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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May 13. 2023

더 심화된 심리를 통한 삼국지
다시 읽기의 즐거움

천위안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2> 책 리뷰





1. 삼국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대단한 재미

   천위안의 <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1>에 이어 2편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읽는 재미나 깊이는 1편 보다 2편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1편에서는 제갈량이 천하 삼분지 대계를 펴며 삼국 전쟁에 뛰어드는 장면과 동오를 휘젓고 주유를 좌지우지하는 모습 등을 중심으로 제갈량의 천재적인 면에 집중했다면, 2편은 그보다 인간적인 면을 부각하며 심리학적으로 깊이 있는 분석이 이어집니다. 

   특히 삼국지연의 본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제갈량의 내면적 갈등이나 인간적인 약점 등이 그의 행적을 토대로 가감 없이 서술되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자 매력입니다. 그저 건조하게 사건 위주로 진행되는 삼국지에서는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면만 부각되다 보니 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그냥 '신기하다' 정도의 느낌만 가지고 넘어가게 됩니다. 

   삼국지는 특정 인물의 입장이나 감정을 깊이 바라볼 여유도 이유도 없기 때문에 수많은 인물들 간에 일어난 아전투구가 생생하게 전해지는 것으로 그 재미를 더합니다. 조지 R.R 마틴의 <얼음과 불의 노래> 시리즈만큼 사람들이 죽어 나가지는 않지만 삼국지에도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하고 죽어 사라지는 대서사시가 펼쳐집니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의 속마음까지 상세히 묘사할 여유는 없습니다. 

   중국의 천재 작가라 불리는 천위안은 현대 심리학의 관점에서 삼국지 속 역사를 재해석합니다. 심리학이라는 툴로 역사 속 인물이나 사건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흥미로운 책을 써내는 놀라운 작가입니다. 이 천재 작가의 눈으로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제갈량에 대해 속속들이 파헤칩니다. 1편에서 이미 맛보았지만 그동안 그렇게 삼국지를 즐겨 읽으면서도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천재 제갈량의 약점과 인간적인 면모를 디테일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정말 매력적입니다. 

   2편에서는 와룡과 봉추로 호각지세를 이루었다는 제갈량과 방통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두 사람의 심리적 대립과 장단점, 의도치 않았지만 서로를 견제하는 와중에 결국 방통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대 사건의 원인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두 천재 군사들이 서로 조금만 연합했더라면 삼국지의 지형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촉나라 내부적으로 절대 권력 제갈량과 황제 유선, 그리고 주변 권력자들 간의 수 싸움도 재미집니다. 눈에 드러나지는 않았던 사실이지만 결국 내부의 적이 나라를 좀먹는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갈량 일생일대의 숙적 사마의와 얽힌 이야기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결 구도는 팽팽한 긴장감을 더해 줍니다. 사마의 때문에 제갈량의 인간적이고 나약한 면이 한층 더 부각되기 때문에 심리학적으로 상당히 훌륭한 대립구도를 만들어줍니다. 

   


2. 스토리텔링에 녹아든 심리학 이론들의 향현

   저자가 훌륭한 심리학자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책 속 적재적소에 다양한 심리 법칙을 소개하는 능수능란함을 보아 대중심리학을 설명하는 실력만큼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즐겁게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타이밍에 수많은 심리이론이나 법칙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장면을 설명하고 등장인물들의 입장이나 내면, 갈등 상황 등을 재미있게 풀어놓은 뒤에 슬쩍 '이런 상황에 부합하는 심리 법칙이 바로 요러한 법칙인데 들어는 봤나?' 하는 식입니다. 

   예를 들어 첫 에피소드를 보면 방통이 등장합니다. 방통은 적벽대전에서 연환계를 성사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해 입장이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적벽대전에서 신출귀몰한 연출을 통해 거의 신의 영역에 도달한 듯한 모습으로 그 능력을 과할 정도로 인정받았습니다. 서로 기량이 막상막하라는 평을 받던 방통은 라이벌 정도로 여기던 제갈량이 지나치게 앞서나가 따라잡기 힘든 위치에 이미 올라 있자 심리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충분히 설명한 뒤에 이런 경우를 '사회 비교'라 하며 지나치면 자아 가치를 잃는다고 설명합니다. 제약 조건, 비교 조건과 하향 비교, 상향 비교 등의 용어를 들어 자신을 갉아먹는 잘못된 습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런 사회 비교의 마음을 과감히 버리고 당당하게 행동할 것을 조언합니다. 

   이 책에는 이런 식의 심리효과나 법칙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초두효과, 근인 효과, 지각 대비 효과, 인지부조화, 지각의 선택성, 유형화의 편견, 접근성의 법칙, 심드렁한 판매자 전략, 불충분 정당화 효과, 후광효과, 격장법, 사회적 태만 등이 전체 분량 중 전반부 2/5 정도에 등장하는 심리학 법칙들입니다. 

   만약 이 책이 기초 심리학 교제처럼 저 많은 심리 법칙을 제시하고 설명 후 예를 드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어렵고 재미가 없었을까 생각하면 저자의 설명 방식이 너무나 탁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다양한 심리 법칙을 배우면서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존 삼국지가 사건 중심이었다면, 천위안의 삼국지는 사람 중심의 이야기입니다. 




3. 제갈량과 삼국지 등장인물에게 배우는 처세술과 용병술 그리고 한계들

   제갈량의 놀라운 승리 비결 중 가장 핵심은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이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했다는 데 있습니다. 1편에서 더 도드라지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 속에서 이런 능력은 더욱 빛을 발합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자기 페이스로 이끌기에 터무니없이 역부족인 상황에서도 심리전을 적절하게 펼치고 현란한 말솜씨와 연기력으로 결국 원하는 것을 이끌어 냅니다. 이런 사람은 사실 뭘 해도 했을 것 같습니다. 

   제갈량이 현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정치인이 되거나 사이비 종교 교주나 다단계 회장 같은 걸 해도 크게 성공했을 것 같습니다. 사이비 종교 교주 같은 경우에 크게 성공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이 스스로 신격화하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제갈량의 초특기가 아닙니까? 자신의 능력과 말솜씨를 최대한 활용해서 마치 하늘의 뜻을 알고 신의 반열에 오른 사람 행세를 하는데 능했습니다. 물론 이 정도 쇼는 정말 천문에 탁월한 능력이 없이는 아예 불가능한 것이지만 여기에 이미지화까지 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제갈량 같은 수준의 자기 포지셔닝을 처세술이라고 하기에 단어의 뉘앙스가 좀 부정적이라 적절한가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 책의 말미로 갈수록 나이가 들면서 점점 한계와 약점이 노출되면서 결국 인간적인 면모를 여러 번 드러내게 되면서 결국 처세술에 능했다고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갈량은 부족한 자원으로 최대의 퍼포먼스를 뽑아내는 데에도 탁월했는데, 이는 인적 자원을 무리할 정도로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무리할 정도라는 말을 하는 것은 각 장수들의 역량과 성격적 장, 단점과 상호 관계 등을 염두에 두고 용병술을 펼쳤다는 말입니다. 이 책에서도 격장법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휘하 장수들을 도발하고 욱하게 만들어서 뛰쳐나가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회사에서도 직원들의 이런 성향이나 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다면 최대한 퍼포먼스를 내도록 동기부여를 하고, 경쟁하도록 도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는 아무리 성과가 중요한 조직에서라도 지나친 격장법은 삼가는 것도 미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장 그 순간에는 최대의 효율을 올릴지 몰라도 장수들이 다소 소모되고 편치 못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제갈량을 중심으로 당대의 뛰어난 지략가와 용맹한 장수들, 그리고 상호 관계에 있어 최고의 성과와 이미지메이킹을 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파워풀한 능력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서로의 인격과 권리를 존중하고 상호 신뢰할 수 있는 여지에 대해서만 조심한다면 이 책에 드러나는 다양한 심리적 법칙과 자기관리와 인간관계에 대한 다양한 교훈을 적극 활용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기존에 드러나지 않았던 삼국지 인물 간의 내면 심리와 갈등, 대립과 승부를 읽다 보면 굉장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읽어보시기를 적극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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