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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ul 23. 2018

천사와 악마

일루미나티 음모론을 적극 활용한 댄 브라운의 대중적 장르소설



1. 장르소설의 기본 플롯에 충실한 대중소설


   비주류 삼류 마이너 리뷰를 지향하는 저로서는 댄 브라운 같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소설을 본능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 은 아니고 괜히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이 작품을 읽은 것은 최근에 흥미롭게 조사해 보았던 일루미나티 음모론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다행히 가독성도 뛰어나고 제가 기대한 일루미나티에 대한 고전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 매우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루미나티 조직의 기원과 성장, 지침 등 다분히 정설에 해당하는 이론적 내용이 주로 설명되어 있어서 근래 널리 퍼진 음모론에 대한 궁금증까지 충족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일루미나티로 시작한 이 소설은 형식 자체의 충실함 때문에 감탄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지,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종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시작부터 막 달려나가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스릴러 특유의 특징을 그대로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긴장감을 가지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설 작법 책에서나 설명할 법한 전형적인 장르소설 플롯에 매우 충실하다는 점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애매했습니다. 이 정도 성공한 소설이라면 흔한 전형적인 플롯 외에 뭔가 한방 날려주는 원샷 스킬 같은 것이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오히려 전형적 플롯을 더욱 극대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소설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는 노래도 정해진 머니 코드를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으니 딱히 놀랄 일도 아니기는 합니다. 

   제가 괜히 뭔가 놀라운 플롯, 신기한 플롯으로 전개될 거라는 기대를 품고 읽어서 더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튼 통하는 코드기는 하지만 정말 뻔하디 뻔한 플롯이었습니다. 역시나 다수의 대중에 사랑을 받는 노래, 영화, 소설 등에는 통하는 성공 법칙이 있기는 한가 봅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소설가 지망생들이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써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뻔함을 완성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스마트한 작가임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그렇기에 아마도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독한 장르 소설을 많이 읽지 않는 일반 대중 독자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엄청 재미지게 읽을 것이고, 소위 미스터리, 스릴러 좀 읽었노라 하는 독자들에게는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식상하다, 뻔하다 등의 평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가볍지 않은 철학적 논점. 종교 Vs 과학


   일루미나티 음모론에 대한 흥미로 시작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의외로 대중 장르소설 답지 않은 철학적 논점을 제시합니다. 중세를 휘어잡으며 유럽인들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제한하고 간섭했던 절대 신앙 가톨릭과 이를 부정하고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이를 넘어 인간이 신의 지위를 차지하려 했던 과학 진영 간의 첨예한 대립을 통한 철학적 고찰이 무척 흥미롭습니다.

   인류의 발전과정에 필연적인 역사라고 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중세 가톨릭 교회가 인류에 미친 해악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이성을 마비시키는 신앙의 강요야말로 그 어떤 폭력보다 한층 더 폭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수많은 살인 역시 역사적인 사실이고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입니다. 오늘날에도 정치와 종교의 문제로만 이어지면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고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세상을 공부하고 살펴볼수록 진절머리 쳐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과학 역시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신의 위치에 서려고 하는 노력은 가상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환경파괴와 부작용, 불균형의 심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술 발전의 정점을 표현하기 위해 신의 창조 영역이라 여겨지는 반물질의 생성에 성공한다는 설정을 차용한 것은 좋았습니다. 그리고 바티칸 교황청과 유럽입자물리학 연구소(CERN)를 대척점으로 설정한 점도 좋았습니다. 

   여기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쇠락해가는 가톨릭의 형편에 대한 묘사, 그리고 그 회복을 위한 노력 등을 다루는 모습도 일종의 형평을 이룬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았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종교와 과학의 역할론은 물론 철학적 논점들에 대해 저자의 목소리를 높이는 점은 사실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지만 소설적 재미를 떨어뜨리는데 크게 일조를 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철학적 관점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가치는 큰 내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


   일루미나티의 음모가 이 소설을 출발하게 하는 힘입니다. 은밀하게 감추어진 거대한 음모세력이 움직일 때 우리는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있는 선 역이 등장해 사투를 벌임으로써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게 되지요.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이 소설의 결말에는 음모가 파헤쳐 지고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스토리라면 정말 '드럽게 뻔하다'라는 평가를 받게 되겠지요. 저자는 매우 전형적인 소설적 플롯을 쓰면서도 식상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작을 화려하게 열었던 음모 집단이 밝혀지고 세상은 다시 평화를 얻는다는 식의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 정도로는 만족하지 못했는지 반전에 재차 반전을 함으로써 독자들의 뒤통수를 두 번 연속으로 때립니다.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반전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이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정의한다면 지나친 반전은 '에이, 세상에 이럴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소설적 재미를 떨어뜨린다고 봅니다. 이 소설이 전형적으로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 느낌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굳이 삐딱하게 읽었을 수는 있지만요. 재밌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신다면 내가 미안...

   아마도 제가 워낙 담백한 전개를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고, 단순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이 소설은 지나치게 독자의 상상을 뒤집으려 노력을 했고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별로야... 그게.. 그것 때문에 엄청 재미진 이야기의 후반부가 뭔가 지칩니다. 이야기가 마무리된 거 같은데 끝내지를 않고 아직 몇십 페이지가 더 남았단 말이죠. 그렇다면 뭔가 굳이 반전을 또 주겠다는 건데 궁금하지도 않고 더 알고 싶지도 않아. 그만 끝내줘.. 이런 느낌입니다.

   전반부는 매우 창대하고 기대가 만빵이었는데 뒤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는 느낌이죠. 어차피 결말을 정해져 있고 우리는 달리고 있어서 열심히 달려서 결승선을 골인하면 되는데, 아 젠장 골인했더니 "여기가 결승선이 아니었습니다~~"라고 하는 꼴이라.. 아놔.. 그리고 일루미나티는 화려하게 등장하는 듯 설레발을 엄청 쳤는데 슬그머니 로그아웃 돼버리더라.. 어디로 간 것이냐고...

   솔직히 읽을 때는 무척 재미지게 읽었고, 후반 말미는 종교냐 과학이냐의 철학적 사변이 흥미로워서 좋기는 했는데 이게 또 리뷰를 쓰다 보니 마치 엄청 형편없는 소설을 읽은 것처럼 돼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괜히 무슨 평론가나 되는 양 뭐라도 지적질을 하고 싶었던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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