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희망없는 시대, 현실의 바닥에서 발견하는 긍정의 미학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김의경 장편소설 "콜센터"

by 돈다돌아
8974331292_f.jpg



1. 왜 하필 지금 태어났니? 구조적 억압속에 신음하는 청춘들의 극한 생존기.


시대적 상황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누구나 수긍할 만한 고통 받는 현실, 이 시대의 청춘들의 이야기입니다. 조금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보다 나은 환경에서 상대적으로 손쉬운 경쟁 속에 기득권에 편입한 이전 세대들에 비하면 현재의 청춘들은 여전히 생존 자체가 고통입니다. "Why so serious?"라고 말하는 인간들도 꽤나 있기 때문에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여전히 대다수는 고착된 사회구조 속에 억압과 불평등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대한민국의 갑질은 상당히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갑질이라는 것은 갑을 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위치에너지를 이용해 "내리찍어" "을"을 괴롭히는 행태입니다만, 우리가 곳곳에서 발견하는 갑질의 형태는 "갑"인 사람에게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을이 병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가 하면, 방금 굽신거리며 분노하던 병이 정을 발굴(?) 하는 수고를 해가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괴롭힘을 시전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법 없이도 살 만큼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장착한 저를 비롯해 이 글을 읽는 여러분조차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 "갑질"은 그렇게 광범위하게 일어납니다.


이런 현상을 저는 "서민형 갑질"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권력형 갑질"이 주로 미디어에 보도되며 일반인들에게 회자되어 공분을 사기는 하지만 사실상 더 만연해 있는 행태는 "서민형 갑질"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시면 매우 흔히 실생활에서 목격하기도 하고 본인이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이 "서민형 갑질"의 특징은 갑질을 시전하는 주체가 사회적 지위가 그다지 확보되지 않았고, 그렇기에 다양한 이유로 쌓인 내면의 분노를 엉뚱한 데다가 방뇨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서민형 갑질" 중에서도 더 악질은 자신의 실체를 숨긴 채 말이나 글로만 진상 짓을 터트리는 "원격 갑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갑질 오브 갑질, 갑질이 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콜센터"의 본질에 대해서 운을 떼려고 많이도 돌아왔습니다. 원래 "콜센터"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있어 편의를 제공하고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콜센터"는 사회에 만연한 갈 곳 잃은 분노의 폐기 처리장으로써의 역할이 더 커져 버린 것 같습니다. 원치 않은 기이한 역할을 맡아 버렸습니다. 이른바 욕받이로 전락한 것인데, 사회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역사가 있기도 하지만 기업의 경쟁구도 속에서 소비자에게 필요 이상의 저자세를 표방하면서 자초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갑질과 진상들의 정모가 열리며 누가누가 더 지랄맞은가 콘테스트를 여는 곳, 그 경연장이 바로 콜센터입니다. 소설 "콜센터"의 주 배경이 바로 이 핫 스팟, 콜센터인 것입니다. 헉헉...


갑질 논란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쉽게 지치고 쉽게 잊어버리는 대중에게 갑질은 약간 식상한 주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젊은 청춘들의 분투기를 그린 김의경 작가의 "콜센터"는 자칫 화제성이 없는 설정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이 소설에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 매료되어 단번에 읽어버리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소설이 갖추어야 할 미덕을 균형감 있게 모조리 갖추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재도 주제의식도 다 중요하지만 결국 "소설은 그냥 잘 쓰면 된다"라는 절대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의 험블하고도 퓨어 한 정신세계와 무척 잘 맞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근래 읽은 어느 국내 소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탁월하게 재미진 작품이었습니다.

IE001808690_STD.jpg






2. 무엇이 "콜센터"를 특별하게 만드는가?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소설 "콜센터"를 특별하게 만들었을지 따져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 작품은 제6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입니다. 수림문학상은 아직 역사가 길지 않은 문학상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감각 있는 소설에 상을 주는 것 같습니다. 저는 제2회 장강명 작가의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알게 되었는데, 이 작품이야말로 저의 마이너 뽕필 감성에 너무도 잘 맞는 기묘한 덕후력 쩌는 이야기여서 취향에 딱 맞았습니다. 그러므로 "수림문학상 수상작?"이라면 일단 읽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소설로 들어가서 이 소설은 매우 깝깝하고 속 터지는 소재에 비해 너무 따뜻하고 친절한 친구 같은 소설입니다. 얼마나 친절한가 하면, 줄거리를 요약하기 좋은 내용이 소설 속 본문에 떡하니 쓰여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까지 친절하시니 줄거리 요약도 할 겸 일부만 발췌를 해 보겠습니다.



하루 종일 진상 고객에 시달린 전문상담사 최시현 씨, 진상에게 복수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콜센터를 뛰쳐나갑니다. 그녀와 동행한 친구들은 1년 8개월간 동고동락한 스물다섯 살 청춘들입니다. 이들은 충동적으로 KTX에 오릅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는 듯이 전화기 너머에서 상담사를 괴롭힌 진상 고객의 면상을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진상을 만난 이들은 마음껏 화풀이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증오하던 진상 고객들과 똑같이 행동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엉뚱한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 콜센터 상담사들. 그들은 달립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달려 나갑니다. 그들 앞에 새파란 바다가 펼쳐집니다. 오래도록 가슴에 꼭꼭 눌러 담아 두었던 감정은 해운대 바다에서 세차게 분출됩니다. p. 185~6


다섯 명의 시선에서 번갈아 이어지는 콜센터 이야기로 억눌리고 상처받은 청춘들의 면면을 입체적으로 조망하던 이야기는 위 내용처럼 충동적인 부산행을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합니다. 이 과정에서 펼쳐지는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됩니다. 독자가 이야기에 몰입하도록 이야기를 구성하는 힘. 그리고 그 속에 느껴지는 현실감과 주제에 대한 진정성까지 더해지면서 작가의 우직한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이 입체적으로 다가오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의 요소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구축입니다. 각 캐릭터가 단순히 이력만 다른 것이 아니라 성격도, 추구하는 바도 많이 다른데, 각자의 목소리로 교차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 각각의 디테일한 차이를 비교하는 재미가 무척 쏠쏠했습니다. 저자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각 캐릭터 간의 관계와 위계도 다이내믹하게 그려냅니다. 이를테면 주리와 형조의 관계와 위계를 부산행 사건 전, 후로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습니다. 소설 속에 묘사되는 상황이 매우 있을 법하여 안쓰럽기도 하고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전체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게다가 소설의 배경뿐 아니라 주요한 각 장면, 영화로 치면 결정적 씬이랄까? 그런 장면들이 있어 소설의 극적인 면을 더해줍니다. 주리와 형조의 첫 잠자리에 대한 장면이 가장 일반적으로 꼽을 법한 장면이기는 합니다만, 전반적인 소설의 주제로 볼 때 저는 이 요절복통 청춘들이 엄한 데다 화풀이를 하고 나서는 되돌아가기 전에 미안한 마음에 사과의 의미로(?) 사과봉지를 몰래 놓고 가는 장면이 이 소설에서 가장 재미있는 백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장면들과 소재가 되는 콜센터라는 공간에 대한 실체적 이해, 캐릭터 간의 캐미, 입체적인 묘사, 가독성을 더하는 문장력 등이 더해져 읽기에 재미있고, 읽고 나서도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반복하는 소설이 되었습니다.


세계문학상 수상작 "붉은 소파"에 빛나는 조영주 작가의 추천도 이 소설을 특별하게 하는 큰 요소였습니다. 작가가 동지의식에 동료 작가의 소설을 후하게 평가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좀처럼 타인의 소설에 흥분하지 않는 작가의 특성상 제법 이례적인 일이라 이 평범한 제목의 소설에 관심이 가게 된 것입니다. 사실은 전문 작가와 단순히 재미를 추구하는 독자가 바라보는 소설에 대한 견해나 입장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것이라 '아, 좋은 소설인지는 모르겠으나 재미는 드럽게 없을 가능성이 제법 크겠다'라는 생각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읽었는데 의외로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소설을 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이변이었달까...

haeundae-beach-229490_1920.jpg






3. 출구 없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느슨한 연대의 힘.


소설 "콜센터"의 주인공들이 충동적으로 돌출행동을 감행하기는 하지만, 가면서도 걱정, 돌아오면서도 걱정. 그들은 현실의 무게와 무담을 떨치지 못합니다. "젊으니까 청춘이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자유를 누려보자."라는 식의 소설적 판타지는 다행히도 이 소설에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실 읽으면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입니다.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라면 정말 식상한 뻔한 소설이 되어버릴 공산이 컸습니다.


나름의 큰 결단을 통한 돌출행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처지는 어렵고 궁핍하고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갈 곳 없고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나마 있던 비정규직 자리마저 사라질 위협만 더해졌을 뿐입니다. 이 사실이 엄연한 현실에 실존하는 우리에게 놓인 미래입니다.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없이 불안하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자본주의에서 불안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수단으로 "돈"을 극단적으로 숭상하게 됩니다. "돈"이 권력이고 종교입니다.


그런데 이 젊은 청춘들은 아무 소득도 없어 보였던 부산행을 겪은 후 아주 조금은 달라집니다. 현실도 똑같고 불안한 처지를 확인한 것에 불가한 짧은 찰나의 여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내면은 변화를 겪습니다. 성숙이라고 해야 할지 성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인생 속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멈추어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를 소설은 짧은 에피소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게 끔찍한 감정노동에 시달리던 콜센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형편에도 불구하고 1박 2일 동행했던 청춘들의 여행 이전과 후는 상황을 대하는 인식과 태도에서 조금 차이가 생깁니다.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결정적 장면은 사실상 이런 약간의 변화에서 비롯됩니다. 소설은 그 변화의 순간과 이후를 세세한 터치로 잘 그려주고 있습니다. 소설에서 이들이 연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공간이 바로 옥상입니다. 별로 좋은 장소도 아니지만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 속에서 서로의 연대를 다져왔던 것입니다. 부산행은 이들의 연대감을 실제적으로 확인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평소에는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했을 만큼 느슨했던 연대감입니다. 의외로 사회성이 강한 인간은 기저에 이런 연대감이 강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온라인 SNS 세상 속에서 교류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소셜 네트워크 속 관계의 허망함과 부작용을 성토하는 분들이 많습니다만,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우리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위로와 격려가 이런 느슨한 연대감 속에서 역설적으로 매우 강력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고도화된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 노출된 우리의 현실은 결코 녹녹하지 않습니다. 비록 콜센터에 일하지 않는다 해도 대체로 비슷한 갑질과 을질의 구렁텅이 속을 허우적대며 악착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같은 형편의 동지 다수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은 이 "느슨한 연대감"에서 나옵니다. 소설 "콜센터"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서로를 알게 모르게 격려하며 다독이는 청춘들의 희망을 과하지 않으면서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매우 좋은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architecture-2598158_1920.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와 나의 우주가 만날 때 우리 삶에 일어나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