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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pr 01. 2023

신형철 평론가로부터 읽는
시와 인생 이야기

신형철 [인생의 역사] 책 리뷰








1. 시알못이 시와 친해지기 위한 최상의 선택, 시화

신형철 평론가의 신작 "인생의 역사"는 시화(詩話)입니다. 솔직히 시화라는 단어가 뭔지도 정확히 모르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어보니 다양한 시와 시에 대한 평론, 해석, 시인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다루고 있는 시 비평집 내지는 시를 모티브로 한 에세이집 정도의 성격입니다. 그러니 이거야 원, 시작부터 좀 고민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독서모임 도서가 아니었다면 마음잡고 읽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저는 예전부터 누구보다 시와 친하지 않은 시알못이라 더 그랬습니다.


여태껏 평생 읽은 시집이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인데다가 그나마 시집을 선물받거나 아내가 샀길래 읽는 수준입니다. 한 번은 시집 리뷰를 "이 시집을... 읽었습니다..."로 마무리 지은 적도 있을 정도니 저에게 시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것입니다. 시 한 편을 읽으면서 인생을 배우고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느낀다는 분들을 만나면 외계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시를 딱 읽으면... 할 말을 잃으면서 말 줄임표로 마무리하게 되는 경험을 몇 번 한 이후로는 시 알레르기가 생길 지경입니다.


이 책에 담긴 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는 시들이 이어집니다. 특별히 테마도 없이 동서고금 오만 시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시를 모르지만 다행히 저자는 시를 잘 아는 분입니다. 이 양반이 시를 풀이하고 해석해 주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나마 시의 내용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해당 시에 얽힌 스토리나 시대 상황, 시인의 특징이나 행보 등 다양한 배경지식과 주변 환경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주다 보니 입체적인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그리하여 이 시화를 읽고 나면 시에 대해 조금은 가까워지고 친해진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사실 시를 잘 알게 되었는지는 1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다른 시집을 꺼내 읽으면 여전히 머리가 멍해지고 말 줄임표가 절로 나오는 상황이 반복될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시화를 읽었지만 시는 모르겠고, 저자의 대단함과 저자의 글이 경이롭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다만 자전거를 처음 타는 아이들이 보조바퀴를 달고 익숙해지는 것처럼 시와 친해지려면 이 책처럼 탁월한 시화를 읽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은 좋은 선택인 것 같습니다.





2. 시를 삶의 영역으로 옮겨놓는 신형철의 방식

저자는 책머리를 통해 "시를 읽는 일에는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라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시가 점점 좋아진다는 분들이 많은 것이 이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다면 시가 전혀 좋아지고 있지 않는 저는 경험의 깊이가 없거나 여전히 철이 안 들었거나 타인의 인생을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이 시점에 도대체 '시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사전적으로 시는 "한 사람의 정신생활이나 자연, 사회의 여러 현상에서 느낀 감동 및 생각을 운율을 지닌 간결한 언어로 나타낸 문학 형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좋은 시는 어떤 정신생활을 했느냐에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에서 무엇을 느꼈는가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잘 쓸 수 있는 글이겠습니다. 여기에 압축적인 언어의 형태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기술적이고 예술적인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시를 쓸 수 있겠습니다.


바꿔 말하면 시란 시인의 인생과 시각이 고스란히 농축되어 담겨있는 열매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압축률이 높은 만큼 이를 어떤 툴로 어떻게 풀어내는가에 따라 풀리는 정도도 풀어진 형태도 달라지는 것은 필연적일 것입니다. 결국 시란 압축과 해제의 미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압축하는 자의 삶과 언어의 농도도 중요하지만 해제하는 자의 삶과 시선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문자로 쓰인 시는 누군가가 읽지 않으면 그저 글에 불과한 것일 테니 말입니다. 저처럼 압축 알고리즘도 이해 못 하고 해제할 툴도 없는 사람은 시 앞에서 참으로 난감함을 느낄 따름입니다.


이런 형국에 신형철이라는 걸출한 문장가가 시를 다루는 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엄청난 도움이 되니 말입니다. 시를 해제하고 자신의 삶에 녹여 새로운 글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아니, 이 시에서 이런 글이 나온다고?'하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유사한 방식으로 저의 삶과 인생의 궤적을 돌아보는 일말의 힌트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차지하고 저자의 글솜씨 만으로도 책을 읽는 유려한 즐거움을 줍니다. 특히 리뷰를 쓰는 저에게는 다다를 수 없는 극강 고수의 높은 벽을 만났을 때의 경이로움을 책의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자에게 아이가 생긴 후 약간은 달라진 인생의 스탠스가 이번 책에서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을 주의 깊게 읽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이분을 잘 모르지만 시화 형식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신형철 글쓰기의 원형은 참으로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글로 기록하고 표현하는 삶의 아름다움

개인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과 기술이 다양화되면서 타인의 글을 읽는 수요는 나날이 줄어가고 자신의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자신의 글을 쓰고자 하는 욕구'라 함은 불특정 다수의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읽고 반응을 하거나 영향을 받는 상황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SNS나 자가출판, 독립출판 같은 루트를 굳이 쓰지 않고 자신만의 일기장을 활용하겠지요.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한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현상은 환영할 만합니다. 정상에 오르는 행위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글을 써서 책을 내는 상황 등을 의미한다면 과거는 등단이라는 좁은 문을 거쳐야만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었던 반면, 요즘은 너무나 다양한 등용문과 등산로가 존재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많은 사람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것만 의미 있는 글쓰기는 아닐 것입니다. 그저 글로 삶을 표현하고 기록해 내는 행위를 꾸준히 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아내는데 엄청난 힘이 됩니다. 적어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은 인생을 소모하는 삶은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의 삶을 다듬어야 하고, 돌아보고 의미 부여를 해내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가 아니라도 일기나 에세이, 또는 소설 등의 글을 쓰면서 인생을 관조하고 방향을 조율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내 삶을 아름답게 가꾸고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면서 살고 싶습니다. 매 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각인하고 싶습니다.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시가 아니라도 길고 장황하게 날것으로 써나가는 방식도 좋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환경이 전혀 다른 누군가가 읽어도 오해하거나 의도를 잘 못 이해할 확률이 낮아지니까 좋습니다.

내 인생을 글로 써나가는 기술적인 방식에 대해 힌트를 얻고 싶다면 신형철 평론가의 글은 일종의 레퍼런스가 됩니다. '일종의'라는 표현을 붙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양반의 글이 너무 수준이 높기 때문입니다. '수준이 높다'라는 점에 집착해 어려운 단어와 평소에 쓰지도 않는 문장을 써 내려가거나 도통 알 수 없는 문학적 허세를 쏟아내는 글을 종종 만납니다. 그런 글은 공감을 얻기가 어렵습니다. 글 속에 자기자랑이 너무 배어 있어서 쓴웃음이 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역사] 속 저자의 글에는 그런 허세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아주 일상적인 용어와 표현으로 써나간 그의 글은 이해하기 쉽고, 가슴으로 공감하기 너무 좋은 글입니다. 그렇기에 이 분의 글을 높이 평가하기에 주저함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너무 진지하고 세상 차분한 것만 빼면 닮고 싶은 글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이 분보다는 조금 더 가볍고 픽 하고 웃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만, 진정성이라는 관점에서 참으로 훌륭한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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