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감과 불완전함은 보편성이기에

공연보기 II / 곰의 아내

by Rumina

산속에서 곰과 아이 셋을 낳고 살던 남자가 있다.

어느 날 그가 떠났다.

곰은 아이를 하나씩 강물에 빠트린다.

남편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돌아오길 바라며.


연극 [곰의 아내]에 나오는 전설이다.

이 이야기가 아이를 학대하는 어머니의 원형이 아닐까 생각했다.

자신의 고통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존재를 해치는 모습.

비슷한 이야기가 그리스 신화에도 있다.

배신한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두 아들을 살해한 ‘메데이아’이다.


인류에게는 공통으로 흐르는 무의식이 있다.

칼 융은 ‘원형’이라는 개념으로 집단 무의식을 설명했다.

원형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 심상이다.

모성, 탄생, 사랑, 구원과 같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근원적 이미지이다.

곰 전설과 메데이아 신화 역시 이런 원형과 연결된다.


우리가 겪는 상처는 고립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이야기는 나만의 고유한 무엇이 아니다.

인류의 서사이다. 전체의 한 부분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에게 수많은 종류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는 나와 비슷한 상처를 경험하고 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더 깊은 고통을 겪고 있다.


상처가 곪는 이유는 ‘나만의 것’이라며 숨기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는 수치감이 있다.

수치심은 18개월 ~ 3세에 느끼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 시기에 부모에게 자신의 존재와 느낌을 부정당하면 건강한 수치심을 갖는데 실패한다.


건강한 수치심을 가지고 인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우리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증거이다.
건강한 수치심은 우리 안에서 에너지 형태로 작용하면서
다른 감정들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게 한다.

-수치심의 치유 / 존 브래드쇼 -


건강한 수치심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게 한다.

하지만 해로운 수치심은 자신을 부정하게 한다.

자신의 진짜 모습과 느낌을 부정당하고 그것이 반복되면 해로운 수치심이 생긴다.

부정당한 자아는 수치감 속에서 숨을 곳을 찾는다.

상처받은 자신마저 깊은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는다.

부정당한 자기로는 사랑받을 수 없기에, 진짜 자기를 어둠 속에 묻어둔 채 가짜 자기로 살게 되는 것이다.


해로운 수치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인간의 한계와 유한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인류에겐 같은 무의식이 흐른다.

한꺼 풀만 벗기면 모두 비슷한 아픔으로 울고 있다.

같은 열등감 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우리는 종종 자신에 대한 과대망상 속에서 스스로를 몰아세운다.

진짜 자기를 부정하며 갖게 된 완벽에 대한 환상은 늘 자신을 대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압박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린 시절 겪었던 고통스러운 거절감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 거절감은 대단한 비밀이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류에게 흘러온 보편성이다.

다만 거대하게 느끼는 공포감이 개인의 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불완전함을 딛고 나아가며 성장하는 것 또한 인간에게 흐르는 원형이다.

영웅 신화들이 들려주는 메시지가 바로 그것이다.

불완전함은 성장을 위한 재료이다.

수치감과 불완전함이라는 보편성을 인정할 때, 나아갈 방향과 길을 찾을 수 있다.

완벽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품고 나아가는 삶이다.

이 여정은 메데이아와 같은 비극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영웅의 신화로 이어진다.

이 길을 걸을 때 인생은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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