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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Sep 29. 2024

헌신의 흔적, 아가페정원


“이번 정차역은 평택, 평택역입니다.” 익산행 무궁화호 열차가 평택역에 정차했다. 차창 밖으로 키 155cm에 자그마한 언니의 얼굴이 보였다. 언니는 내 옆자리로 와서 나란히 앉았다. 함께 기차를 탄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소풍 가듯이 삶은 달걀과 포도를 싸와서 사이좋게 나눠 먹었다. 무궁화호 열차는 역마다 자주 섰지만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눌 이야기가 넘쳤다. 익산시 팸투어를 신청해서 언니와 함께 가는 길이었다.


 이 여행을 위해 언니는 본인이 운영하는 의류 판매장에 아르바이트 근무자를 대신 세워두고 왔다. 인건비가 아깝지 않게 알찬 여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일었다. 익산역에 도착할 때까지 잠을 좀 자두 자며 언니를 쉬게 했다. 고단했는지 언니는 내 어깨에 주먹만큼 가벼운 머리를 기대고 단잠을 잤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스치는 악몽 같았을 언니의 옛 시절을 떠올렸다.


엄마는 공무원인 아빠의 박봉을 메우려 이런저런 장사를 했었다. 거의 집에 없었다. 게다가 아이를 여섯이나 낳아 몸이 자주 아팠다. 큰 언니가 엄마를 대신해 다섯 동생을 돌봐야 했다. 맏딸이니 동생들을 위해서 희생하라는 부모님의 압박에 대학도 포기했었다.

 내가 철이 없던 탓인지 어려서인지, 자라는 동안에는 그런 상황을 잘 몰랐다. 속내를 터놓을 만큼 나이가 들어서야 언니의 수고와 희생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어릴 때 제대로 사귄 친구나 놀이의 추억이 없다며 언니는 아쉬워했다.


결혼 후에 학습지 선생, 옷 장사, 식당일까지 온갖 험한 일을 몸으로 겪는 걸 지켜보았었다. 몇 번이던가, 형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언니네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지냈던 날도 있었다. 이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고생으로 기미가 까맣게 얹혀있던 언니의 얼굴. 꾹꾹 눌러 담은 가난과 상처를 지나 용케도 쓰러지지 않고 오늘까지 버텨왔다.




평택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두 시간 뒤 익산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단체 버스를 타고, 1박 2일 동안 ‘익산 9경’ 중 몇 곳을 둘러보는 코스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 ‘아가페정원’이다. 1970년에 만들어져 2021년에야 민간정원으로 등록되며 일반에 공개된 곳이다. 50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비밀의 정원이라고 했다. 아가페정원에 도착해 차창을 보니 메타세쿼이아나무가 담장처럼 촘촘하게 둘러 서 있어 담장 안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비밀의 정원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아가페정원은 무의탁 노인복지시설 아가페정양원을 세워 무료로 운영하던 고 서정수 알렉시오 신부가 만들었다. 시설 내 노인들의 건강과 정서를 위해 나무를 키우면서 시간이 흐른 뒤 수목 정원이 되었다.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채. 바깥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차단하고 그들만의 세상을 지키는 울타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속에는 오갈 데 없는 노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신부의 헌신이 깃들어 있다.


안내 표지판에 상사화 꽃길, 고려 영산홍 터널, 공작 단풍나무길 등이 표시되어 있었다. 계절마다 수선화, 튤립, 목련, 양귀비 등의 꽃이 피는 곳이다. 나무 종류도 향나무, 섬잣나무, 밤나무, 백일홍 등 다양하다. 초입의 향나무와 짧은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포멀 가든이라는 영국식 정원이 나왔다. 멀리 나무를 잘 다듬어 도드라지게 만든 ‘아가페’와 ‘정원’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기하학적이며 대칭적인 구조로 꾸민 정원이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아담해서 친근한 모습이다.


마침 소나기가 한줄기 지나간 후라 황금사철나무의 노란빛에 홍가시나무의 붉은빛이 더해져 선명해 보인다. 천사 날개를 단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꾸며놓았다. 마침 천사가 지나는 중이었을까,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오롯이 느낄 만큼 고요했다.



손님 다녀가듯 잠깐 내렸던 비가 그칠 무렵, 메타세쿼이어길로 들어섰다. 나뭇가지가 기울면서 군무를 보여준다. 길게 늘어선 무용수가 한 팔을 쭉 뻗어 포물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나무를 향해 걸어가는 우리를 환영하는 몸짓 같다. 받아주고 안아주는 넉넉한 품이다. 40m 높이의 나무 사이를 걸으며 그 품에 안겨본다. 은둔의 시간이 우물 옆 이끼로 자라 있었다.


마음의 그늘은 짙을수록 어두우나 숲의 그늘은 짙을수록 눈이 맑아진다. 앞에 나타날 다음 풍경을 보려고 서두르지 않으며 느리게 걷고 싶은 곳이다. 그저 눈앞에 펼쳐지는 초록 공작새의 깃털을 즐길 뿐이다. 풀숲에 걸린 거미줄에 이슬이 남아 몽환적이다. 언니와 나는 잠시 다른 세상에 들어와 쉼표를 그리며 상처를 쓰다듬었다.



아가페는 그리스어로 인간에 대한 신의 사랑, 인간의 신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뜻한다. 조건 없는 신앙을 말하기도 한다. 길에서 병사한 행려병자에 충격을 받아 아가페정양원을 세운 서정수 신부의 사랑이 아가페라는 말에 걸맞다고 생각했다. 무연고자들이 쉼터이자 마지막 정착지였던 이곳에 말없이 앉아, 척박한 땅에 꽃씨를 심고 비를 기다렸던 마음을 그려본다.


천방지축 다섯 명의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큰 언니의 수고와 헌신도 마찬가지다. 생각해 보면 이십 대의 아가씨가 하고 싶은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린 동생들만 돌보다 어느새 어른이 되었고, 처음 만난 남자랑 결혼했으니 언니의 이십 대는 몽당연필처럼 잘록한 채 노년으로 건너온 셈이다. 가끔은 힘들었던 가정사와 부담감에서 도망치듯 숨고 싶은 날이 언니에게도 있었겠지. 생의 한 부분에 결핍이 남아 채워지지 않는 눈빛이 안쓰러웠다.


최근에야 여유가 생긴 언니는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다. 하지만 나이 칠십을 향해 가는 언니의 등은 어느새 알을 품느라 날개를 접은 닭처럼 둥글게 굽었다. 연골에 문제가 생겼다는 오른쪽 다리를 미세하게 절룩거렸다. 뒤에서 보는 내내 눈길이 기울며 마음이 뒤척였다. 나도 그리 늙어가겠지. 점심때 언니는 어미 새가 새끼에게 먹이를 주듯 비닐장갑을 끼고 보리 굴비의 살을 하나하나 발라주었다.


언니의 몸에 밴 마음의 허기가 온전히 채워지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언니와 시간을 자주 보내려고 한다. 누군가의 헌신으로 다듬어진 정원을 그저 말없이 걷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날도 있으니까. 언니의 작은 키만큼 짧았던 행복의 길이를 여행이 주는 기쁨으로 늘여보는 중이다.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앞에 순한 빛만 내려오고 느린 바람만 불기를 가만히 바랐다. 이제 막 꽃봉오리가 번지기 시작하는 배롱나무의 가슴이 부풀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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