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보호자가 뒤바뀐 우리 집
내가 치료받으러 병원에 갈 때마다 부모님이 나의 보호자로 같이 가주시지만, 사실상 부모님의 연세를 생각해 보면 내가 보호자가 되어야 할 상황이다. 나의 부모님은 결혼을 늦게 하셔서 내 친구들의 부모님들보다 나이가 많으시다. 특히 요즘 부쩍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나는 왜 하필이면 일 경력도 열심히 쌓고 결혼도 이미 했어야 하는 이 나이에 환자가 되어서 병원을 드나드는 처지에 있는 거지’라는 억울함과 자책감이 뒤섞인 생각이 든다.
며칠 전 내 생일이어서 오랜만에 가족들과 외식을 하게 되었는데 설날 연휴라 그런지 가족과 같이 온 사람들이 많았다. 얘기를 나누며 행복해 보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암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 나도 저런 가족들의 모습처럼 되었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암 진단을 받은 뒤로는 우리 가족은 무슨 얘기를 나눠도 무의식적으로 우울함이 저 마음속 바닥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특히 나는 웃을 일이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어둠 속에 파묻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말 그대로 웃어도 웃는 게 아닌 거 같은 느낌이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 마음속의 우울함을 어떻게 걷어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내 마음 전체가 어둠과 우울함에 잠기고 마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에 나는 되도록 병에 대한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우리 부모님도 얘기는 안 하시지만 지인이나 친구를 만나실 때, 대부분 나의 부모님 연령대는 손주들 자랑이나 사위, 며느리 얘기를 많이 하실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은 나를 비롯해 내 동생도 아직 미혼이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은 할 얘기가 별로 없으실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의도치 않은 불효를 하고 있는 입장이라서 이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많이 안 좋은 것이 사실이다.
점점 몸이 약해지시는 부모님을 보면, 병원에 갈 때마다 보호자로 가 주시는 부모님께 많이 죄송한 마음이 든다. 내가 병 진단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내 나이쯤에 이런 우울한 마음이 들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나는 나이를 많이 먹은 미혼의 암환자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래도 치료를 열심히 하다 보면 다 나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희망적인 위로의 말을 건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들을 하는 사람들은, 다 이런 일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국 “현실”이라는 것은, 나 자신이 처한 이 직접적인 상황을 직시하고 있는 나에게는, 정말 이 겨울 날씨처럼 차갑고, 냉정하며,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의 나의 느낌처럼, 다른 선택 사항은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이 정말 차가운 “현실”에 내던져진 경험이 없다면, 이 “현실”이라는 것은 결코 당신이 이해할 수도, 깨달을 수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