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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유 Dec 15. 2024

손을 잡아주는 일


 “우웨에엑!” 소리를 내는 중에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건강 검진하면서 5만 원 아끼자고 위내시경을 비수면 검사로 선택했었다. 막상 검사를 시작하자 우웩 거리는 내 모습이 창피하고 목안 깊숙이 들어오는 내시경이 무서웠다. 이러다 목구멍 어딘가를 긁으면 어떡하지, 위장에 구멍이 뚫리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잠들어 검사하면 몰랐을 걸 괜히 비수면으로 해서 이 공포와 수치스러움을 겪고 있구나 후회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간호사가 나의 손을 잡았다. 위까지 쑥 들어오는 내시경에 입 밖으로 침을 줄줄 흘리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 손을 잡은 간호사가 말없이 등까지 쓰다듬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얼굴이 주름마다 걱정이 잔뜩 끼었다.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친구는 삼십여 년을 혼자서 딸 하나를 키우며 살아왔다. 그녀의 생일이면 서툰 솜씨로 미역국을 끓인 생일상을 차려주었다고 내게 자랑하던 딸이다.


언제는 연애도 안 하고 저러다 자기 딸이 모태솔로로 늙는 거 아니냐고 속을 끓이던 친구였다. 정작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왜 울상이냐 물었다. 남자친구 직업이 마음에 안 든단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소방관이라고. 너무 위험한 직업 아니냐며 한숨이 앉은자리에 웅덩이 하나 파고도 남을 기세였다.


 <출처 : 위키백과>

 하긴 화재 사고로 위험에 빠진 인명을 구하려다 순직한 젊은 소방관 이야기를 들은 지도 얼마 안 됐었다. 작년 말에 제주도 서귀포의 감귤 창고에 발생한 화재로 주택에 있는 80대 노부부를 대피시킨 후 불을 끄다가 순직한 젊은 소방관이 있었다. 누군가를 구하느라 젊은 생명이 사라지는 일은 가슴이 더 많이 아팠다.


친구와 그 이야기로 안타까워했었으니 그녀의 걱정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보아온 친구의 성정을 아는지라 더했다. 나이가 들어도 한결같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친구였다. 애지중지 키워 온 외동딸이 사랑하는 남자가 하필 소방관이라니, 이제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출처 : 위키백과 >


 몇 달  어머니가 구급차에 실려갔던 일이 떠올랐다. 어머님은 담낭암이라 고열이 나거나 황달이 오면 즉시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의사의 당부가 있던 터였다. 그날도 필라테스 운동 중에 여러 통의 전화가 와서 강사의 눈치가 보였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형제들의 문자며 카톡이며 아버지의 부재중 전화까지, 그야말로 전화통에 불이 나 있다. 어머니가 기운 없이 누워있어 아버지가 살펴보니 고열이 심했다고 한다. 놀란 아버지가 119 비상전화로 구조를 요청해서 어머니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는 중이라는 연락이었다.


<출처 : 대전일보 >

 병원에서 만나니 소의 눈이 되어있는 아버지 말로는 곧바로 구급차가 오고 구급대원들이 어머님을 들것에 실어 차에 태웠다고 한다. 의료대란으로 병원마다 의료진이 부족하고 응급환자가 몰리던 때였다. 두 시간 넘게 기다려도 인근 병원의 응급실 자리가 나오지 않았다.


구급차 안에서 불상사가 생길까 어머니 팔다리를 주무르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결국 소방대원들이 서울 대림동에서 부천까지, 어머니가 진료받던 병원으로 차를 몰았단다. 원래 구급차가 소속된 권역을 넘기는 쉬운 일이 아닌데 어머님을 위해서 용단과 수고를 마다치 않은 것이다.


 소방대원이 발 빠르게 움직여준 덕에 도착한 응급실 앞에서 한 시간 정도 대기했다. 기다리는 동안 “권역을 넘기면서까지 구급차를 이동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암 환자라 위험할 수 있어서 적극 찾아봤습니다. 저희가 할 일인데요,” 소방대원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급실에 침상이 나자 어머니가 들어가고 그제야 구급차와 대원들이 병원을 떠났다. 어머니가 해열주사와 링거 치료 후 퇴원할 때까지 온 가족이 초조하게 기다리긴 했지만 모두 그만하길 다행이라 생각했다. 소방대원이 아니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출처 : 나무위키 >


예전에 뉴스에서 <오늘도 구하겠습니다.>라는 책을 펴낸 조이상 소방교가 “소방관은 손을 잡아 주는 일이에요.”라고 말한 기사를 읽었다. 그는 ‘조이’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스토리에 소방관의 일상에 대해 쓰는 작가 겸 소방관이다. 그가 말하길 소방관의 주요 임무는 화재진압, 구조, 구급 세 가지라고 했다.


고층 빌딩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의 손을 잡고, 화재 현장에 쓰러진 이의 손을 잡고, 심정지 상태의 위험한 환자의 흉부를 압박해 살려내는 일, 도로 가운데 위태롭게 서 있는 강아지를 구한 일을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그는 놓쳐버린 손이 더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절박한 상황에서 큰 도움을 경험한 나로서는 소방관의 일이 얼마나 숭고하고 중요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친구에게 어머니의 응급 상황 때 소방관 도움을 받은 일과 조이상 소방관의 기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생명을 소중히 다루는 일을 하는 이는 분명 좋은 사람 일거라고 말했다.


직업이 소방관이라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는 말과 함께 친구의 손을 잡아주었다. 얼굴 주름 사이에 끼어있던 걱정이 아주 살짝 옅어졌다. 손을 잡아주는 일은 상대방의 걱정을 덜어주고 안심시키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었다.


<출처 : 스톡이미지>


 손을 내미는 마음에는 따뜻함이 수반된다고 생각한다. 실핏줄 같은 손금을 지나 심장의 온도가 전해지는 둥근 손끝을 들여다본다. 넘어진 이를 일으키려 잡아주는 손, 쓸쓸해서 서늘해진 등을 토닥이는 손. 차갑고 시린 손을 덥혀주려 다가오는 따스한 손. 서로에게 사랑을 느낀 연인이 제일 먼저 하는 일도 손을 잡는 것이다.


때로는 폭력이 되기도 하는 손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손을 내미는 행위가 아닐까. 위기의 순간에 누군가를 구하고, 내가 너의 곁에 있다고 말하는 방법이 바로 손을 잡아주는 일이다.


 친구의 딸과 소방관 청년은 운동 동아리에서 만났다. 사진을 보니 넓은 어깨에 다부진 체형, 밝고 순한 미소를 가진 청년이다. 넉넉한 어깨가 믿음직스럽고 건강한 취미를 가진 것도 좋아 보였다. 그들은 힘들 때 서로의 손을 잡아주며 견디고 이겨내지 않았을까.


<출처 : 스톡 이미지>

친구의 걱정을 딛고 사랑을 지켜온 두 사람이 내년 1월이면 결혼을 한다. 서로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걸어갈 그들에게 축복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 아끼고 예뻐하던 딸을 시집보내며 내심 가슴 한쪽이 뭉텅 썰리는 심정일 나의 친구. 결혼식장에서 그녀가 울면, 나는 그녀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두 손을 꼭 잡아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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