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요코 '임신캘린더'
파괴된 언니의 갓난아기.
이 아기는 마치 사막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누구 하나 애정을 보이지 않는, 건조하고 차가운 공간으로 부서진 채 들어온 이 아이의 모습은
지구에 찾아오는 수많은 아기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모성애 대한 환상이 없는 담백한 임신의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외계 생물의 숙주가 된 듯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먹을 것을 거부하다가 또 먹을 것을 탐닉하고
이러저러한 호르몬 현상을 그대로 겪을 수밖에 없는 동물성을 담담히 보았다.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의 주인공이 '자신'에 대해 정의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몇 가지의 추론 끝에 자신은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세상에 나왔으니 '나는 사랑 덩어리'라고 규정하는 내용의 그림이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 그때 '나는 누구인가'를 처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 어렴풋한 기억 속의 환상에 마지않은 그 기준 때문에 나의 원망은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이 파괴된 갓난아이는 건조하기까지 한 이 가정에서 어쩌면 더 본질에 가깝게 자랄 수도 있겠다.
모성과 부성에 대한 환상,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는 사람의 눈빛과 말은 어떨까.
우리가 가진 까만 도포, 까만 입술의 저승사자 이미지는 오래 전의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의 연출자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한 사람의 생각이 저승사자의 원형이 되었다.
몇몇 사람의 환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대중매체로 퍼져 마치 절대적 기준인 것처럼 우리에게 뿌리내려져 있다. 그중 가장 큰 영역은 바로 '사랑'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사랑, 내가 원하는 모성과 부성, 내가 원하는 환대 같은 것들.
그래서 이 '원함'대로 되지 않는 것들은 '원망'이 되어 인생의 그림자가 된다.
'파괴'와 '갓난아기'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아 충격적이기까지 했는데
이 파괴된 아기가 오히려 단단하게 느껴졌다.
모든 것을 가진 이가 모든 것을 가졌으므로 기꺼이 파괴된 채 가장 낮은 곳으로 온 것 같은,
모든 존재가 망각 속에 있지만 본질은 이러하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