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밝아지기 전에'
이야기의 시작에서 산책로에 죽어있던 흰 새는
이야기의 끝에서 흰 질경이로 다시 태어났다.
글을 읽는 내내 난해한 그림을 보는 듯하였다.
세 번째쯤 읽었을 때에
얽히고설킨, 굵고 얇은, 휘어지고 거친 선들 속에서
간신히 어느 모양 두어 개쯤을 보아낸 것 같다.
뼈 사이에서 새벽까지 타고 있던 심장.
육체 안에서 뛰고 있는, 오른손이 포개어진 심장.
우울을 앓는 늙은 화가의 손으로 그림도 심장도 아닌 채 꺼내어진 심장.
하얀 종이 귀퉁이 아주 얇게 아주 작게 그토록 아프게 쓰여진 심장.
-을 보았다.
몇 년 전 너무 아파 도려낸 나의 심장이 기억났다.
심장을 꺼내 손에 든 여자를 그렸는데
그림 속 심장 위치가 반대인 것을,
거울을 보며 심장을 도려낸 것임을 한참 후에 알아차렸다.
그때엔 심장을 꺼내 소금물에 씻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냥 그것이 기억났다.
이야기 속 ‘나’가 하늘과 햇빛, 우듬지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냉혹할 만큼 완전하게 은희 언니를 잊고 있었던 것처럼
나도 이 심장을 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