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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돈다돌아 Apr 14. 2019

인간이 구축한 첨단 기술 체계가 무너질 때 일어나는 일

SF소설 피드(THE FEED) 리뷰





1. 너무도 익숙한 테크놀로지가 무너진 세상이 온다면...



   어느 날 전 세계에서 일시에 인터넷을 포함한 모든 통신이 두절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얼마 전 아현 일대를 책임지는 KT아현국 화재 사건 하나로 인근 통신장애는 물론 카드 결제 불능 등 엄청난 피해와 혼란을 야기했던 것을 떠올리면 전국 단위, 세계 단위의 통신 장애는 가히 전 지구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만들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지금처럼 스마트폰을 끼고 살아온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당시에 처음으로 시티폰이란 혁신적인 단방향 모바일 전화 기술이 상용화되었으니 휴대용 전화를 사용한 시기는 불과 20여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이전만 해도 공중전화가 이렇게도 철저하게 외면당할 일이 일어날 거란 상상도 못해봤으니까요.


파란 화면에 텍스트만 뜨던 모뎀 통신 서비스만으로 신세계라며 밤새 게시판 채팅에 빠져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통신을 하는 동안에는 일반 전화회선이 막혀 부모님에게 갖은 욕을 먹던 때가 불과 30년도 채 안 된 가까운 과거였습니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처음 도입되어 너무 신기해하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제는 생활 필수품을 넘어 인터넷 없는 세상은 상상도 못할 시대가 되었지요. 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사물인터넷에 5G 통신에 4차 산업혁명, 자율 주행 자동차 등등 시대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의 시기에 약간 앞선 미래를 배경으로 SF 소설이 등장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지요. 마치 이런 소설을 쓰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양 그 이름도 OS 운영체제를 닮은 저자 "닉 클라크 윈도"는 차세대 각광받을 기술이라고 평가받는 바이오테크놀로지와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상상을 결합한 소설 [피드]를 썼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윈도 님이 쓰신 이 소설의 시대 배경은 통신 기술과 바이오 기술, 의학 등이 조금 더 발전해  인간의 뇌에 통신과 연산을 담당하는 바이오칩 "피드"를 이식하고 이를 활용해 상호 소통하고 공유하는 시대로 잡았습니다. 이런 배경하에 이 시스템이 어느 순간 붕괴되는 상황을 그립니다. 지금도 인터넷과 전화만 안돼도 일상이 마비되는데 정보 공유는 물론 의사소통을 인간의 말이 아닌 통신으로 하는 사회에서는 얼마나 심각한 일이 발생하겠습니까? 이런 설정 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소설적 재미를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2. 디스토피아적 상상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 묘사에 공을 들인 수작


   SF 소설이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이 되는 데는 기술적인 상상력 뿐 아니라 인간과 인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필수적입니다. 어떤 상황을 던져주고 그 속에서 우왕좌왕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사실적이면서도 때로는 기발하게 그리는 스킬이 발동되면 독자는 감탄하며 읽게 되는 것이지요. 위기에 봉착한 인간 개개인이, 또는 인류가 보이는 태도를 잘 그린다면 독자들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게 됩니다.


윈도 선생의 이 소설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특장점이 바로 등장인물들의 내면을 처절하리만큼 디테일하게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내가 만약 뇌로 직접 인터넷과 연결된 세상에 익숙해져 있다가 한순간에 소통이 사라진 적막 속에 빠져든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라는 상상을 저절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각 캐릭터들의 입장에 이입하게 되는 것이지요.


윈도 선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뭔가 좀 지루하다 싶은 타이밍에 적절한 스토리 전환을 이끌어냅니다. 주인공 부부의 아이가 납치된다는 설정을 통해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스토리에 긴장감을 부여하고 있어요. 이쯤 되면 부모의 마음을 잘 아는 독자 입장에서는 마음 졸이며 읽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게다가 개개인의 정신과 기억을 저장하고 백업하는 기술이 가능해지면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허투루 쓰지 않고 이야기의 긴박감을 더하는 좋은 소재로 활용합니다. 여기에 시간 여행, 평행 우주 등의 이론도 적절히 활용해 다채로운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3. 그러나 장점이 곧 단점이 될 수 있는 법...


   이 소설의 내용적 훌륭함의 관점에서 보면 SF 소설의 진지함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고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SF 소설도 어디까지나 장르 소설의 기본 미덕을 놓쳐서는 안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제법 지루한 소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캐릭터 개개인의 내면 묘사가 지나치게 많고 디테일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매우 놀라울 정도로 꼼꼼하게 묘사되거든요. 이걸 지루하게 생각지 않고 감정이입해서 따라가는 독자는 정말 재미있는 SF 소설이 되는 것이고, 그 템포가 느리다고 느껴지는 독자에게는 정말 지루하고 힘든 여정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서사가 너무 느려서 숨이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소설을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본다면 기승전결이 상당히 밋밋합니다. 뭔 이야기가 극적인 면이 없어요. 어차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늘 개개인에게 극적인 롤러코스터 같은 사건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 소설이 너무 현실 같을 필요는 없어요. 재미가 있어야죠. 소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재미 말입니다. 그게 자기 계발서나 경제학 책을 읽지 않고 소설을 읽는 이유가 아닐까요?


SF 소설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으니 이 소설의 의의를 가지고 논한다면 정말 훌륭한 소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대중성의 관점에서 평가를 한다면 아무리 SF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보더라도 아주 재미있게 읽기에는 무리가 있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스토리가 좀 더 극적이면서도 전개가 빨랐다면 많은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른 분들이 많이들 읽으시고 '무슨 소리냐? 열라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구먼! 어떻게 읽으면 이 소설이 지루할 수 있는 거냐?'라고 댓글로 항의해주시면 하는 바람을 살포시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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