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암시를 깨려면

캘리그래피

by Rumina

디지털 작업을 오래 하면 아날로그 작업이 하고 싶어 진다.

컴퓨터로 하는 작업은 모니터로만 볼 수 있을 뿐, 손으로 만질 수는 없기에 묘한 목마름이 생긴다.

출력해서 가질 수도 있지만 수작업이 주는 과정과 결과의 매력은 디지털 작업과는 다르다.


가끔 캘리그래피를 한다.

캘리그래피는 붓글씨를 쓰는 것, 서예이다.

단순히 붓으로 글씨 쓰는 것을 넘어 문장이나 단어를 표현하는 작업이다.

의도에 따라 간단한 그림을 넣어 디자인된 글을 만들 수 있다.

붓과 먹물을 다루는 것이 고전적이어서 좋고 결과물을 빨리 만날 수 있는 것도 좋다.

글씨는 마치 지문 같아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다.

자신만의 고유한 작품을 가질 수 있다.

남에게 내놓을 만큼 잘 쓰기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갖고 싶은 문장을 써서 간직하는 일에는 순간의 정성과 진실함이면 충분하다.


원하는 농도로 먹을 간다면 그때부터가 쓰고자 하는 글에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

파는 먹물이 있어서 먹과 벼루까지 필요하지는 않다.

담요나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화선지를 편다.

화선지가 뜨지 않도록 문진이나 다른 도구로 위아래를 눌러 고정시킨다.

마음을 차분히 하며 붓에 먹물을 묻힌다.

먹물이 너무 많으면 번지고, 너무 없으면 갈라지니 적당하여야 한다.

쓰고자 하는 글을 한 획씩 써 내려간다.

잘못 쓰면 고칠 수 없고 먹물이 튀면 곤란하므로 자연스레 집중하게 된다.

잡생각은 사라지고 오직 쓰고자 하는 글만 남는다.

차분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린다면 더 근사한 시간이 된다.

한 번에 마음에 들게 써지지 않는다.

여러 번 정성 들여 쓰다 보면 글이 마음에 내려앉는다.

의식의 한 부분이 되는 것 같다.


생각은 말에 담긴다.

사람의 어떠함은 그가 사용하는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는 늘 불평을 하고 누군가는 당연하게 비아냥거린다.

누군가는 거리낌 없이 욕을 하고 막말을 한다.

돌보지 않는 생각과 말은 그대로 행동의 한계, 삶의 한계가 된다.


생각을 바꾸면 언어가 바뀐다.

혹은 언어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언어와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기 마련이다.

그렇게 삶은 변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바른 언어를 갖는 것이 삶을 바꾸는 첫걸음인 것 같다.

바른 언어란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는 바른 언어는 진실한 언어이다.

이치에 맞고 상식에 맞는 언어이다.

자기 생각에 빠져서 예단하지 않고 단정 짓지 않는 언어, 한쪽 입장에 치우치지 않는 언어이다.


지식과 진리만이 어릴 때부터 받아온 부정적인 암시를 깰 수 있다.

진리의 새로운 언어를 부을 때, 가져온 옛 체질과 부정성은 떨어져 나간다.

살다 보면 바쁜 일상에서, 아니 바쁘지 않더라도 언어와 생각을 돌보지 못한다.

늘 같은 생각과 언어로 사는 똑같은 하루이기에 자주 지루함과 무력감에 빠지는지도 모른다.


잠시 멈추어 진실을 담은 말들과 생각을 종이에 꺼내 보면 좋겠다.

그러다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 하나 붓으로 예쁘게 써본다면 세상 단 하나의 의미 있는 작품이 되겠다.

캘리그래피는 서체 디자인으로 확장될 수도 있고, 편집 디자인에 응용할 수도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멋스러운 작품이 된다.

쓰면서 의외의 소질을 발견할 수도, 실력이 향상될 수도 있다.

나아가면 작품 활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여러 면에서 유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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