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경 <두리안의 맛> 책 리뷰
1. 비주류의 애환을 담은 리얼리즘 단편 소설집
독자 입장에서 특정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작풍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좋은 일입니다. 이런 경우 독자는 작가 자체를 애정하고 그의 작품을 무조건 찾아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간이 출간되면 작가주의 관점에서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펼쳐내는지 기대하며 읽게 됩니다. 김의경 작가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 비주류 층의 문제에 대해 솔직 담담하게 써내는 것으로 자신만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초기작부터 불안한 청년들의 문제, 사회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소외자들의 문제를 세심하게 다루는 소설을 발표해 왔습니다. 막연한 개념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몸소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를 펼치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런 작풍은 대단한 장점이자 특징입니다.
경험이 작품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살아내는 현실이 곧 소설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아르바이트 경험을 바탕으로 펴낸 <콜센터>나 난임 경험을 토대로 써낸 <헬로 베이비> 같은 소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소설에 대해 논할 때만 쓰는 "핍진성"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레 활용하기 좋은 소설들입니다. 한편으로는 경험에 기반한 글을 쓰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한 인간이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일은 물리적으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의경 작가의 신간 <두리안의 맛>은 그동안 발표하거나 써 둔 단편 소설을 정리한 단편 소설집입니다. 단편 소설은 한 작가의 응축된 주제 의식과 소설적 기교를 맛보기 좋은 교보재 같습니다. 짧은 시간에 작가의 세계를 둘러보는 쇼케이스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한 편 한 편 읽어나가면서 작가의 소설 세계가 얼마나 재미있는지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두리안의 맛> 같은 소설집에 '재미'라는 단어가 잘 달라붙지는 않습니다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소설적 재미가 넘치는 소설집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2. 세대를 아우르는 사회 관찰 소설집
김의경 작가의 <두리안의 맛>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속에 당면한 생존 문제를 해결하려 발버둥 치는 소시민들의 이야기입니다. 초기에 발표한 작품들 때문에 주로 청년들의 문제에 주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번 소설집을 통해 세대를 넘어서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작품 <순간접착제>에는 안정적인 직업을 얻지 못해 아르바이트 전전하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은 물론 칠십 대가 되어서도 노동을 해야 하는 노인의 애환까지 균형감 있게 묘사하고 있어 인상적입니다. 밑창 떨어진 운동화를 정기적으로 본드로 붙여 쓰는 장면은 '생계를 위한 노동이 수명을 잠시 연장하는 행위'라고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두 번째 작품 <시디 팩토리>는 사실 약간 슈르 리얼리즘 연애소설로 비치는 느낌도 있었는데, 그 속 사정이 그다지 넉넉지 못하다 보니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 같은 묘한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 특히 결말 부분은 뭔가 하루키의 단편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의경 소설에 대한 저의 선입관을 깨주기 충분했습니다.
세 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두리안의 맛>은 3년 전쯤 "코스트 베네핏"이라는 앤솔로지에서 만났던 단편입니다. 블로그 여행 체험단을 소재로 쓴 작품으로 읽다 보면 씁쓸한 기분이 절로 드는 소설입니다. 처음 접했을 당시 "체험을 하며 겪는 주인공의 심리적 괴리를 산재 문제로 고통받는 SNS 친구와 대비해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각해 볼 것이 많은 소설입니다."라고 썼었습니다.
이러다간 일일이 다 소개하게 될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 편만 더 언급하자면 <유라 TV> 같은 경우, 수오 서재의 떡볶이 소설집 "당신의 떡볶이로부터"에서 만났던 소설입니다. 먹방 유튜버를 소재로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린 유튜브 업계의 문제를 문학적으로 표현해 문제의식과 작품성을 모두 잘 잡아낸 균형미 좋은 단편입니다. 문제의식과 가정 문제, 인간관계의 문제까지 아우르고 있어 무척 인상 깊고 좋았던 소설입니다.
3. 결국은 나와 당신, 우리의 이야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생계를 꾸리기 어렵고 무언가의 부재로 힘들어하며 인간관계에도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진 것 없고, 능력도 출중하지 않으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돈 버는 기술이나 수완이 대체로 부족한 인물들입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들 중 어딘가에는 속할 가능성이 높고, 소설 속 누군가에게는 감정 이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나의 이야기기도 하고,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의 비율을 고려하면 무언가의 부재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주류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근래에 가장 도드라지게 느끼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리 자본을 구비하지 못해 갈수록 점점 힘들어져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입니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의 자산을 충분히 확보하는데 실패한 비주류이자 영세한 시민들이라면 해가 갈수록 자본과 돈 버는 수단을 보유한 소수와의 격차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저와 당신입니다.
<두리안의 맛>이 훌륭한 소설임에도 어쩌면 외면하고 싶고, 소설 속 인물들에게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드는 것은 낮은 계층에 속한 현실을 피하고 싶고 인정하기 싫은 마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살아내기가 힘들어 마음에 여유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정말 가진 것이 없고 내일을 보장하기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타인을 돌아보고 누군가를 보살피기도 합니다. 바로 이 부분이 다분히 극적이고 소설의 역할과 기능을 충실히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던 생활 패턴과 삶의 양태가 꽤나 많이 변했습니다. 강제적인 환경 변화가 오랜 관성을 철저히 깨부순 것만 같습니다. 소설집에 수록된 소설 등 중 다수가 코로나 팬데믹 당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수자나 비주류는 사회적 환경 변화에 더 취약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그 좋은 예입니다. 자영업자의 삶이 무너지고 그 토대에서 아르바이트 등으로 공생하던 계층도 심대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정부는 이 모든 리스크를 가능한 개인들이 짊어지도록 강제했습니다.
더 무서운 고난은 코로나를 지나온 다음부터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는 부분은 실존하는 현실의 고통과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적어도 느슨한 연대를 통해 서로 연결되고 힘이 되고 위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입니다. 힘들어서 서로 외면하면 모두가 외로운 섬이 되고 단순화, 파편화되어 부유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언 듯 이해가 안 되는 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우선할 때 공존의 희망이 생깁니다.
겉으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두리안처럼 겉만 봐서는 알 수 없습니다. 부드럽고 풍미 가득한 속살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내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두리안의 향", "두리안의 냄새"가 아닌 "두리안의 맛"인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김의경 작가의 소설에는 엄혹한 현실과 힘든 사람들의 냄새와 더불어 연대의 풍미와 소통의 맛이 넘칩니다. 피하고 싶지만 읽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한 소설입니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