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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Jan 14. 2019

너와 나의 우주가 만날 때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들

성장 소설 [안녕, 우주] 책리뷰




1. [안녕, 우주]라는 훌륭한 성장소설


   가끔 밝히기는 하지만 저는 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 이야기를 공감하기 어려운 꼰대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은 것은 호기심이었습니다. 주로 과학이나 역사 등 지적인 부분을 채워줄 만한 책만 읽는 첫째에게  소설을 읽도록 돕기 위해 선택한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책을 너무 빨리 호로록 읽어버리지 않겠습니까? "재밌다"라는 짧은 감상과 함께 말입니다. 자연히 어디가 어떻게 재미있고 좋은 소설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읽어보니 그야말로 의심할 데 없이 훌륭한 성장소설이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네 아이를 주인공으로 각자의 특성과 성향을 매우 치밀하게 잘 그리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운명처럼 하나의 사건을 겪으며 서로의 세계가 뒤섞이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는 과정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각자의 세계를 유지하면서 교류가 일어나는 과정을 막힘없이 풀어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이 책은 2018년 뉴베리 상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책의 말미에 대상 수상 소감이 실려있었습니다. 저자 에린 에트라다 켈리는 자신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필리핀과 미국의 혼혈 가정에 태어난 저자는 자라면서 동네에 유일한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매우 많이 겪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겁이 많고 도전적이지 못한 움츠린 성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사람은 예상이 되는 것처럼 책에서 위안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위안이 쌓여서 삶의 자양분이 되고 충분히 숙성된 그 퇴적물 사이에서 훌륭한 이야기가 태어나는 것이겠지요. 이 소설의 세계가 어떻게 창조된 것인지 궁금했는데 수상소감까지 읽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런 흐름을 매번 마주하다 보니 '아, 왜 나는 더 외롭지 못했는가, 왜 도서관에서 짱박힐 생각을 못 했는가...'라는 쓰잘데기 없는 공상을 하게 됩니다. 






2. [안녕, 우주]의 특장점


   이 소설은 눈에 띄는 장점이 상당히 많습니다. 우선 소설의 서사 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어설프게 도전했다가는 '이게 무슨 이야기지?'라는 반응을 보이기 딱 좋은 다 인칭 시점이 사용됩니다. 결론적으로 정말 어떤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이런 경우 다 인칭 시점의 활용은 상당한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각 등장인물들이 저자의 페르소나 중 한 파트라고 볼 수 있는데, 소심하고 쉽사리 표현하지 못하는 수동적인 부분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남자아이 버질과 귀가 잘 안 들리는 신체적 결함이 있지만 남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똑똑하지만 고집이 꽤나 센 발렌시아가 있습니다. 발렌시아의 경우 인종의 차이로 느낀 차별적 요소를 신체적 결함으로 변치 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동양적인 이름과 가문에서 서양적 점성술을 추구하는 카오리 역시 저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독특한 성장 환경과 매우 유사한 설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힘은 세지만 현명하지 못하고 아이들을 괴롭히는 쳇 불런스는 저자에게 숨겨진 또 다른 에고의 표현으로도 생각됩니다. 


   이 아이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일상과 감상을 교차해가며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각자 자기의 이야기만 하던 스토리가 어느새 약했던 고리를 넓히며 서로의 영역으로 넘나들게 됩니다. 이런 흐름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작가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다 인칭 소설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지만 조금도 난해하거나 불편한 점이 없도록 이야기를 세심하게 이어갑니다. 그렇기에 가독성이 아주 좋고 아이들이 읽기에 가장 큰 장점이 됩니다. 


   두 번째는 이야기에 긴장감과 박력을 주는 사건의 적절한 배치입니다. 자칫 매우 밋밋한 이야기가 될 뻔한 이 소설이 하나의 사건 때문에 아주 긴박감 넘치고 스릴 있는 이야기로 탈바꿈됩니다. 배트맨 비긴즈의 유명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우물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우물은 마을의 숲에 있습니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숲"의 설정과 선택도 탁월합니다. 각자 아이들의 집을 오가는데 지나치게 되는 숲이 핵심 사건의 무대가 됩니다. 평소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숲"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입니다. 이 속에서 벌어진 사건 때문에 오롯이 아이들만의 세계가 완성됩니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장점은 문장력입니다. 너무 어렵지 않게 아이들이 딱 이해하기 좋은 차원에서 좋은 문장이 많습니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순간 반짝이는 순도 높은 문장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 의미를 다 이해했다면 벌써 장성한 어른이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새긴 문장들은 언젠가 되살아나 아이들의 지혜를 빛나게 해 줄 것입니다. 






3.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당당히 받아들인다는 것.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핵심 인물 버질은 소심하고 여리고 겁이 많습니다. 소심한 아이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자신감도 없습니다. 만약 가정에서라도 자라나는 버질의 성격적 특성을 이해해주고 좋은 기질로 여기며 격려해 주었다면 생각보다 쉽게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심하고 여린 성격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여길 수도 있었겠지요. 버질에게 그런 가족이 있었다면 이 소설은 성립조차 안 되었겠지만요. 안타깝게도 버질 외에 모든 가족들은 호탕하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성향입니다. 이런 환경이기에 버질은 안으로 더욱 움츠러들고 이런 성격적 요소는 아이들의 사회에서 큰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일종의 결핍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발렌시아는 실제로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 눈치를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태도와 상관없이 아이들에게는 "다름 "을 수용할 만한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본의 아니게 홀로되어 외롭습니다. 발렌시아에게는 친구가 필요합니다. 소중하고 깊은 소수의 관계는 성장과 행복의 핵심요소인데 발렌시아에게는 그것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얼핏 보면 다른 것 같지만 버질과 유사한 차원의 결핍입니다. 


   다른 두 아이 카오리와 불런스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다른 극과 같은 네 아이들이 서로의 공간에서 유연하게 물 흐르듯 좋은 관계를 맺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합니다. 성장과 성숙이 동반되어야 하고, 스스로를 알고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를 배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알기 위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서 당장 앞에 닥친 상황을 회피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숲"에서 벌어지는 하루의 사건을 통해 현실을 당당히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과정을 매우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설이라는 틀 안에서 일어나고, 독자인 아이들도 쉽게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다소 인위적이고 지나친 우연의 연속으로 마무리되는 감은 있습니다만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은 충분히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아동소설의 한계를 오히려 "우연"과 "운명"이라는 테마로 치환해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일어나는 일들이 오로지 "우연"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어떤 성장도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받아들이면 딱히 노력할 것도 없는 것일뿐더러 특별히 의미 부여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일들이 모두 특별한 운명에 의해 이어지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다면 상당히 다른 차원으로 이해가 됩니다. 


   '운명'이라는 말은 "피할 수 없음"을 나타냅니다. 피할 수 없이 겪어야 하고, 이 과정을 통해 고통을 동반한 성장이 일어납니다. 물론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회피를 겪습니다. "피할 수 있는"일이 많아요. "피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몸만 성장한 애어른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은 "어른"일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우연히라도 올라가게 되면 어린이같이 유치한 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요지경인 이유는 "피하면 안 되는 일"을 맡아서 "피하기만 하며 자기에게 편하고 좋은 일만 하는 태도" 탓입니다. 


   버질처럼 우리에게도,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의 우물에 떨어지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를 지혜롭게 잘 보내야 합니다. 또, 서로 상대방의 우물에 줄을 내려 올라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성장은 사회의 성숙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도움을 받은 경험은 타인을 돕는 이타심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신뢰와 배려로 나타나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소설 같은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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