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팀장은 20년 넘게 김 여사가 반곱슬 머리를 맡기고 있는 미용사 아니 헤어 디자이너이다. 미용사보다 헤어 디자이너라는 호칭이 김 팀장의 위상을 높여주는 느낌이다. 김 여사는 자신과 그녀사이에 흐르는 마음에 비추어 그녀를 헤어 디자이너로 부르고 싶다.
김 팀장은 우연히 김 여사의 헤어를 담당한 이후 근무지를 두 번 옮겼다. 반곱슬 김 여사는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다.
김 여사는 오른쪽 뒤 머리통에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혹이 있다.
생김새가 궁금해진 김 여사는 뒷거울로 혹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머리카락 속에 숨겨져 있을 망정이지 살찐 송충이 모양으로 징그럽기 짝이 없다. 제거하려다 귀찮음과 두려움, 머리카락 속에 숨어 괜찮다는 핑계와 함께 그냥 그곳에 머물러 있다.
그 후 김 여사는 미용실 갈 때마다 불안했다. 그때마다김 팀장은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김 여사 곱슬머리를 다듬고, 볶고, 자르고, 살리고, 죽였다. 김 여사는 고마웠고 그녀가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녀의 직업의식은 고급스러웠다. 머리를 디자인하는 솜씨, 안목도 뛰어나다. 김 여사 얼굴각에 조화가 잘 되는 머리를 찰떡같이 디자인하는 김 팀장은 김 여사에게 친구 같은 동생이 되었다.
그녀는 잘 생겼다. 이목구비가 담백하다. 쌍꺼풀이 깊은 눈이 갸름한 얼굴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로 균형 있게 자리 잡고 있다. 얼굴 정 가운데 콧대는 살짝 높이로 정갈하다. 코 망울 생김새에 지적인 카리스마가 있다. 빚어진 조각 같다. 입술은 적당한 두께로 또렷한 인중을 떠받들고 있다.
장점일 듯 단점인 듯한 특징은 Hip 사이즈가 동양 여성이지 않게 유난히 서구적이다. 가느다란 긴 목에 대비, 유난히 크게 둥그런 동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녀의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의 원천인 듯하다. 그녀는 유난히 큰 사이즈의 HIP를 감추지 않는다. 그대로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어 입은 작업복이 유난스럽지 않게 자신감을 드러내며 미용실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김 팀장은 과하게 친절하지도, 서운하게 사무적이지 않다. 그녀의 단골손님들은 가족 단위가 꽤 많다. 다섯 살 때 엄마와 머리를 다듬으러 온 꼬마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이 되어서도 김 팀장을 찾는다. 가족 모두- 엄마, 아빠, 아이가 머리를 하러 와서는 그녀를 따라다니는 갤러리가 된다.
갤러리가 된 꼬마들은 고등학생이 돼서 엄마에게 못하는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꺼내 놓곤 한다. 담배를 시작한 친구, 사귀는 여자 친구 남자 친구이야기, 학원을 빼먹고 노래방서 춤추며 놀아버린 이야기를 풀어놓고 기분 좋게 머리를 다듬고 간다
김 여사는 갤러리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주며 머리에 관한 가족 역사를 만들어 가는 그녀에게서 편안함과 즐거움, 자부심 그리고 과하지 않은 욕심을 본다.
어느 날 김 여사는 중간고사 기간 펌을 예약하고 조금 일찍 퇴근을 서둘렀다. 머리에 펌 롤을 말며 그녀는 근처 학원 옥상에서 여고생 한 명이 얼마 전에 투신했다고 한다.
아기였을 때부터 단골손님으로 엄마 모르게 담배 피우고 있다고 고백한 아이라며 김 팀장은 눈물이 고이려 하는 눈을 깜박거렸다. 소식을 전한 사람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꼬마일 때부터 단골손님 남학생이었다. 중간고사 마치고 머리단속에 걸리까 머리를 다듬으러 온 친구였다. 그녀의 눈물은 흘러내릴 지경이었다.
그 여학생 가족은엘리트로 의사 아빠에 오빠는 s의대생이라고 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여고생은 우울증이 심해 중간고사를 앞두고 시험을 못 치르겠다고 병원에 가고 싶다고 했고 엄마는 중간고사 후로 미루었다고 한다. 중간고사 전날 학원옥상에서 사건이 발생했는데 학교 측에서는 함구하라는 명령에도 불구하고 그 남학생은 김 팀장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며 자신도 가끔 답답해 그 친구의 마음이 된다고 했다.
김 여사의 오랜 경험에 의하면 시험이 중요하다는 건 부모보다 아이가 더 절실하게 인지하고 있다. 건강한 아이도 그 불안도를 못 견뎌 시험 며칠 전부터 학교 보건실 앞에 보건선생님이 출근도 하기 전에 아이들이 줄을 서있다. 부자 동네, 부모가 엘리트가 많은 동네 학교인 경우 정도가 더 심하다.
그 여고생은 이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이가 시험을 거부하고 병원을 찾아야 할 정도로 절실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일까? 우울증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얼마나 순간순간 선택의 기로에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고 있는 걸까? 무엇을 위해 , 어떤 것들을 완성하고자 소중한 것들을 외면 한 채 달려가고 있는 걸까?
아이의 우울함과 겹친 극심한 불안으로 자아를 증발해 버리고 죽고 싶은 그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김 여사에게도 전해졌다.
대부분 부모는 사랑하는 딸, 소중한 딸이라는 말을 쉽게 한다. 거기에 김 여사 자신도 포함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부모의 마음뒤에 이기심에 불타는 불안이 있을 수 있다. 부모의 결핍에서 오는 불안도가 높을수록 사랑의 포장이 심하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거야'라는 워딩 뒤에 포장된 부모의 불안이 숨겨져 있음을 부모 자신이 알아차려야 한다.
'사랑' 그건 배려이고 존중이다. '아이를 사랑하냐?'는 질문은' 아이를 존중하느냐?'라고 바꿔 들어야 한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읽어 선택의 중심을 아이로 옮겨주는 힘을 부모가 키워야 한다.
초 단위로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부모시대의 경험이 아이의 미래를 보장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정도는 해야 된다? 에 '그 정도'라는 것도 사라지고 있다. 풍요 속 빈곤한 마음을 둘 곳이 없어 극심한 불안으로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인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유치원생의 원형탈모뿐 아니라 손목을 여러 번 그어 자신이 존재를 확인하는 고등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부모에게서 에너지를 받고 다시 힘을 내야 하는 시대이다. 우리 모두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아이와 양방소통이 잘 되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아이와 소통이 잘 된다는 것은 아이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는 것이다. 마음을 읽고 아이와의 이견을 조율할 줄 아는 대화의 능력을 말한다.
직립보행이 가능해지는 한 살 때부터 자아는 싹튼다. 20개월 정도에 자아는 '내가 할래' 스스로 원하는 게 생긴다. 스스로 선택하고 원하는 욕구가 벌써 생긴 지 오래된 아이들이다. 아이가 자신의 의견 없이 부모가 하라는 데로 한다면 병들고 있다고 걱정해야 한다.
아이를 경제적 , 정서적으로 스스로 자립할 때까지 제대로 양육하는 건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최소한 아이의 마음을 읽을 줄만 안다면 훌륭한 부모이다. 그런 부모가 되는 건 쉽지 않다. 노력해야 한다. 아이 마음의 생명줄이 부모의 온전한 사랑에 의해 크기 때문이다.
부모도 계약기간이 있으면 좋으련만 라이센스 없이 주어진 자격이니 시행착오도 많다. 놓치지 말아야 하는 건 부모가 진심으로 '네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있고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이다. 아이는 그런 부모의 사랑을 찐 사랑으로 인지한다.
부모에게 존중받고 있다는 그 느낌은 아이의 삶에 천군만마가 되어 도전과 용기라는 마음으로 자리매김한다.
부모의 불안이 사라지면 아이의 존재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아이가 부모 옆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된다.
김 여사는 엄마라는 타이틀을 아직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귀기울여 듣기,마음 읽어주기' 노력 중이다.
미용실 김팀장은 머리 하러오는 아이들의 실제적인 엄마이지 않았을까? 그녀를 만나고 싶어 아이들도 김여사 처럼 오랫동안 그녀에게 머리를 맡기는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