에 빠져들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그는 이 과정에서 한국을 떠난 한인들의 정체성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 책은 이런 드라마 같은 자신의 삶의 여정과 그 과정에서 겪은 일들을 담담하게 써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한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알리고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로써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자각하고 두  번째 영화 "초선"까지 제작하게 됩니다. 




3. 경계를 긋지 않는 세계관의 확장

   전후석 감독의 이야기를 대해 평소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재외 한인들의 삶과 고민을 간접 체험하면서 마음이 불편한 지점이 있었습니다. 미국 내 한인들은 코리아 타운을 중심으로 한인 사회를 구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도 정치적 이념뿐만 아니라 세대 갈등, 성 소수자의 문제뿐 아니라 하다못해 미국에서 태어나 쭉 살아왔는지 아니면 한국에 살다가 미국으로 왔는지 등등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 서로 갈등하고 차별하며 차별 당하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안되는 집구석에 싸움 멎을 날이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소수들끼리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그 속에서도 편가르기는 물론 그 와중에 소수가 극소수를 차별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계속해서 무언가의 잣대로 경계를 그어가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나와 너의 경계를 분명히 하는 행위보다 나와 너의 공통점과 접점을 우선해 바라보는 시각이 너무 필요해 보였습니다.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시키면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성인들은 자신이 속한 직장이나 하고 있는 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때로는 어느 지역 출신인지를 따지고 출신 대학으로 구분 짓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자신이 속한 어딘가에 의해 정체성을 확인하려 하는 존재입니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이런 분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이런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도 모두 디아스포라와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 내가 속한 일터나 조직도 영원히 나를 설명해 주지 못할 것입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임시 거처에 지나지 않습니다. 현재 당신의 수식어가 앞으로도 영원히 당신을 수식해 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저자는 영원한 이방인과 같은 디아스포라로 적 사고를 통해 우리라는 테두리로 묶을 수 있는 이웃들이 다 함께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고 상상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이 저처럼 생각해 보지 못했던 "우리"의 경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누군가가 지금 저에게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명확하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분명 지금 여기 존재하고 있고, 나와 함께하는 가족과 이웃, 친구들이 있으며 글로 소통하는 온라인의 느슨한 연대 속 수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이 책이 우리를 다른 존재, 투쟁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말고 함께 삶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며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음을 생각하면 여러분들도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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