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보기
가끔 도시의 하늘에서 별을 찾곤 한다.
인공의 빛들로 밝은 하늘에 보이는 건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모를 몇 개의 빛뿐이다.
그럼에도 하늘을 볼 때엔 마음에도 공간이 생기는 것 같아 언제나 좋다.
살다 보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게 되지 않는다.
걸으며 스치는 풍경에, 사무실이나 집의 창에 늘 하늘이 있지만 마음에 닿지 않는다.
공기처럼 하늘도 언제나 있는데, 공기처럼 하늘도 인식하지 못한다.
하늘은 ‘하늘을 보겠다!’고 머리를 들어야만 보인다.
도시에서도 별을 찾기 시작한 건 오래전, 말레이시아의 국립공원 ‘타만네가라’에서의 경험 덕분이다.
정글이라고 하면 보통 아마존을 떠올리겠지만 타만네가라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밀림이라고 한다.
처음의 오지 여행에 신이 났었는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뜻밖에도 밤하늘이었다.
가이드가 보여주는 동물들이나 밀림의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늘만 보였다.
멀고 가까운 수많은 별들이 하늘의 깊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책에서만 보았던 별자리들이 찾을 필요도 없이 선명하게 빛났다.
넘어진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주었지만 걸으면서도 하늘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하늘의 깊이를 처음 느꼈던 기분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아마도 ‘장엄함’이었을 것이다.
장엄함, 그때는 떠올리지도 못했던 참 생소한 언어이다.
사전적으로는 씩씩하고 웅장하며 위엄 있고 엄숙하다는 뜻이다.
씩씩함이 포함되어 있는 게 마음에 든다.
하지만 장엄함의 느낌은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된다.
내가 진실로 외치고 싶은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당신은 '모든' 부분이 장엄합니다.
당신의 에고도, 지성도, 몸도, 영혼도요. 그게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우주가 만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당신은 모든 면이 완벽합니다.
버려야 할 것도, 용서해야 할 것도, 얻어야 할 것도 없습니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될 필요가 있는 모든 것입니다.
그저 당신 자신이 되세요. 당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합니다.
당신은 완벽합니다.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 아니타 무르자니)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확장되고 있다.
은하 하나만으로도 경이로운데, 그러한 은하계가 몇 천 개인지 몇 만개인지 모른다고 한다.
끝없는 우주 앞에 티끌 같은 인간의 존재를 생각하면 너무나 하찮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주는 인간을 포함해 하나의 장엄한 질서를 이루고 있다.
대자연 앞에서 우리가 느껴야 할 감정은 비교가 아니라 겸손이다.
겸손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남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욕심 없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마음이다.
순수하게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는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며 또 어려운 일인가.
그런 태도를 나는 가져본 적이 있기나 한지 알 수도 없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도 낯선 마음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기본 값처럼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온전히 수용받지 못한 아이의 마음에는 수치심이 자란다.
어쩌면 자궁에서 세상으로 밀려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탄생은 충격이다.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킨다.
대부분 자신이 느끼는 수치심과 반대 방향으로 간다.
스스로를 무가치하게 느끼는 사람은 유능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애초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받고 수용받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것들이다.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완벽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게 한다.
이 주장은 끝없는 비교와 불만족으로 이어진다.
스스로를 작게 만들고 결국 깊은 수치심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알 수 없는 무의식의 주장과 압박에 질식한 채 생을 놓는 일은 드물지 않다.
진정한 겸손은 자신을 낮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덜 생각하는 것이다.
- C.S. 루이스 -
겸손은 내면의 온전함을 증명한다.
자기의 존재 안에서 안전한 사람만이 겸손할 수 있다.
수치심은 허상이다. 이 허상을 비울 때 우주의 장엄함이 드러난다.
생을 밀어 대는 주장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날 때,
우주의 장엄함과 대자연의 질서 앞에 겸허할 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며 모든 일을 ‘이유가 있겠지’ 하고 수용할 때,
오히려 우주만큼 장엄한 자기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