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놀기
7살 조카와 산책을 하던 중 아이가 지나가는 개들을 보며 말했다.
“저기에 강아지가 한 명 있네, 저기에는 강아지가 두 명 있네!”
“00야~, 강아지는 한 명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라고 하는 거야.
하지만 00가 한 명이라고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돼”
“……”
조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는 은근히 기뻤다.
아이에게 답을 강요하지 않은 대화가 좋았다.
세상이 요구하는 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는 것을 아이가 자란 후에는 알려주게 되겠지 생각했다.
아이 시절을 너무 빨리 끝낸 사람들이 있다.
충분히 탐색하고 탐험하고 누렸어야 할 어린 시절을 빼앗긴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은 아이가 밟아야 할 발달 단계를 건너뛴 채 몸만 자란다.
마음과 정서는 멈춘 채 성인이 된다. ‘성인아이’라고 한다.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
마음 한편에 울고 있던 아이 하나 여전히 울고 있거나, 이제 막 울음을 그치고 자라기 시작했거나,
혹은 다 자라 마음도 어른이 되었거나.
누구나 이 셋 중 하나의 상태를 품고 살아간다.
나는 아마 눈물이 줄어들고 자라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어린 조카에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도 돼”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이 있다.
보통 사람은 받은 대로 준다. 자연스러운 이치이다.
좋은 것을 받고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나쁜 것을 받아서 나쁜 것 외에 줄 것이 없는 상태가 있다.
못된 시어머니에게서 못된 시어머니가 나오고, 부대의 못된 선임이 똑같은 선임을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받은 것보다 더 주거나, 나쁜 것을 받았는데 좋은 것을 주면 피해 심리가 발동한다.
‘나는 그랬었는데 쟤는 왜 안 그러지? 재도 그래야 공평한 거 아니야?’하는 깊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래서 받은 대로 주는 ‘순환’은 좋던 나쁘던 웬만해선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
그 누구도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갖는 것에 결코 늦은 일이란 없다.
-톰 로빈스(미국 최고의 교육전문가)-
받고 싶은 대로 주는 것, 흐름을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누구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의무이기도 하다.
건강한 어린 시절에서 올바로 기능하는 어른이 나온다.
그것이 사회에 나라에, 더 멀리 지구에 유익한 일이다.
원했던 어린 시절을 갖는데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우리는 가까이에 있는 아이를 어린 자신을 존중하듯 존중할 수 있다.
어린 나를 허용하듯 허용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진심을 담아 말해 줄 수 있다.
때로는 아이와 같은 눈높이로 놀 수도 있다.
아이가 보는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아이의 말과 마음에 귀 기울이며 같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다.
그럴 때 존중받는다. 자신 스스로에게.
그럴 때 허용된다. 바로 자기 자신에게.
더 나아가 각 사람의 마음에 있는 내면 아이를 존중하며 대할 때 사랑스러운 세상이 열린다.
주는 대로 받는 것 역시 이치이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은 언뜻 부정적인 의미인 것 같지만 긍정적인 상황에서 더 맞는 말이다.
작은 친절을 베풀었을 때 복리로 돌아온다 분명.
다만 감각이 없어 보지 못할 뿐이다.
보고자 하면 보이고 듣고자 하면 들린다.
갖고 싶은 어린 시절이 있다면, 원하는 사람과 바라는 세상이 있다면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가치에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 또한 상식이다.
마음을 정하여 실천해 볼 때 형체 없던 땅이 점점 단단해진다.
어느 순간, 서있던 저쪽 땅의 사람들이 안타까워질 수도 있다.
사람은 나이 들며 죽어가는 존재가 아니다.
평생 자라는 존재이다.
어린 자신을 존중하듯 아이를 존중하고, 자신을 허용하듯 타인을 허용하는 것.
이것이 강자의 덕이다.
그리고 진정한 어른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