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는 무엇이고
허상은 무엇일까?

한강 '어둠의 사육제'

by Rumina

허상과 리얼리티에 대해 생각했다.
해산하는 짐승의 피 묻은 자궁에서 태어난 영진이 가진 이미지는 온통 어두움이다.

어둠에 적응하지 못하는 시력을 가지고도 그녀는 끝없이 어둠을 본다.

왜 ‘어둠의 축제’가 아니라 ‘어둠의 사육제'일까?
금식과 금욕의 날들 앞에서의 축제, 이제 곧 어둠이 끝난다는 의미인 것일까.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처럼 이제 곧 죽을 인숙의 끝.
간절하게도 집을 넘기고 죽음의 허락을 받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끔찍하게 사라진 명환의 끝.

단 한 번도 합류하지 못했던 아파트의 그림자에서 떠나 제 손으로 마련한 월세집으로 옮겨가는 영진의 끝.

그들을 삼켰던 어둠이 그들에게서 끝나는 건지, 그들로부터 세상에 드리웠던 어둠이 그들의 끝을 따라 사라지는 건지 알 수 없다.


여수의 사랑에서 자흔에게 정선의 깊은 상처가 터졌던 것처럼,
모성애를 보인 영진에게 인숙의 ‘살고 싶다’는 본능이 터진다.
생존의 당연함으로 인숙은 영진의 꿈과 미래, 어쩌면 생명일 수도 있는 모든 것을 가로 채 사라진다.

한 사람은 모든 것을 빼앗아갔고, 다른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주려고 한다.
보상이라는 눈먼 생각을 할 만도 한데, 영진은 하나 둘 제 손으로 짐을 다 옮기고,

제 힘으로 마련한 초라한 월세방을 향한다.
끝이 죽음이지 않은 영진은 이제 어둠 아닌 다른 것을 보게 될까.
그곳에서 다시 영문 시를 읽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며 꿈을 키울까.
되돌아가 주저앉고 싶은 피 묻은 자궁을 떠나 절벽 같은 베란다 방에 머물며 깊은 어둠을 보아냈으니 아마도 그럴 것 같다.


리얼리티는 무엇이고 허상은 무엇일까?
허상은 피 묻은 자궁일까, 영진이 어렵게 마련한 월세방일까.
리얼리티는 명환을 한 입만 물어뜯어 간 어둠일까, 가해자가 준 많은 돈일까.
허상은 인숙이 아버지처럼 죽어간다 일까, 그녀가 영진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 일까.
어둠 속에서 사물을 잘 분간하지 못하는 영진에겐 어쩌면 중요하지 않겠다.

어둠 안에서 시력이 좋은 게 좋은 건지, 나쁜 게 좋은 건지 문득 궁금하였다 간.
빛이라면 모든 것이 자명할 텐데, 그곳으로 가는 것 외에 어둠 속 어떠함들을 분별하는 것이 의미가 없겠다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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