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쉬언 <달리기와 존재하기> 책 리뷰
1. 왜 꼭 달리기여야 하나?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달리기를 사랑하는 러너들의 경전과 같은 책이라고 하여, 독서모임에서 "매우 위험하게도" 이 책을 선택했고, 힘들게 읽었습니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무거움과 예스러움이 그대로 살아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그저 달리기를 좋아하면 술술 읽어지는 책이 아닙니다. 책 속 '달리기'는 수단에 가깝고 '존재하기'에 방점이 찍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는 달리기를 무척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조를 넘어 강권한다는 느낌을 받게 만들어 달리기를 하지 않는 분들은 반감마저 든다는 반응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이렇게도 달리기를 종교처럼 강조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달리기 책에서 등장하는 이유와 동일합니다. "정력적으로 삶을 살아가던 저자가 40대를 넘어 건강 위기가 닥치면서 달리기를 통해 위기를 넘기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았다."라는 이유입니다. 내가 해보니 너무 좋더라, 너희들도 꼭 해라. 안 하면 골로 간다. 뭐 이런 느낌이랄까...
달리기를 통해 나는 지금의 나와, 지난날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깨닫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느끼고 바라보고 듣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세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나를 신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p374
이렇게 저자는 달리기에서 구원을 얻었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책 전체에서는 '움직임', '놀이'라는 행위가 우리의 삶을 구원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움직임과 놀이의 일환으로 달리기 같은 행위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존주의 철학에 입각한 주장입니다. 실제로 책 속에 수많은 인용구가 등장하는데 대부분 실존주의 철학자의 말과 글입니다.
'아니 그래서 왜 꼭 달리기여야 하나?'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습니다. 모두가 저자와 같은 경험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이 책을 읽는 독자를 무척 헷갈리게 만들기도 하고 중도 포기하도록 만들 수도 있는 어려운 지점입니다. 너무 외골수처럼 보이는지 중간에 보면 또 꼭 달리기가 아니어도 다른 운동이라도 괜찮다는 이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또 달리기여야만 한다고 강조합니다. 달리기가 아니어도 되지만 꼭 달리기여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거든요. 여전히 의아하지만 그렇다고 합니다.
2. 달리기를 통해 자신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결국 이 책은 달리기를 통해 자신을 만나고 내 삶의 의미를 종교적 수준으로 찾아나가는 여정을 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 과정이 나름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목차만 봐도 인생의 큰 화두인 '살아가기'에서 출발해서 '발견하기', '이해하기', '시작하기' 등을 넘어 배우고 달리고 연습하고 치유, 승리, 경험, 명상, 성장, 바라보기까지 살면서 꼭 필요한 단계들을 총망라하고 있습니다.
목차만으로도 우리가 살면서 먹고사는 원초적인 것 외에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론적 행위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이는 책을 통해 독자가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저자는 이 여정을 달리기를 통해 해낼 수 있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책의 좋은 점은 또 있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번역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내용이 너무 정신없고 읽기가 어려운데 비해 문장은 상당히 매끄럽습니다. 번역가가 훌륭한 글을 쓰시는 분인 만큼 매우 순화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인용구가 예술입니다. 저자께는 너무 미안한 말이지만 제가 태그를 붙인 좋은 글은 거의 다 다른 분의 글이나 주장을 인용한 글이었습니다. 주로 그동안 잘 몰랐던 실존주의 철학자 오르테가나 의학 관련 종사하시는 분들의 글이 많았습니다. 초반에는 '이 책은 아포리즘인가?'라고 생각할 정도로 튀어나오는 명언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은 잘 안 잡히는데 명언이 자꾸 튀어나오는 신기한 구조의 책이었습니다. 이 글들 만으로도 값어치가 있는 책입니다.
운동 생리학적으로도 무척 유용한 책입니다. 왜 부상을 당하는지 매우 간결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고, 부상을 방지하는 방법도 간단하게 알려줍니다. 달리기가 기본 동작이지만 여튼 달릴 때 반복해서 많이 쓰이는 근육들이 있고, 이때 안 쓰는 근육과의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에 달리기 전이나 후에 안 쓰는 근육들과의 균형을 맞춰주는 간단한 스트레칭 들을 해주면 부상 위험을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매우 합리적인 설명이고 납득할 만했습니다. 실제로 동작들도 알려주는데 유용했습니다.
3. 그런데 왜 이렇게 읽기가 힘든 책인가?
<달리기와 존재하기>는 독자에 따라 상당히 읽기 힘든 책이 될 것 같습니다. 독서모임 전원이 다 읽기가 힘들었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저도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달리기를 종교처럼 신봉하고 잘 달리면 조금은 더 쉽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여러모로 읽기 힘든 책입니다.
일단, 철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개인적인 내용과 철학적 고찰이 잘 정리된 느낌이 아닙니다. 당시 유행인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논리 전개를 당대 저명한 인물들의 인용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유명인의 말이나 글을 인용하고 '나도 이렇게 생각한다' 방식으로 쓰고 있는데 이게 너무 심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성상의 문제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목차만 보면 정만 잘 정리된 책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뛰다가 걷다가 길을 달리다가 산악 트레일 러닝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초반에는 매우 강한 어조로 달리기와 존재 의미 찾기를 강조합니다. 철학 서적 같은 느낌입니다. 중반부를 넘어가면 달리기를 잘하기 위한 실질적인 경험을 나열하면서 개인 체험담 같은 기분으로 쉽게 읽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다소 누그러진 부드러운 어조로 달리기와 삶의 의미 찾기에 대해 당부하는 분위기가 됩니다.
메시지도 어조도 내용도 구성도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가 보입니다. 독자 입장에서 편치 않습니다. 큰 틀에서는 에세이로 분류해야 될 것 같지만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합적이고 정형화되지 않은 책입니다. 내용적으로 에세이이자 철학책이자 운동서이기도 하면서 자기계발서 같기도 하고 실용서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구조적으로도 통일성이 부족하고 오락가락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모르기는 해도 서로 다른 시점의 글들을 모아서 정리하는 과정에서 편집자가 짜깁기를 한 결과가 아닐까 의심이 됩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내가 달리기를 종교처럼 신봉하는 사람이거나 달리기를 통해 인생이 바뀐 체험을 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받아들이는 입장이 달랐을까?', 아니면 '실존주의를 비롯한 철학에 대한 이해가 높았더라면 더 잘 읽고 이해가 쉬웠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크게 공감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은 문구가 많은 책이었다는데 나름 만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