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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 그림 같은 순간들

내가 아직 못 만든, 만들고 싶은 순간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by JJia


마음이 텅 비어버린 것만 같은 요즘에도,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내 지금까지의 인생에 그림 같은 순간들도 있었을까?’ 요즘 넷플릭스에 사람들이 많이 보는 드라마의 한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와 관련돼서 떠오르는 생각이다.


생각해 보면, 솔직히 앞으로 그림 같은 순간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암 진단을 받고 난 뒤, 그런 그림 같은 순간들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 갑자기 줄어든 느낌이다. 암 진단 받기 전에 그림 같은 순간들을 떠올리면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쉽게만 하는 것 같은 연애도 많이 못해봤다. 대학 시절은 외국 유학 중이었는데, 한국인들의 커뮤니티는 웬만하면 서로 다 아는 관계였기 때문에 누군가를 만날 생각조차 못했고 대학 졸업하는 데만도 힘들었기 때문에 연애에 관한 생각은 거의 안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이런 말을 얘기해 봤자 다 핑계로 들릴 거라는 건 알지만, 나는 그때만 해도, 내 인생은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때 되면 연애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가정을 만드는 일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흘러가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인생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는 것을, 암 진단을 받고 나서야, 그제야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같았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면, 엄청 힘들었던 취업 준비 끝에 결국 내가 만족한 회사에 취직했던 일, 그리고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말 좋아했던 그 사람과의 추억이다. 비록 나만의 지독하게 힘들었던 짝사랑이었지만, ‘사랑’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밖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아직 해 보지 않았고, 해 보지도 못한 무수한 일들을 남겨놓고,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을 맞은 듯이, 암 선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앞으로 그림 같은 순간들을 더 만들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아직 못 만든, 만들고 싶은, 그림 같은 순간들이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그런 순간들을 앞으로 더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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