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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9시간전

소울펜 입성기


“그 소울펜이라는 글쓰기 모임 저도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여행시집 프로젝트가 마무리될 무렵이었다. 같은 강의실에서 다음 강좌를 이용하는 윤 선생을 만났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넌지시 본심을 내비쳤다.


 좋아하는 보리 작가도 있고 내가 보기에 글 실력이 출중한 이들의 글쓰기 모임이니 거기 끼고 싶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글쓰기를 게을리하는 처지라 강제적인 장치도 필요했다. “제가 회원들에게 의견 물어볼게요. 그런데 술은 잘하세요?” “아휴, 그게 입회 조건이라면 전 무조건 일등이에요. 감사합니다.” 과장되게 너스레를 떨면서 윤 선생이 잘 얘기해 주길 바랐다.


 

며칠 후 윤선생이 페북으로 메시지를 보내왔다. 본인은 다른 친구를 추천하느라 안 되니 다른 회원에게 부탁해 보라고, 물론 내가 들어오는 걸 언제든지 환영한다는 얘기였다. 언제든지가 언제인지 모른 채 환영한다는 말로는 위로가 안 됐다.


안 그래도 기존 회원들보다 나이가 많아 불편하게 하는 건 아닌가 움츠러들던 참이었다. 왠지 꼭 붙고 싶었던 시험에 떨어진 기분이 들었다. 다시 다른 회원을 찾아 부탁하려니 구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흥, 술 잘 먹는 천기도 누설했건만… 안 하고 만다.’ 속으로 살짝 오기가 뻗쳤다. 입에 거품도 조금 물었었다.


 그런데 회원을 확장해서 모집하는 덕에 감사하게도 소울펜 2기 회원이 되었다. 회원이 되고 밴드에 들어가 회원 추천에 대한 글을 읽어보니 계란국의 달걀처럼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한 줄을 쓰더라도 한 주도 거르지 않겠다는 각오가 단단한 사람, 내향적 외향인 또는 외향적 내향인(소울펜이라 쓰고 수울펜이라 읽는 모임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온돌처럼 속이 따뜻하고 뚝배기처럼 은은한 사람, 마라톤처럼 오래 글 쓰는 사람을 찾는 모임이라니 나에게 꼭 필요한 모임이다.


추가로 마지막 요건이, 거절되어도 맘 상하지 않고 오해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한다. 나 맘 상했던 거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겠다. 아무튼 서울대 떨어졌다가 예비 합격으로 들어간 기분이다.


 

<이태준의 문장 강화>에서 이런 글을 읽었었다. ‘문장을 위한 문장은 피 없는 문장이다.’ ‘문장 혼자만 아름다울 수 없다. 인물이든 사건이든 정경이든 그 생각을 품은 내 마음이 여실히 나타났나? 마음이 먼저 아름답게 느낀 것이면 그 마음만 여실히 나타내어보라.’ 고 했다.


자기 마음에 들어온 것을 잘 드러내도록 글을 쓰라는 이야기다. 쓰도록 마음이 이끌어 쓰는 글이라니, 멋지지 않은가. 영혼을 갈아 넣는 글쓰기 모임 소울펜의 회원이 되었으니 내 마음이 여실히 보이도록 잘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소울펜을 통해 내년 치 농사를 지을 씨앗이 준비되었다. 씨를 뿌리고(매주 글 출석 하기), 물을 주고(생각의 고랑 넓히기), 잡초를 뽑고(불필요한 글은 쳐내기), 퇴비를 주면서(좋은 글 읽기)로 성실한 농사꾼이 되어보자. 내 글을 읽는 이를 더 의식하고 더 간절하게 쓰려고 애써봐야지. 하다 보면 언젠가 글로써 내 마음을 보다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2025년에 소울펜 회원들과 좋아하는 일로 시간과 마음을 나누게 될 생각에 설렌다. 글 수확이 풍년이면 더욱 좋겠다. 역시 시험은 떨어진 줄 알았다가 붙어야 좀 더 애틋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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